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님 좀 도와주세요"
방송할 때면 늘 옆에 있는 기술감독이
도시락을 내밀며 말하더군요
자그마한 보온 도시락
국을 담는 동그란 모양의
보온 도시락인데
한 손에 착 감기는 것이 차암 사랑스럽더군요
"뚜껑이 안 열려요"
"뚜껑 위에서 두드려봐 그럼 될 걸"
"여기 한번 보세요
처음부터 잘못 닫아서 그런 것 같아요"
애초에 지퍼를 잘못 잠그면
옷이 쭈글해지는 것처럼
국을 넣은 도시락의 윗부분 실리콘 테두리와
뚜껑 안쪽의 실리콘 홈이 엇갈려
뚜껑이 열리지 않게 된 것이죠
제가 도시락 밑부분을 두 손으로 잡고
기술감독이 뚜껑을 잡고 돌리기를 몇 차례,
꿈쩍도 안하더군요
"찾아보자
고무장갑 끼고 해보래
뜨거운 물에도 담가보고"
그런데 감독이 어디선가 투명 테이프를 구해
뚜껑에다 붙여왔더군요
양 옆으로 길게 여유분을 만들어
그 부분을 두 손으로 잡고 돌릴 계획,
얼른 도시락 밑부분을 잡아줬습니다
한번에 성공
그러자 이번엔
도시락 속이 궁금해졌습니다
미역이 아닌 하트가 넘쳐납니다
'사랑국'
결혼한 지 얼마안 된 감독은
음식하는 걸 좋아하는 아내를 만났더군요
출근하는 남편 아침밥 차려주고
건강 생각해 점심 도시락 싸 주는 건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보나마나 저녁도 소꿉놀이하면서
같이 먹을겁니다
테이프 감독은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사랑국이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요
미역을 불리고
소고기를 볶고
참기름을 둘렀을 각시와
혼자 용을 쓰며 뚜껑을 돌리다가
별 도움 안 되는 지푸라기와 돌리고
결국 테이프로 성공한 신랑
대뜸 도시락 사진을 찍겠다고 했습니다
힘 없는 지푸라기라서
나쁜 짓은 안 할거라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사랑의 미역국을
자랑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왜요' 한 마디 안하고
도시락을 내주더군요
굳이 이름을 밝히고 싶지 않은 시인의
'밥'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 두 사람이 마주 앉아
밥을 먹는다
흔하디 흔한 것,
동시에 최고의 것
가로되, 사랑이로다 ]
춥습니다
끼니는 제대로 챙겨드시기 바랍니다
때우지 말고 사랑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