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복을 보내고 회사 동료들과 점심을 같이 했다.
이북 리더기 한글화를 해준 선배에게
밥 먹자고 한 말빚을
작년 초복에 삼계탕을 같이 먹었던 후배를 끼워서
찜닭으로 갚는 자리였다.
찜닭에 이어 빙수 자리로 이어졌는데
셋의 대화 주제가 작년과는 달랐다.
단골 메뉴였던 회사 누군가의 뒷담화는
이제 시시해졌고
‘그 사람 미친 거 아니냐’는
‘나도 누군가에게 빌런일 수 있다’ 가
되어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인절미 빙수를 두고 나눈 대화는 ‘씨앗’ 이였다.
티비가 쪼그라든 세상, 불안한 회사 미래로 시작해
100세 시대 전 국민 자영업 시대에
무얼 해야 하느냐로 거쳐
어디에서 꽃이 피어날지 모르니
여기저기 씨앗을 뿌리자로 이어졌다.
그러다 30대 초반의 후배가 이런 말을 했다.
- 대학 재수를 집에서 했어요. 돈도 아깝고요.
-그게 돼? 난 집에 있으면 자꾸 눕고 싶어 지던데...
-맞아요. 저도 그랬어요.
그래서 침대 옆에 써 놨어요 ‘일어나’ 뭐 이렇게
그리고 천장에도 그런 말들을 써놓고
일 년 동안 했어요. 또 하라면 절대 못하죠
샅바. 난 인생의 샅바를
그처럼 간절하게 움켜쥐었던 적이 있었던가.
후배들에게 어쭙잖은 이야기를 할 때가 있다.
이 날도 딴에는
건전한 조언과 합리적인 지적으로
생각하면서 ‘씨앗’으로 입을 놀렸다가
침대 이야기를 듣고 내뱉은 말들을
주워 담고 싶었다.
뉴욕타임스의 한 칼럼니스트는
배척될 위험을 무릅쓰고
목소리를 낼만한 가치가 희박해져 가는
요즘 현실을 지적했는데 내 생각은 다르다.
굳이 목소리를 내지 않아도 된다.
‘인생 선배’의 의미는 이미 흐릿해지고 있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선 누구나 다 신입이다.
‘누가 하는 조언은 듣지 마라.
그냥 듣는 척만 해라.
사람마다 인생이 너무 다르고
타이밍과 호흡도 다 다르다.
그냥 스스로의 삶에 충실하며 살아라‘
얼마 전, 캡처해 둔 250개 좋아요를 받은 댓글이다.
이미 알고 있는데 자꾸 잊어버린다.
나나 잘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