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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밀 Sep 08. 2024

[ 혼밥 충전 ]

혼자 쇼핑하고 혼자 영화 보고

혼자 밥을 먹는 것에 익숙하다.

그 중 혼밥을 할 때 나만의 규칙이 있다.


먼저, 가게가 중요하다.

즐겨 가는 혼밥 식당은 두어 곳 되는데

일단 손님이 많이 없어야 한다.

점심시간에 가도 북적이지 않는,

테이블 너 다섯 개가 되는 곳으로

된장찌개나 김치찌개를 파는 작은 식당이면 합격.

보통 이런 가게는 인적이 드문 골목길에

자리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식당 이름은

손맛 좋은 사장님의 성함을 딴 ‘옥이네’라든지

아이 이름을 가져온 것 같은 ‘준이식당’처럼

포근하고 정감 가는 곳이면 좋다.


둘, 사장님이 무뚝뚝해야 한다.

예전에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강의를 하는 듯한

백종원 대표의 짧은 동영상을 보면서

크게 공감한 적이 있다.

“몇 번 온 손님에게 아는 척하지 마라.

그저 달걀 프라이 하나 더 주면 단골이 된다”

이 시간에 왜 늘 혼자 밥을 먹느냐,

이 근처에 사느냐, 무슨 일 하는 사람이냐 까지

사장님의 반가운 마음은 알겠으나

그저 오면 오는 가보다, 가면 가는 가보다 하는 곳이

편하고 아늑한 건 어쩔 수 없다.


셋째, 텔레비전이 있어야 한다.

텔레비전은  늘 켜져 있어야 하고  

텔레비전 소리와 다른 손님들의 말소리가

비슷한 데시벨로 웅웅대면서

식당 공기가 평온하게 흘러가면 좋다.

텔레비전 화면은 사장님의 취향대로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도 괜찮고 사건사고를 다루는

뉴스도 상관없다. 늘 말이 없는 사장님이

뉴스에 나오는 특정 정치인을 보면서

“저 인간 꼴 보기 싫다” 며 채널을 돌려도 상관없다.

그저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잔잔한 소음이 안정감을 준다.


넷째, 휴대전화를 보지 않는다.

누군가와 메시지를 주고받으면

그와 밥을 먹는 것이고

인터넷으로 들어가면 복잡한 세상과 마주한다.

그래서 혼밥을 할 때는 가방에서 폰을 꺼내지 않는다.

주문을 하고, 텔레비전에 시선을 고정한 채

메뉴를 기다리고, 음식이 나오면 눈과 코로 먹은 뒤에 

야무지게 입으로 향한다. 오로지 먹는 행위에 집중.

‘오이무침이 달달하네, 제철인가’

‘이건 뭐지 이게 톳이라는 건가’,

‘브로콜리 오랜만에 먹으니까 맛있다’

‘오늘은 달걀 프라이가 있어서 다행이다’,

‘이 반찬은 안 건드려야지’


화려한 복장의 트로트 가수가 부르는

노래 한 소절이 다소곳이 들리다가,

한 무리의 손님들이 와서 리모컨 채널이 돌아가면서

생활의 달인이나 외진 곳에 사는

자연인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하고,

별말 없이 밥만 먹는 두 남자 손님의

후루룩 쩝쩝 소리와

음식 조리를 끝낸 사장님이

옆테이블에서 고구마 줄기를 다듬으며 부스럭대는 파란 봉지 소리가

골고루 어우러졌다가 멈췄다가를 반복한다.


평화로운 소음이 주는 나른한 혼밥.

이렇게 밥을 먹고 나오면

어딘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배꼽 위 어딘가 묵직한 기운을 느낀다. ‘잘 먹었다’

식당 근처에 간판 페인트 칠이 다 벗겨진

동네 마트가 있다면 금상첨화.

‘누가바’ 하나 물고 거리를 걸으면 부러울 것이 없다.

혼밥 충전 완료.


요즘 자주 가는 혼밥 식당 이름은

옥이네도, 준이 식당도 아닌 ‘만남 식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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