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방송중인 아홉시 반을 조금 넘어서면 외부인 출입금지가 붙어있는 문을 열고 늘 등장하는 분이 있습니다
회사 청소해주시는 어머니
항상 같은 유니폼을 입고 어떤 날은 체크 무늬 마스크를 또 어떤 날은 잔꽃 무늬 마스크를 쓰곤 자신의 키 만한 밀대를 문 앞에서부터 쓱쓱 밀면서 들어오십니다
배운 사람들이 으야 정수기 앞에 강을 만들어놨다 으야 왜 그러노 진짜
으야 집에 있는 쓰레기를 회사에 으야 왜 들고 오노 으야 참 별 일이다
요즘 누가 얼굴이 안 좋던데 으야 무슨 일 있나
'으야' 는 누구에게도 통하는 2인칭 너 이기도 하면서 어머니 특유의 말 추임새이기도 하죠
회사를 어지럽히는 직원들 뒷담화도 하시고 직원들의 안부도 물어보시는데요 욕도 잘 하시고 알고 싶은 것도 많고, 궁금한 것도 많습니다 그래서 저와 교집합의 범위가 넓죠
제 자리 주변을 밀대로 미는 그 잠시 동안 어머니가 먼저 툭툭 내뱉으시고 제가 몇 마디 거들곤 하는데요 한 날은 평소와는 다르게 앉아있는 제 쪽으로 몸을 바짝 밀착한 채 호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주시더군요
"혼자 먹어 미리씨만 주는 거다"
상자안에 몇 개가 나란히 들어있는 채로 판매하는 과자 중에 하나 그리고 고급진 이름을 가진 과자 순위를 뽑는다면 상위권을 차지할 '마가렛트'
옆에 기술감독이 본다 한들 서운함 하나 내비치지 않을 작은 과자였지만 다른 사람은 안 되고 '혼자', 그리고 미리씨 뒤에 붙은 조사 '만'에서 마음이 환하게 밝아오더군요 평소 잘 먹지 않는 과자이지만 냉큼 받아챙기면서 으레 하는 깃털처럼 가벼운 어조로 고맙다는 말을 대신했습니다 "어머니 내한테 반했네 "
이미 알고 있죠 여러 연구와 장기간의 추적조사 결과 행복은 관계에서 나온다는 것을 말입니다 관계는 두 갈래 가족과 친구 등의 친밀한 관계와 느슨한 갈래로 나뉩니다 동네 슈퍼마켓 사장님 아파트 경비아저씨 회사 거래처 직원 우리집으로 배달해주는 택배기사님 등을 꼽을 수 있을 겁니다
느슨한 관계도 다독이면 삶의 행복 지수는 높아지고 그리고 과자에서 알 수 있듯이 때로는 작은 것이 그 날 하루의 전부일때가 있습니다
한 스님의 '공수래 풀수거' 로 시끄러웠던 이번 주 그래서 별 거 없는 작은 과자에 더 끌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족하는 삶 저는 그 스님에 비해 제법 잘 사고 있는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