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책을 만났다. 다양한 주제에 대해 콤팩트한 답을 기대하기에 좋은 책이다. 변증 자체가 상당한 논리와 분석, 변론을 기반으로 하는데, 이렇게 다양한 주제에 대해 상당히 요약된 의견을 일목요연하게 제시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닌데도 묵묵히 그 역할을 해 주는 놀랍고도 감사한 책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느껴지는 아쉬움은 한 채프터, 채프터가 상당한 논리와 근거를 기반으로 가득 차 있는데도 불구하고, 7-8페이지의 양으로 요약되어 있다 보니 보이지 않는 상당한 공백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이 아쉬움은 독자의 몫인 것 같다.
하지만 그 점에 대한 보완이 바로, 저자가 책 한 권을 바탕으로 그 저자의 의견을 요약하는데 그치지 않고 저자의 의견을 덧붙여 설명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점이 이 책의 매력이자 강점이다! 완전한 변증의 이해를 위해서는 이 책만으로는 부족하지만, 이 책에서 소개되는 책들에 관심을 갖고, 이 책을 안내서 삼아 접근할 경우 완전한 이해에 이를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이 책은 변증 안내서의 느낌이 강하다. 실제로 책을 읽다 보면 저자가 소개하는 책을 기대하게 만들고, 공부하고 싶은 마음을 갖게 한다. 실제로 책을 읽다가 두 권쯤 새로 주문했다. 하지만 안내서와 같다고 하더라도 한 장, 한 장의 느낌이 결코 가볍지 않다. 실제 한 채프터를 쉽게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을만한 내용의 것은 아니다. 한 장, 한 장의 비중이 상당하다.
어려운 주제의 책을 한 권 잡으면 끙끙대고 읽기도 한다. 특히나 난해한 책들은 더 그렇다. 이 책에서 소개되는 책들은 변증을 위한 책인 데다가 다루는 주제들이 접근하기 쉬운 대상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이해하기 쉽고, 깔끔하게 정리해 주기란 쉽지 않은데도, 이 책은 그 역할을 해주고 있는 데에 감사함을 느낀다.
예를 들어,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대게 두께는 얇지만, 내용은 무척 어렵다고 느끼는 C. S. 루이스 책들을 예로 들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의 책을 논지가 흐트러지지 않는 자세로 단숨에 끝까지 따라가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특히 그의 대부분의 책들이 변증서의 성격이 짙고, 개념화된 표현을 주로 사용하기 때문에, 그 개념을 충분히 이해하면서 동시에 루이스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단박에 캐치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 책들 중에서 본 책에서는 C. S. 루이스의 '기적'이라는 책이 다루어지고 있다. 루이스는 ‘예기치 못한 기쁨(홍성사)’이라는 책을 통해서 본인의 회심의 과정을 설명한 이후, 줄 곳 신학적, 철학적 변증에 매달린 듯하다. 저자에 의하면 루이스는 ‘기적’이라는 책에서는 자연주의를 기반으로 한 세계관을 날카롭게 지적하며 기적을 ‘자연에 대한 초자연적 힘의 간섭’이라고 정의했다고 한다. 이미 개념화된 정의부터 어렵지만, 저자는 깔끔하게 아래와 같이 4개의 논지를 정리해서 알려준다. 원래 도서를 읽지 않았어도 4개의 논지로 정리된 내용만으로도 절반쯤 읽은 느낌이다.
1. 성경 속 기적은 기독교 신앙의 전체적 구조와 긴밀하게 연결된다
2. 성경 속 기적은 자연법칙을 깨뜨리지 않는다
3. 성경 속 기적은 성육신 기적의 변형판이다
4. 성경 속 기적은 하나님이 늘 해 오시던 일들의 축소판이다
이런 식으로 저자는 소개하는 변증서를 독자로 하여금 쉽게 접하고 하고, 변증의 내용을 독자가 쉽게 이해하도록 돕는다. 이 책의 최대 장점이라 꼽을 수 있다.
그러나, 독자가 주의할 점은 각 채프터의 주제에 맞는 변증서들을 단지 추켜세우기 위해 쓰인 책이 아니라는 점이다. 저자도 그 의도를 확실히 하는데, 그 증거는 곳곳에 드러난다. 아래와 같은 예를 들어 볼 수 있다.
그러나 과연 저자가 과학자이자 신학자로서 관찰하고 판단한 결과로 이끌어낸 유신진화론의 성경적 정당성까지 넉넉하게 확보했는가 하는 문제에서 나는 회의적이다.
안환균, 기독교 팩트체크, p.116
유신진화론자들은, 교회가 하나님이 창조의 과정에 진화의 방법을 사용하셨다고 말하면 과학주의에 물든 현대인들을 전도하는데 유용하다고 주장한다. 한때 나도 그 의도에 찬성했지만, 지금은 반대한다.
안환균, 기독교 팩트체크, p.121
위의 표현처럼 저자는 소개하는 책에 대해서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변증 안내서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는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책의 저자의 의견에 매몰되지 않도록 비판적 입장을 소개하고, 다른 의견을 제시함으로써 독자에게도 생각해보라고 촉구한다. 저자의 비판적 입장 또한 이 책의 상당한 장점이다. 맹목적인 신뢰와 의지를 하지 않도록 해주는 것만으로도 독자로 하여금 '당신의 의견은 무엇이오?'라는 질문 앞에 서도록 환기시켜 준다.
또한 이 책이 다루는 문제는 다양하다. 믿음을 갖게 되면 자연히 발생하게 되는 질문이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았으되 뒤로 미루어 놓은 질문들이 각 주제가 된다. 하나님의 존재, 과학과의 문제, 종말론, 천국의 문제, 지옥의 문제, 새하늘과 새땅의 문제, 휴거, 역사성 등의 문제들이 그 대상이고, 목차에 그룹화되어 5장으로 구성된다.
변증이지만, 우리가 여전히 질문으로 남겨 놓게 되는 점들이 있다. 저자 또한 여전히 남아 있는 질문, 성경이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않은 질문에 대해서는 여전히 물음표를 남겨 놓는다. 그 부분은 정말 믿음의 영역인 것으로 보인다. 그 점을 가장 두드러지게 보여주는 부분이 '죄에 대한 형벌/복음을 접하지 못하고 죽어간 사람들의 결론'이다. 성경은 그 부분에 대해서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 것처럼, 우리 인간도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잇대어 살아가는 만큼, 그 사랑이 얼마나 무한한지, 그 무한한 사랑의 결과가 무엇인지는 궁금하고 기대하게 된다. 그러나 여전히 물음표인 것도 확실하다.
따라서 이 땅에서 완전하신 하나님을 향해 저질러진 모든 죄는 아주 작은 것도 질적으로 영원한 형벌을 받기에 충분하다고 봐야 한다. 현재로선 제한된 기간의 죄에 대한 영원한 형벌의 문제는 이렇게 이해하고 전하는 방도 외에 다른 길이 없다. 죄에 대한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영원한 진노도 불가해하지만, 그 죄를 대신 지고 죽으신 그분의 사랑 또한 온전히 다 이해할 수 없다는 역설만이 유일한 진실이다.
안환균, 기독교 팩트체크, p.201
물론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도 있다. 변증의 목적을 상실하면 비판이 되어버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아슬아슬한 장면이 존재하는 것에는 좀 아쉬움이 있다.
예를 들어 한국 교계는 거의 전통적인 창조론이 자리 잡혀 있고, 거기에 자칫 다른 의견이라도 제시할라치면 믿음이 없다거나, 이단 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최근 합리적인 대안으로 떠오르는(본 책에서는 비판의 대상이다) 유신진화론/진화창조론에 대한 변증이 ‘2부 과학과 신앙’에서 언급된다. 제2부가 유신진화론 비판으로 매몰되어 있는 것에 아쉬움을 느낀다. 그중에서도 한 인물 서울대 우종학 교수에 대한 의견에 대한 비판을 상당한 내용으로 지면을 채우고 있다. 추천된 ‘타협의 거센 바람(이재만, 두란노)’의 전반적인 내용이 우종학 교수 비판을 위해 쓰인 책이라는 것만 보더라도 미루어 알 수 있기도 하다.
위에서 한번 언급한 것처럼 '당신의 의견은 무엇이오?'라는 질문 앞에 서도록 제시하는 논평을 위한 비판은 새겨들을만하다. 하지만 변증이라는 기법을 쓰면서 믿지 않는 것이니 틀렸다는 결론은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우리가 믿느냐 안 믿느냐를 위해 변증서를 읽지는 않는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변증 하기 위해 변증서를 읽지 않는가.
‘논리(logic)의어원이기도 한 로고스(logos)에 의한 질서 있는 창조가 왜 우연에 의한 진화론보다 모든 면에서 이치에 맞는가? 이런 질문을 던지면서 창세기에 등장하는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를 설득력 있게 변증해 나가는 것이 창조론을 진화론에 적당히 뒤섞어 놓으려는 혼합주의적 접근보다 훨씬 더 안전하고도 이성적인 복음 제시가 될 것이다.
안환균, 기독교 팩트체크, p.88
이 표현보다 오히려 한국 교계에 팽배한 근거 없는 창조주의를 비평하면서 균형 있는 판단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려 주는 것이 변증서를 읽는 독자들에게 큰 도움이 되리라고 판단되고, 인간이 가진 우주의 티끌도 되지 않는 능력으로, 우주의 티끌도 되지 않는 영역에 살며, 우주를 만드신 하나님의 방법에 갑론을박하는 것 자체가 믿음 없음 아닌가. 로고스의 질서를 발견해 가고 발견할 때마다 유레카를 외치게 되는 것이 나약한 인간의 모습 아니던가?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분께서 물을 포도주로 순식간에 바꾸시는 기적이나, 인간을 만드시기 위해 몇 만년을 쓰시는 기적이나 다를게 무엇인가?
이러한 무오성에 바탕을 둔 계시 교리야말로 해석학적 허무주의와 형이상학적 반실재론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이다.
안환균, 기독교 팩트체크, p.127
또한 간혹 평범한 독자들이 넘을 수 없는 산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위 인용된 한 줄을 한번 읽고 한 번에 이해할 수 있는 독자가 몇이나 될까. 한 번에 이해하거나 패스하거나 둘 중 하나일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대학원 사회과학방법론 수업에서 실재론과 반실재론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한 학기가 필요했던 것을 감안하면, 본 책에서는 한 번의 언급으로 지나치지만,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렇지만, 부분 부분 어려운 고비들이 있어 너무 어려운 책이지만, 그 고비들을 넘으면서 읽을 만큼 충분히 가치 있는 책인 것은 분명하다.
변증에 목말라하는 이들이 있고 변증에 상쾌함을 느끼는 이들도 있다. 그리고 변증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 어떤 부류에 속하든지 변증을 원하는 이에게는 변증이 그 역할을 다할 수 있는 것 같다. 이 책이 기독교 변증의 안내서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본다. 하지만, 저자도 언급했듯이 이 책이 만능 키트는 아니라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토마스 카힐의 말처럼 사고를 북돋우는 지성의 습관(Thomas Cahill, the habit of mind that encourage thinking / Mind for God, by James Emery White, p.12 )인 독서! 독서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 같다. 소개된 책을 바탕으로 목마른 자, 상쾌함을 원하는 자, 필요로 하는 자는 안내서를 따라 지성의 습관을 길러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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