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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피성 Jul 14. 2022

(욥기) 그래도 고민이 남습니다

@ 성경, 구약 18번째 책, 시가서


읽기 부담스러운 책


욥기. 내용이 뻔하니 읽기 싫고 피하고 싶은 책 중의 하나다. 욥기 책이 다루는 주제는 '고난'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명확한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욥기 책을 여러 번 읽어 보았어도 아직도 고민이 남는다. 


우리는 각자 인생을 살아간다. 인생에 대한 어떤 관점을 지녔든지, 신앙의 소유의 여부를 떠나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인생에 고난이 없기를 바란다. 내가 만나게 되는 삶의 어려움을 객관화해서 측정하기 어렵다. 물론 그 어려움의 난이도를 정해서 어느 선에서부터는 고난이고 그 선 아래는 단순한 어려움이다라고 말할 수도 없다. 다른 이에게는 사소한 어려움이라도 나에게는 치명적인 고난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만나는 어려움이 고난이 되느냐 안되느냐는 결국 나와 내가 처한 상황에 달렸다.  


기독교 신앙을 가진 크리스천에게는 '고난'이라는 단어는 매우 익숙하다. 믿음을 가졌다는 사실은, 나를 위해 고난당하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는 것에서 시작한다. 내가 당했어야 할 그 고난을 예수님이 나 대신에 당하셨다는 말이다. 우리는 그렇게 고난이라는 단어에 익숙함을 느낀다. 성경에는 고난과 관련된 많은 성구들이 있다. 예수님의 고난뿐만 아니라, 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겪었던 고난의 경험, 고난의 이유, 고난을 통해 얻은 교훈 등 고난에 대한 이야기는 성경에 넘쳐난다. 


하지만,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우리는 현재와 앞으로 살아갈 인생에 그 고난이 없기를 간절히 원한다. 일상적으로 말씀을 읽고 기도할 때도, 주로 구하는 것은 안전하고 고난이 없는 상황이다. 오히려 어린 시절보다 인격이 자라고, 믿음이 자라고, 지식이 더욱 자라난 어른이 되면서는 고난이 없는 상황을 위한 기도는 더욱 늘어난다. 나뿐만 아니라, 그 기도의 대상은 자녀, 부모에게로 확장되어 모두에게 고난이 없기를 기도한다.


출처: https://open.life.church/items/179402-poster


명확하지만 너무 길어


크리스천에게 '고난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성경은?'이라는 질문을 던지면 백이면 백 모두 욥기를 선택할 것이다. 우리는 욥기가 고난에 대한 내용으로 시작해서 고난에 대한 내용으로 끝난다고 알고 있다. 모두가 고난이라는 주제라는 것을 알지만, 욥기가 무려 41장이나 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꽤 많다. 주제는 명확하지만, 3장부터 37장까지 지리멸렬하게 욥기 친구들과 고난의 이유와 원인에 대해 설전을 벌이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로 38장으로 넘어가더라도 주요한 내용을 이해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기에 편하게 넘기기도 한다. 


왜 이렇게 명확한 주제를 가진 성경임에도 41장이라는 길어도 너무 긴 욥기일까.


욥은 의로운 인물이었다. 사탄과 하나님이 대화하며 욥에게 고난을 가하려는 사탄을 하나님이 허락하신다. 그로서 고난이 시작되었다. 가족이 죽고, 재산이 없어지고, 자신에게 질병도 찾아온다. 욥은 묻는다. 이 고난은 어찌 됨이냐고. 친구 세명이 찾아와 논쟁한다. 돌아가면서 하나님은 의로우시니 네 죄로 인해 고난을 받는다고. 욥은 아니라고 대답한다. 나는 의롭지 않게 행한 적이 없다고. 이 같은 논쟁은 반복된다. 물론 위로는 없다. 치열한 논쟁이 있을 뿐이다. 


하나님은 의로운 삶을 살다가, 하나님이 허락하신 고난을 견디며, 하나님께 끊임없이 물으면서, 친구들과 논쟁했던 욥을 오히려 책망하신다. 그리고 결국 욥은 회개하며 다시 복을 받는 결말을 맺는다. 


교훈은 명확하다. 당시 이스라엘 민족의 기준으로 볼 때 욥은 고난을 당할 이유가 전혀 없는 삶을 살았다.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행동했으며, 하나님께 부끄럽지 않으려고 많은 노력을 하며 살았다. 하지만, 친구들은 그 자체를 부인했다. 공의의 하나님은 의인에게 고난을 주시지 않는다고 끊임없이 주장하며, 네가 모르는 죄가 있을 것이라고, 너의 고난은 네 죄 때문이라고 몰아붙인다. 


그 친구들은 위로의 말 한마디 없다. 욥이 아프고 힘든 일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와 준 친구들. 세 명 모두 욥에게 위로를 전하지 않는다. '아픈 건 안타까운데, 아픈 이유는 그것 때문일 거야.' 친구라면 위로가 먼저다. 고난을 당하고 있으며, 그 고난의 이유에 대해 확신이 없는 이에게 책망과 야유는 비겁하다.


욥의 항변도 일관적이다. 나는 죄를 짓지 않았으며, 정직한 삶을 살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은 의인이라고 주장한다. 항변이 계속될수록 자신은 의인인데도 고난을 당하는 이유를 납득할 수 없으며, 하나님이 오히려 공의롭지 못하여 의로운 자신에게 고난을 준 것은 불의라는 주장까지 나아간다. 


세 친구와 욥 사이의 논쟁의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가만히 듣고만 있던 중립적인 친구, 엘리후가 양쪽을 모두 꾸짖는다. 하나님은 공의 로우시며, 공의로 세상을 다스리시며, 친구들과 욥의 평가를 받을 분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특히 욥에게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하찮은 인간인 욥이 평가할 대상이 아니라며 일침을 놓는다. 


결국 욥은 하나님을 만난다. 하나님은 지혜가 부족하며, 하나님이 공의롭지 못하다고 주장한 욥을 책망하시지만, 그의 갈등과 정직함, 그리고 그의 기도를 높이 받으신다. 그리고 친구들보다 욥의 주장이 옳다고 평가하신다. 하지만, 세상이 고난과 고난 없음으로 양분되는 세상이 아니며,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복잡한 세상이며, 이를 공의로 다스리는 분이 하나님임을 말씀하신다. 결국 자신이 처한 상황이 이유를 묻던 욥은 회개하며 다시 한번 하나님께 복종하며 회개한다. 이렇게 훈훈하게 마무리된다. 


William Blake’s Illustrations of Book of Job—Job rebuked by his friends


여전한 질문


하지만, 나는 결국 질문이 남는다. 하나님은 도대체 왜 욥기에게 고난을 준 것일까. 하나님 자신도 욥이 의로운 어느 상황에서라도 믿음을 져버리지 않을 의외의 인간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아시면서도 말이다. 그리고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욥이 믿음을 잃지 않고, 기도하며 그 고난의 이유를 지속적으로 묻지만, 거기에는 확실한 대답은 없다. 


하나님이 고난을 허락했지만, 또한 하나님의 위로도 없다. 욥기서에서는 나오는 위로는 고작 욥기서 맨 끝장의 6 줄뿐이다. 그마저도 예전보다 더한 재산과 자녀의 회복과 번영에 대한 내용이다. 욥기서에서 그나마 위로가 되었던 부분은 찾았다면 맨 마지막에 등장해서 오히려 중립적인 태도로 양측을 모두 비판했던 친구였다.


나의 결론. 욥기를 읽으면 아직 고민이 남는다. 아직도 이유를 잘 모르겠다. 왜 욥에게 고난을 주셨을까. 도대체 왜 그러셨을까. 왜. 그리고 하나님이 허락하셨기에 감당해야 했던 그 고난을 참고 견딘 욥에게 먼저 위로를 주셔야 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마지막에 욥이 고난과 논쟁의 끝에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으니, 그것이 바로 위로, 충만한 위로가 되었던 것 일까?


고민이 끝까지 남는다. 





시편 119:71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야고보서 5:13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


베드로전서 2:19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요한계시록 2:10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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