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가드닝 일기 - 나는 2년 차 가드너다
6월 말부터 7월 말까지 길고도 혹독했던 장마가 끝났다. 그리고 장마가 끝나자마자 8월의 여름이 불타 오르기 시작했다. 35도를 넘어서는 한낮의 계속된 폭염과 열대야. 무수하게 자란 잡초와 반갑지 않은 새싹을 뽑고, 녹아 문드러진 잎들도 잘라야 하는 등 장마 기간 동안 엉망이 된 정원 정리가 기다리고 있지만 엄두가 나지 않는다.
해가 뜨기 전의 새벽, 또는 해가 지기 전의 저녁에 마당 일에 한 번씩 도전을 해보기도 하지만, 그런 나를 비웃는 것처럼 귓가에 울리는 위잉 위잉 모기의 날갯짓 소리. 그래서 모기를 피해 서둘러 마당에서 철수를 하고 나면, 앞으로는 폭염, 뒤로는 모기의 공격이라는 진퇴양난의 가드닝 개점휴업 상태가 되어버리고 만다.
하지만 8월의 폭염이 몰아쳐도, 정원지기의 손길이 뜸해져도 한여름의 꽃들은 꿋꿋하게 피고 있다.
장미의 여름 개화가 한창이다. 지난 6월 초, 봄 개화가 끝난 후 전정을 했던 장미들이 7월 동안 새순을 힘차게 올려, 어떤 가지는 덩치를 키우고 어떤 가지는 꽃봉을 만들어 다시 한번 화사한 정원을 만들어 주고 있다. 비록 꽃의 모양도, 꽃의 생생함도 지난 5월과는 다르지만 폭염을 뚫고 피어나는 장미꽃은 기특함과 소중함 그 자체다.
개화기간이 두 달은 충분히 넘어가는 여름의 상징 에키네시아는 지난 극한 장마를 견디지 못하고 꽃잎이 검게 변하며 평년보다 빨리 시들어 가고 있다. 하지만 플록스는 매일매일 털갈이를 하는 것처럼 시든 꽃은 떨어트리고 새로운 꽃은 또 올리며, 여전히 건재한 모습을 과시. 플록스는 숨이 턱턱 막히는 8월 초의 정원에서 앙증맞은 꽃모양과 함께 특유의 생기발랄한 기쁨을 선사해 주고 있다.
백일홍도 본격적이다. 장마가 끝나니 잎에 생기가 돌기 시작하며 새로운 꽃들을 가득 피우고 있다. 하지만 겹꽃 품종인 '릴리풋'과 '퀸 라임 블로치'는 아직 완전한 꽃 모양이 나오지 않고 있다. 장마가 끝난 후 햇볕을 충분히 흡수하며 시원한 가을바람을 받기 시작하면, 겹꽃의 화형이 제대로 나올 것이다.
백일홍 다음으로 천일홍이 본격적으로 개화하기 시작했다. 지난봄 백일홍과 함께 파종해서 키운 하얀색과 살구색 천일홍이 한여름의 크리스마스 장식처럼, 아이들의 사탕 부케처럼 반짝반짝, 몽글몽글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점 더 풍성해지고 있는, 점점 더 포슬포슬 해지고 있는 운남국화. 하얀 식빵 위에 노란 버터를 바른 것 같은 크리미 한 부드러움을 보여주는 운남국화는, 제철인 가을을 맞이할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있다.
부처꽃이 8월이 되어서야 개화를 했다. 재작년에 마당에 심은 부처꽃은 2년 차가 되었는데도 많이 부실한 상태. 부처꽃은 반음지에서도 잘 큰다고 해서 지금의 위치에 자리를 잡았지만, 작년과 올해의 상태를 보니 병도 많고, 꽃도 안 피고 꾸역꾸역 억지로 자라고 있는 것이 느껴질 정도다. 그래서 여름이 끝나면, 지금의 위치에서 보다 햇빛을 잘 받을 수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겨줄 예정이다.
가을에 불타는 헬레니움도 8월 초가 되니 개화를 시작했다. 입추가 막 지난 벌써부터 빨갛고 노란 가을 들판, 가을 낙엽, 가을 햇빛의 색깔로 정원을 장식하며 본격 가을 호객행위를 하고 있는 중이다.
꼬리풀 퍼스트글로리와 스토케시아가 2차 개화를 하면서 미니 정원에 푸른빛을 더하고 있다. 특히 장미 벨렌슈필 밑 그늘에서 고생하고 있었던 꼬리풀 퍼스트 글로리는, 지난 장마철에 지금의 자리로 옮긴 후 물 만난 고기처럼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내년 늦봄에 줄지어 파란 꽃대를 큼지막하게 올릴 것을 생각하면, 이미 마음은 25년에 도착해 있다.
팬지와 비올라가 봄날의 화분을 책임졌다면 여름날의 화분은 안젤로니아다. 귀여움이 가득하지만 세련돼 보이기도 하는 안젤로니아는, 여름부터 본격적으로 빛나기 시작해 가을의 끝까지 꽃이 계속된다. 화분이 비어 있다면, 정원에 빈자리가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몇 포기 심는 걸 적극 추천한다.
장마가 끝나고 해가 내리쬐기 시작하니 메리골드와 백일홍을 먹어치우던 공벌레의 활동이 중단되었다. 하지만 지난 7월 초, 공벌레가 메리골드와 백일홍을 다 먹어치우면 어떡할까 걱정돼서 다시 한번 조금씩 파종을 해서 키우고 있었다. 그렇게 7월 초에 부랴부랴 파종했던 메리골드와 백일홍이 한 달 만에 땅에 심을 정도로 커버렸다.
메리골드는 공벌레에게 거의 다 먹혀 한 뿌리 밖에 안 남은 상태. 그래서 새로 파종해서 자란 아이들로 비어 있던 지난 메리골드 자리에 쑥쑥 채워 넣었다. 백일홍도 공벌레에게 줄기 아랫부분 잎들이 뜯어 먹혀 상태가 안 좋은 녀석들이 많았다. 그래서 뽑아내고 새로 심고, 빈자리에 우겨 심고 등등, 가을 정원을 위한 보충 식재를 완료했다. 이제 앞으로 11월 초까지 두 달이 넘도록 싱싱한 백일홍 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가드닝 명품 도구라고 평가받는 '펠코' 전정가위를 드디어 장만했다. 2년 넘게 살까 말까 벼르기만 하던 펠코 전정가위를 가드닝 인플루언서 '양평서정이네님' 공동구매를 통해 득템 했다. 이제 이 가위로 장미의 가지를 쓱쓱 자르면, 왠지 장미의 새순이 더 잘 나오고, 왠지 장미의 수형이 더 멋져지고. 왠지 장미를 자르는 나도 더 젊어지고 그럴 것 같은 느낌이다.
8월 초의 한증막 같은 더위와 모기 군단의 공습에 가드닝은 개점휴업 상태. 하지만 8월의 어느 아침, 어느 순간, 공기와 바람이 미묘하게 달라진 것을, 또 그렇게 새로운 계절이 시작되고 있음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천천히 다시 호미를 들고, 다시 가위를 잡고, 다시 정원을 보고, 다시 새로운 꿈을 가꿀 시간이다.
그럼 만화의 가드닝 일기, 오늘은 이만.
(2024년 8월 1일~8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