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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밀 Feb 27. 2021

[ 후배의 고백 ]

이 일을 한지도 십 년이 넘었지만
표 만들기는 여전히 서툽니다
때문에 만들어 둔 표를
요리조리 바꾸면서 연명을 하고 있죠
그 모습을 옆에 있던 후배가 보고
답답했던 모양입니다
키보드를 살짝 당기면서
아주 쉽고 간단한 방법을 알려주더군요
창피함에 얼굴에
붉은 기운이 올라올때쯤
후배가 그러더군요

" 작가님 저도 이런 거 어렵더라고요"
무안해 할 저를 위한 배려
92년생 후배의 마음입니다

후배의 큰 마음에
저만 있을리는 없죠
어머니도 있더군요

회사 부장님과 키보드 후배
셋이서 식사 약속이 있어
나섰습니다
회사에서는 일 년 동안
유명 강사들의 강의를 들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아카데미' 라는 이름으로
진행을 하고 있는데
거기서 수강자로 인연을 맺은 분과의
점심이 있었습니다

유독 정이 많으신 그 분은
젊었을 때 사업가로 큰 성공을 하셨더군요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식사를 하면서 확실해졌습니다
존경받을만한 자수성가

미술교사로 일하다
중국으로 건너가
수산물 관련 사업에 뛰어들어
부를 일구셨더군요
그 덕에 큰 건물을 사고
카페도 운영하고 계셨습니다

성공 스토리에는
반드시 무용담도 따라 오는 법
중국말 한 마디도 못했다,
여자라고 무시 당했다 도 이어졌습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는
그 분이 화제였습니다
여유가 부럽다,
저렇게 나이 들고 싶다 라는
내용이 대부분,
그러다 키보드 후배가 한 마디 거들더군요
"저 대표님은 저렇게 여유있게 사시는데
우리 엄마는 계속 일하시네요
나이도 거의 비슷하신데 "

90년대생들이 오고 있습니다
80년생인 저는 90년생 후배에게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젊은 친구들에게
'여자친구 있니','남자친구 있어' 라는
질문 대신
'만나는 사람 있냐'고 물어봐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동성을 사귈수도 있으니까 말이죠
물론 이렇게 회사 업무와 상관없는
질문은 애초에 하지 않아야 하고요

또 저를 포함한 선배들과의
자리가 끝난 뒤
키보드 후배와 톡으로 이야기하다
인사 치레로
오늘 늙은 사람들 틈에서
고생했다고 했더니
 '선배들과 같이 있어 즐거웠다
싫은데 굳이 내 개인 점심시간을
쓰지 않는다' 는 답변이 돌아오더군요

늘 후배들의 연애사에 관심이 많은
주책바가지 선배는
동성 연인에 크게 놀라고
그 어떤 것보다
자신의 시간을 최우선으로 두는 대답에
삶의 태도를 배우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좋은 에너지를 받았던
키보드 후배는
더 나은 삶과 큰 무대를 향해
얼마 전 퇴사를 했습니다

그가 떠나고
이번 설 연휴에
그 와의 카톡을 찬찬히 훑어봤습니다
많은 것을 주고 받았더군요
캠페인 편성 시간부터
에요와 예요 의 구별법까지
거기다 '고백' 까지 받았더군요




사랑을 혼자할 수가 있나요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주고 받았던
사랑하는 후배에게
소설가 김훈이 했던 말을 전합니다

 [ 누가 내 욕을 한다고 해서
내가 훼손되는 것도 아니고
누가 내 칭찬을 한다고 해서
내가 거룩해지는 것도 아니니
나는 내 길을 가겠다 ]

그 길을
그렇게
걸어갔으면 좋겠습니다
훼손에 신경쓰지 말고
거룩에 눈길주지 말고
그렇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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