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텔레비전 매거진 프로그램을 할 때
새벽에 메일을 보낼 때가 있었다.
내일이 바로 촬영인데
촬영 구성안을 미루고 미루다가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 활활 타오를 때쯤
‘감독님만 믿을게요 구성안’을 써서
새벽에 담당 피디나 브이제이에게 넘기곤 했는데
메일을 보내고 나선 수신 확인을 했다.
막 메일을 보냈으니 보통은 ‘읽지 않음’으로 나오는데
아주 간혹 바로 ‘읽음’이 될 때가 있었다.
위로. 그 읽음이 나에겐 뜻밖의 위로가 되곤 했다.
이 까맣고 적적한 새벽에
나만 홀로 깨어있는 게 아니구나.
‘새벽 메일 읽음’ 은 ‘분식집’으로 이어지고 있다.
N잡러 시대.
오전 작가, 오후 작은 학원 운영을 한 지 2년이 됐고
남들 저녁 먹고 영화 한 편 보고
커피 한 잔 마실 때쯤 퇴근할 때가 있다.
30년이 넘은 구축 아파트여서
그 시간에 아파트 주차장은
이미 중고 자동차 매매 상사가 돼 있다.
때문에 늦은 퇴근길에는
집 주변 영업을 끝낸 가게 앞에
주차를 하고 걸어오곤 하는데
그때마다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상가를
지나쳐야 한다. 이미 상가 안에 오밀조밀 들어선
수십 개의 가게들도 눈꺼풀을 덮은 시간,
상가 1층 분식집만이 초롱초롱 눈을 뜨고 있다.
담백하게 아파트 이름을 딴 분식집은
여자 사장님 혼자 하고 계신데
점심이면 그야말로 미어터진다.
일찍 메뉴가 소진이 되는 바람에
낮 한 시에 가도 김밥 한 줄 포장이
안 될 때가 있는 동네 맛집은
퇴근길에 늘 불이 켜져 있다.
어린 손주 안부를 묻는 딸과의 통화를
몇 번 들었던 터라
60대 중반쯤 되지 않았을까 싶은 사장님은
내일을 위해 달걀을 부치고
파를 다듬고 멸치 똥을 떼어야 할 것이다.
분식집에서 환하게 비치는 불빛.
오염되지 않은 위로.
먼저 퇴근했다는 치사한 안도감과 함께
진심을 담은 위로가 된다.
‘니도 욕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