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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밀 Feb 27. 2021

[ 느슨한 관계의 즐거움 ]

한참 방송중인 아홉시 반을
조금 넘어서면
외부인 출입금지가 붙어있는 문을 열고
늘 등장하는 분이 있습니다

회사 청소해주시는 어머니

항상 같은 유니폼을 입고
어떤 날은 체크 무늬  마스크를
또 어떤 날은 잔꽃 무늬 마스크를 쓰곤
자신의 키 만한 밀대를
문 앞에서부터 쓱쓱 밀면서 들어오십니다

배운 사람들이 으야
정수기 앞에 강을 만들어놨다
으야 왜 그러노 진짜

으야 집에 있는 쓰레기를
회사에 으야 왜 들고 오노 으야
참 별 일이다

요즘 누가 얼굴이 안 좋던데
으야 무슨 일 있나

'으야' 는 누구에게도 통하는
2인칭 너 이기도 하면서  
어머니 특유의 말 추임새이기도 하죠

회사를 어지럽히는 직원들
뒷담화도 하시고
직원들의 안부도 물어보시는데요
욕도 잘 하시고
알고 싶은 것도 많고, 궁금한 것도 많습니다
그래서 저와 교집합의 범위가 넓죠  

제 자리 주변을
밀대로 미는 그 잠시 동안
어머니가 먼저 툭툭 내뱉으시고
제가 몇 마디 거들곤 하는데요
한 날은 평소와는 다르게
앉아있는 제 쪽으로 몸을 바짝 밀착한 채
호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주시더군요

"혼자 먹어 미리씨만 주는 거다"




상자안에 몇 개가 나란히 들어있는 채로
판매하는 과자 중에 하나
그리고 고급진 이름을 가진
과자 순위를 뽑는다면
상위권을 차지할 '마가렛트'

옆에 기술감독이 본다 한들 서운함 하나
내비치지 않을 작은 과자였지만
다른 사람은 안 되고 '혼자',
그리고 미리씨 뒤에 붙은 조사 '만'에서
마음이 환하게 밝아오더군요
평소 잘 먹지 않는 과자이지만
냉큼 받아챙기면서
으레 하는 깃털처럼 가벼운 어조로
고맙다는 말을 대신했습니다
"어머니 내한테 반했네 "

이미 알고 있죠
여러 연구와 장기간의 추적조사 결과
행복은 관계에서 나온다는 것을 말입니다
관계는 두 갈래
가족과 친구 등의 친밀한 관계와
느슨한 갈래로 나뉩니다
동네 슈퍼마켓 사장님
아파트 경비아저씨
회사 거래처 직원
우리집으로 배달해주는 택배기사님 등을
꼽을 수 있을 겁니다

느슨한 관계도 다독이면
삶의 행복 지수는 높아지고
그리고 과자에서 알 수 있듯이
때로는 작은 것이
그 날 하루의 전부일때가 있습니다

한 스님의 '공수래 풀수거' 로
시끄러웠던 이번 주
그래서 별 거 없는 작은 과자에
더 끌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족하는 삶
저는 그 스님에 비해
제법  잘 사고 있는 듯 합니다

만추
그리고 코로나 3차 유행
모이지는 못하나  
외롭지 않은 주말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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