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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 대한파의 노지월동 야생화

좌충우돌 가드닝 일기 - 나는 3년 차 가드너다

by 장만화

최저 영하 15도, 낮 최고 영하 6, 7도를 기록했던 일주일간의 입춘 대한파. 이와 함께 이번 겨우내 지긋지긋했던 폭설이 또다시 몰아치며 블리자드의 겨울 왕국이었던 2월 첫 주였다. 과연 봄이 오기나 할까 싶었지만, 2월 둘째 주가 되니 기온이 쑥 올라가며 봄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올 겨울을 버티며 그동안 꿋꿋하게 노지월동 중인 야생화들이 이번 입춘 한파의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무지개다리를 건넜으면 어쩌나, 스멀스멀 올라오는 걱정. 그래서 한파가 지나고 눈이 녹기를 기다려 마당 꽃들의 상태를 서둘러 확인해 보았다.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노지월동의 최강자는 바로 홍지네고사리. 이 친구는 강력 한파도 무시하며 완전한 상록을 겨우내 유지한다. 눈이 와도, 영하 15도가 되어도 초록을 유지하며, 그 모습 그대로 겨울의 정원에서 푸르름을 굳건하게 담당하니, 홍지네고사리로만 정원을 채우면 겨울에도 초록의 정원을 만들 수 있을 정도다.

눈 덮인 홍지네고사리


홍지네고사리 다음으로 발군의 노지월동 실력을 보여주는 꽃은 잉글리시 라벤더다. 겨울 동안 연상록을 유지하며, 눈을 털어주기 위해 손으로 만지면 달콤한 허브 향기까지 뿜어낼 정도. 3년 전 처음 심었을 때는 풀 같은 아이였지만, 이제는 나무처럼 되어 버린 우리 집의 잉글리시 라벤더는 이렇게 올해도 노지월동 검증을 완벽하게 해냈다.

잉글리시 라벤더의 노지월동 능력은 탁월하다


겨우내 초록 그대로 살아 있는 또 다른 아이는 청매화 붓꽃과 패랭이. 이 친구들은 잎이 얼거나, 시들어 색이 변하는 모습 전혀 없이 초록 그대로, 싱싱한 모습 그대로 겨울의 정원에서 살아간다. 무스카리도 마찬가지. 이 녀석은 작년 여름이 지난 후부터 슬금슬금 새잎을 올리더니, 어느새 쑥쑥 자라 치렁치렁한 모습으로 겨울을 맞이한다. 그리고 그 모습 그대로 초록을 품은 채 씩씩하게 봄을 기다리고 있다.


내한성이 강한 것으로 유명한 뱀무 역시, 이번 입춘한파를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솜털이 뽀송뽀송한, 무잎 같은 평평한 잎을 흙 위에 낮게 펼치며 초록으로 겨울을 보낸 이 친구는, 작년에 새로 심어 올해 첫 꽃을 기다리고 있는 우리 집 정원의 새로운 기대주다. 백리향도 흙 위에 딱 붙어서, 눈이 쌓이면 싸이는 대로, 한파가 덮치면 덮치는 대로 툴툴 털어 버리고 특유의 허브향과 함께 상록으로 겨울을 보낸 노지월동의 초강자.


차가플록스도 노지월동 능력이 탁월하다. 이 친구는 겨울이 되기 전 잎이 좀 거무튀튀하게 변하기는 했지만, 시들지도, 얼지도 않고 상록을 유지한다. 이 상태로 반음지 구역에서 눈과 바람을 맞으며 꿋꿋하게 겨울을 보낸 후, 4월 중하순 파란색의 출렁이는 물결을 정원에 만들어준다.

상록으로 겨울을 버티는 차가플록스


겹깃털동자꽃과 스토케시아는 입춘 한파를 겪으며 잎이 좀 상하기는 했지만, 날이 좀 풀리고 봄이 가까워지면 언제 그랬었나 싶을 정도로 싱싱하고 우람한 모습으로 다시 봄을 시작할 것이다. 두 꽃은 모두 튼튼한 꽃대를 올리며 풍성한 꽃을 피우는데, 겹깃털동자꽃은 5월, 스토케시아는 6월에 꽃이 핀다.


지난해의 시들어 버린 메인 줄기 밑으로, 다글다글 초록의 작은 새잎과 함께 땅바닥에 딱 붙어 겨울을 보내는 야생화들이 있다. 헬레니움, 샤스타데이지 마돈나, 톱풀, 흰 쑥부쟁이, 코레옵시스, 국화 등. 이 친구들 모두 입춘 대한파를 견뎌낸 탄탄한 노지월동 실력을 증명하며 봄을 기다리고 있다.


노지월동 능력이라면 꼬리풀 식구들도 빠질 수 없다. 베로니카 로열블루, 베로니카 블루스트릭, 꼬리풀 퍼스트글로리리, 큰산 꼬리풀 등도 지상부는 거의 모두 사려졌지만, 흙 위로 살아남아 있는 몇몇 진한 초록의 잎들로 지난겨울을 무사히 건너왔음을 보여주고 있다.

겨울 동안의 베로니카 블루 스트릭


그리고 휴케라. 이 녀석도 한 노지월동 하는 녀석. 품종마다 개성이 강한 독특한 잎 색깔을 그대로 유지하며 겨울을 보내는 이 친구는, 쌓인 눈 위로 컬러풀한 모습을 과시하며 겨울의 정원을 다채롭게 꾸며 주었던 친구다.


입춘 대한파를 지나 노지월동을 씩씩하게 해낸 야생화들이 더욱 파릇파릇하게 재잘거리며 봄을 기다리는 2월의 중순. 긴 겨울을 뒤로 보내고 2025년 가드닝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첫 가위질이 드디어 시작되었다.


2월은 가드닝 1년 스케줄 중 정원지기들이 가장 바쁜 시기다. 먼저 지난겨울 정원의 시든 꽃과 그라스를 정리하는 것으로 가드닝의 새로운 시즌을 출발했다.


그린라이트 그라스는 밑동 5센티 정도를 남기고, 털수염풀은 밑동 2센티 정도를 남기고 윗부분을 댕강 잘라 주었다. 꽃이 핀 채 그대로 겨울 동안 남아 있었던 리나리아 퍼퓨리어 캐넌웬트와 연분홍 소국을 정리하고, 마른 가지로 쓸쓸하게 겨울 정원의 분위기를 잡아 주었던 추명국과 운남소국을 깨끗하게 잘랐다.

시든 그린라이트 그라스를 밑동 5센티를 남기고 잘라준다


그러고 나니 작디작은 한 뼘 정원이 다시 깨끗한 도화지가 되었다. 이 도화지 위로 올해는 또 어떤 꽃 그림들이 그려질지 상상만으로도 두근두근 해지는 2월의 중순.


올해의 겨울에도 파종을 했다. 작년 1월 중순 파종해서 겨울 동안 차곡차곡 키웠던 팬지와 비올라가 6월 장마 전까지 화분과 흙에서 미니 정원을 풍성하고 아름답게 만들어 주었다. 그 행복했던 기억을 담아, 이번 겨울에도 팬지와 비올라, 그리고 추가로 페츄니아를 파종했다.


트레이에 지피 펠렛을 하나하나 올려놓고, 물을 적당히 졸졸 붓는다. 지피 펠렛이 물을 먹어 빵빵하게 부풀어 오르면, 지피 펠렛 가운데의 작은 홈으로 씨앗을 사뿐히 올려놓는다. 아침과 저녁 하루에 두 번, 지피 펠렛이 마르지 않도록 스프레이로 물을 촉촉하게 뿌리고 며칠을 기다리면, 작고 귀여운 새싹들이 태어나기 시작한다.


이때부터는 식물등을 켜 새싹들에게 12시간 이상 충분한 빛을 공급한다. 그러면 떡잎에서 본잎을 내고 하루가 다루게 자라는 작은 모종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이 아이들이 조금 더 크면, 모종 포트로 옮겨 몸집을 본격적으로 키운 후, 3월 중순쯤 마당의 화분이나 흙에 정식. 그러면 4월 중순부터의 팬지와 비올라 꽃 파티가 시작될 것이다.

식물등 아래에서 자라고 있는 팬지와 비올라 등의 새싹


입춘의 대한파를 지나 순식간에 봄이 성큼 다가오며 다시 한번 또 새로운 계절, 새로운 가드닝의 시즌이 시작되었다. 올해로 가드닝 3년 차. 올해는 초보티를 좀 벗어날 수 있을까? 하지만 하늘과 바람, 태양과 흙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꽃들은 매년 새로움과 변화무쌍이 가득하다. 부디 지금까지의 24 절기 지구가 크게 궤도를 벗어나지 않는 무난 무탈한 25년이 되길 바랄 뿐이다.


그럼 만화의 가드닝 일기, 오늘은 이만.

(2025년 2월 1일~2월 15일)

지난겨울의 흔적을 정리하고 다시 깨끗해진 미니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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