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청곡과 사연들 문자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문자 참여는 #2854번으로
한 통화당 이용료 50원,
긴 문자와 사진은 100원이 부과됩니다 “
30년 가까이 디제이를 하고 있는 선배는
국수 기계에서 거침없이 면발이 나오는 것처럼
일에 달라붙은 듯 이 멘트를 하는데
매일 라디오로 사연을 받다 보면
가지각색의 인생살이가 묻어난다.
1200도 가열로 앞에서 문자를 보낸다는
지게차 기사님이나
용접하면서 매일 듣는데
손은 일하고 귀만 듣는다는 문자에는
애틋한 마음과 함께 순간 울컥해지기도 하고,
중공업 천장크레인 안에서
십 년째 듣고 있다는 사연에는
고마움과 함께 책임감이 살짝 올라오기도 한다.
또 아기가 뒤집기에 성공해서
기분 좋다고 하면 같이 미소가 지어지고
세차 알바를 하고 있는 아내에게 핫팩을
선물하고 싶다는 내용에는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간혹 같은 내용을 계속 올리면서
문자창을 도배하는 청취자도 있는데 처음에는 짜증이 났지만
이제는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라고 생각하고
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곤 한다.
진리가 있지 않는가, ‘나도 누군가에게 빌런일 수 있다’
얼마 전, 아주 유쾌한 문자 하나를 잊을 수 없다.
한 남자분이 사연을 보내주셨는데
자주 들리는 카페 여직원의 이야기였다.
직장 동료들과 점심 식사를 하고
종종 카페에 들르곤 하는데
그날도 역시 늘 가던 곳이었다고 한다.
평상시처럼 음료를 주문하고 받아 들었는데
자신의 음료 뚜껑에만 ‘하트’가 그려져 있더란다.
투명한 플라스틱 뚜껑에 그리 굵지 않은 매직으로
빠른 손놀림을 이용해서 그린 듯한 작은 하트 하나.
문자와 함께 사진도 같이 보내주셨는데
앙증맞고 사랑스러운 하트가 보였다.
그리곤 자신은 결혼을 했지만
(아마 기억으로는 아이도 있었다고 하신 것 같다)
카페 여직원이 하트로 호감을 표현해서
오랜만에 설레는 기분을 느꼈다며
기분이 정말 좋았다는 이야기였다.
디제이 선배가 이 내용을 읽었고
득달같이 문자들이 날아들었는데
수십 개의 문자 내용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아저씨 정신 차리세요 ‘ 였고
세 줄로 요약하자면
아저씨 꿈 깨세요,
그건 카페 직원이 다른 음료와 구분하기 위해서
표시를 한 거예요,
보통 하트나 별표를 해요 였다.
색깔이 비슷한 음료나 컵 뚜껑이 닫혀 있어서
속을 알 수 없을 때 직원들이 ‘라테’, ‘캐러멜’처럼
글자로 써주기도 하지만 흔히 하트나 별표
또는 작은 브이 두 개를 거꾸로 해서
웃는 두 눈을 표현해 구분을 하곤 하는데
바로 그거였다.
아메리카노는 하트,디카페인은 별로 표시하면
음료를 만들어서 건네는 직원이나
받는 손님이나 헷갈리지 않으니까 말이다.
결국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사연을 보내준 청취자는
손톱 만한 하트로 그 하루가 얼마나 행복했을까 싶어
지금도 슬며시 입꼬리가 올라간다.
컵 뚜껑에도 하트, SNS에도 좋아요,
주고받는 톡에도 사랑이 넘쳐난다.
얼마 전 늘 애교 많고 다정한 후배가
그리 친하게 지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톡을 보내올 때마다 자주 사용하는 하트 대신
네잎클로버를 보낸다고 했다.
그 후배 톡의 기본값은
항상 서너 개의 하트와 웃음 이모티콘인데
마음 여린 후배가 기껏 한다는 비호감 표시가
행운의 네잎클로버 였던 것이다.
물론 상대는 네잎클로버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겠지만 말이다.
‘SNS에 넘쳐나는 하트만큼, 그만큼
말로 표현하면서 살자’
얼마 전 귀에 쏙 들어왔던 라디오 오프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