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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만화 Apr 21. 2021

50살, 타운하우스에서 살기로 했다

50이어도 좋아!

지난 3월 말에 7년 넘게 살았던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거주 형태인 아파트를 떠나 같은 동네의 타운하우스로 이사를 한 후 이제 한 달쯤 지났다. 새로운 집에서의 적응이 슬슬 끝나가고 있어서, 그동안의 일들을 조금이나마 정리를 해보려고 브런치를 열었다. 


우리 다섯 가족의 새로운 보금자리가 된 이 집을 게약 한 것은 작년 11월이었다. “오늘 우리, 집이나 한번 보러 갈까?”라고 운을 떼자마자 부동산을 통해 집을 보러 간 그날, 그냥 무엇인가에 홀린 듯 바로 계약금을 보내 버렸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살고 있던 집을 당장 매도부터 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고, 그날부터 하루하루가, 과연 매도를 성공적으로 하고 이사를 갈 수 있을까?라는 긴장의 나날들이었다.  

    

11월 계약, 3월 이사. ‘설마 그동안 집이 안 팔리겠어?’라고 위안을 했지만, 진짜 집이 안 팔렸다. 작년 12월에는 집 보러 오는 사람이 아예 전무했고, 올해 1월 초가 되어서야 집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그렇게 마음고생을 많이 하다가, 1월 말에 이르러서야 결국 시세보다 매도 가격을 좀 낮춰 가까스로 전에 살던 집을 매도할 수 있게 되었고, 지금 집의 잔금을 치르면서 열쇠를 건네받게 되었다.    

     

무엇인가에 홀린 것처럼 집을 계약하고, 부동산 선매도 후매수의 원칙을 절절히 느끼게 해 준 마음고생의 시간을 뼈저리게 보낸 다음에야 입주하게 된 우리 가족의 새로운 보금자리. 조금은 즉흥적인 결정의 결과물인 것 같지만, 사실 오래전부터 타운하우스에서 살고 싶은 로망이 있었다.   

     

작년 초, 나와 아내는 이사를 하고 싶어 몸과 마음이 들썩들썩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사를 하고 싶게 만든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우리 집의 삼 남매가 성장하면서 살던 집이 너무 북적대기 시작한 것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외출도 거의 못하는 상황, 주말에는 집에서 좀 한적하게 쉬고 싶은데, 이제 유아에서 아동으로 훌쩍 자라 버린 남자 둥이들의 우당탕과 왁자지껄함은 나의 스트레스 지수를 엄청나게 높여 버렸다.     

  

그래서 ‘아, 이제 좀 더 큰집으로 이사할 때가 되었다!’라고 생각하고, 같은 동네의 몇몇 집들 중, 그동안 로망으로 품고 있었던 타운하우스부터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타운하우스가 도면상으로, 또 유튜브 영상으로만 봤을 때에는 요즘 기준으로 대식구인 5인 가족의 우리 집 조건에는 좀 많이 작아 보이는 것이었다.    


'아파트에서의 삶'이라는 라이프 스타일의 근본적인 변화는
기대할 수 없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타운하우스에 대한 로망은 접어 버리고, 같은 아파트의 큰 평수로 이사를 하려고 마음을 먹고 부동산을 통해 집도 몇 번 봤었다. 그런데, 이사를 보류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평수만 넓혀서 지금의 집과 거의 같은 구조의 아파트로 가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 것 같았다. '아파트에서의 삶'이라는 라이프 스타일의 근본적인 변화는 기대할 수 없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이제 이사하면, 앞으로 삼 남매가 다 클 때까지는 살아야 할 집인데, 앞으로 적어도 7, 8년 아니 10년 넘어서까지 살 수 있을 집인데, 이 기간 동안 또다시 똑같은 아파트 생활을 하기는 정말 싫었다. 거기다가 작년에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안 그래도 집돌이인 나한테는 아파트를 더더욱 벗어나고 싶었다. 테라스나 작은 마당이 있는 집이 계속 눈에 밟히기 시작하면서. 

     

그리고 이제 50대를 시작하는 시기인 나의 머릿속에는 ‘나의 50대는 무엇인가 다른 생활환경, 다른 라이프 스타일을 시작해 보고 싶어! 이제 무엇인가 좀 다른 집에서 제2의 인생을 서서히 준비해 볼 거야!’라는 생각도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었다.

       

그래서 같은 아파트의 대형 평수로 이사하려는 마음을 완전히 접어 버리고 한동안 인내의 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모든 조건을 만족시켜줄 새로운 주택을 직접 지어 갈 돈은 없고, 이사는 하고 싶고, 우리 동네의 타운하우스는 작은 것 같고, 그래서 결국 이사의 마음을 누르고. 심경의 변화가 하루에도 몇 번, 그러면서 몇몇 타운하우스 후보들을 보고 또 보고. 이런 시간들의 반복이었다.       



그러다가, 작년 11월에 문득 이 집을 만나게 되었다. 사전에 눈여겨보고 있던 어느 타운하우스 단지의 여러 타입의 각종 도면과 이런저런 후기들을 살펴보면서, 만약 이사를 하게 된다면, 우리 가족의 규모와 생활 패턴, 각종 희망사항을 어느 정도 만족시켜 줄 만한 구조를 가진 특정 타입을 점찍어 둔 것이 하나 있었고, 그것이 바로 이 집이었다. 작은 정원, 왁자지껄한 둥이들과 층을 달리하여 분리될 수 있는 구조. 우리 부부의 작업실. 조금 더 넓은 집. 그리고 나의 앞으로의 50대의 삶을 바꾸어줄 집.   


계약할 준비와 마음가짐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부동산을 통해서 집이나 한번 보고, 그냥 구경만 할 작정이었는데, 실제로 방문해서 집안을 둘러보던 중 갑자기 어딘가에서 속삭임이 들렸다. ‘이 집이 딱이네. 어서 계약해. 이런 집이라면, 지금 우리 가족한테 필요한 많은 조건과 바람을 만족시킬 수 있을 거야! 이사를 해버리자고!’ 이런 속삭임과 함께 그날 바로 홀린 듯 갑자기 계약금을 송금하고 매매계약서에 도장을 찍어 버리게 된 것이다. 마치 운명처럼.      


집은 오늘과 추억, 그리고 사람과 삶이 있는 공간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이제 이사한 지 한 달 정도가 지났다. 아직까지도 이 집이 나의 집이 아니라, 어딘가에 여행을 와 있는 느낌이다. 창 밖의 작은 정원에서 하루가 다르게 싹이 돋아나는 식물들과 함께, 하루하루가 새로움의 연속이다. 

      

이사 후 전에 집보다 걸어서 5분 정도 더 멀어진, 큰길을 건너야만 하는 삼 남매의 등하교 길이 걱정이었는데, 모두들 달라진 등하교 길에 금방 적응하며 씩씩하게 잘 다니고 있다. 또 삼 남매는 작은 마당에 찾아온 새들과 이야기하고, 언제든지 자유롭게 마당을 밟으며 개미와 거미, 식물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집안의 계단도 삼 남매에게는 훌륭한 놀이터이자 쉼터가 되고 있다. 책을 읽고 게임을 하고.      


아내는 큰 슈퍼마켓들과 편의 시설들이 길 건너편으로 이동되어 조금의 수고로움이 생겼지만 지하철과 버스 정류장은 상대적으로 더 가까워졌다고 만족해하고 있고, 매일 아침 창밖의 작은 마당으로 나가서 땅 냄새를 맡고 새들의 지저귐을 들으며 스트레칭을 하는 새로운 일상이 시작되었다.  

     

아직 한 달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벌써 조금씩 우리 가족의 삶의 패턴들이 변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고 있다. 아파트에 살면서는 절대로 경험해 보지 못할 것들을 경험해 보면서. 이 집을 어느 날 문득 계약하고, 전에 집을 팔게 되기까지의 마음고생의 시간, 그리고 셀프 인테리어를 하면서 아내가 고생했던 지난날들이 아주 먼 과거처럼 느껴진다. 열심히 절약하고 은행에 빌린 돈을 갚아 나가야 하는 냉정한 현실이 남아 있긴 하지만, 당분간은 새로운 집에서 충분히 즐기려 한다. 집은 오늘과 추억, 그리고 사람과 삶이 있는 공간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이사하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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