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가드닝 일기 - 나는 2년 차 가드너다
한 번씩 매서운 추위가 찾아오기는 했지만, 엘니뇨의 영향, 기상 이변의 영향으로 비교적 따듯한 겨울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2월 4일 입춘. 봄기운이 마당의 공기를 데우고 있었고, 마음은 둥실거리기 시작했다. 멀칭을 들춰 보면 새싹이 여기저기 고개를 내밀고 있을 듯한 겨울의 끝자락, 2월이 시작된 순간이다.
안 그래도 지난겨울 동안 몸은 근질근질, 마음은 저기 꽃밭에 있었는데, 입춘과 함께 찾아온 봄의 기운은 12월과 1월, 두 달 동안의 가드닝 휴식을 끝내라는 신호였다. 그래서 "자, 이제 시작합니다, 2024년의 가드닝, 다시 한번 달려 보자고!"를 외치며, 얼마 전 파종한 봄꽃의 새싹을 애지중지 보살피고, 지난겨울의 정원을 정리하며 힘차게 가드닝의 새로운 문을 열었다.
먼저 봄꽃 파종. 실내 파종을 할까 말까 고민을 했지만 길고 긴 겨울, 심심하고 무료해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파종이나 한 번 해볼까? 마음을 먹고 '지피 펠렛'을 주문했다. 압축된 배양토로 만들어 흙을 뭉치고 납작한 형태로 만들어 놓은 이 지피 펠렛은 작은 크기의 씨앗을 효율적으로 발아시키고 초기 생장을 지원해 파종의 성공률을 높여준다.
지피 펠렛을 트레이 같은 곳에 놓아두고 물을 조금 넉넉하게 부은 후 삼십 분에서 한 시간 정도 기다리면 원래의 모양으로로 커진다. 그 후 가운데 조그맣게 움푹 파인 곳에 씨앗을 넣고 이 씨앗이 마르지 않도록 아침저녁 분무기로 물을 뿌려가며 잘 보살피면, 어느 순간 씨앗이 터지고 새싹이 나와 자라기 시작한다.
문제는 햇볕이다. 대부분의 실내에서는 아무리 볕이 잘 드는 창가라 하더라도 햇볕이 부족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발아한 새싹이 콩나물처럼 웃자라게 된다. 이런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식물등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래서 검색을 해보았더니 필립스 식물등이 유명했다.
필립스 식물등은 PAR30, PAR38 두 종류가 있다. PAR30이 비교적 최신 모델로, PAR38보다 작은 사이즈에 가벼운 무게를 가지고 있다. 또 30은 빛 각도 25도로 좁은 범위에 강한 빛, 38은 빛 각도 50도로 넓은 범위에 약한 빛, 이런 차이가 있다.
PAR30을 직접 사용해 보니, 빛을 제대로 비출 수 있는 적정 범위는 지피 펠렛 40~50개 정도가 전부였다. 그래서 파종을 손 크게 하시는 분들은 식물등을 복수로 구입해서 새싹들에게 빛을 공급해 줄 필요가 있다.
또 식물등이 일반 전구보다 조금 무거워 그 무게를 견딜 수 있는 조명 스탠드를 따로 구입해야 한다. 이 투자금과 이 고생이면 차라리 모종을 사고 말지,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것 같아 이게 맞나 싶었다. 그래도 무료한 겨울을 생동감 있게 보내기 위해 놀 거리를 장만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지난가을에 실패했던 왜성 수레국화와 키가 작은 겹 루드베키아, 그리고 비올라 2종을 먼저 파종했고, 일주일 후에 다시 팬지 3종과 비올라 한종을 더 파종했다. 파종을 하고 일주일. 왜성 수레국화와 비올라의 새싹이 몇 개 올라오기 시작했고, 그리고 또 일주일 후 파종 후발대 팬지와 비올라의 씨앗이 모두 발아에 성공했다.
이렇게 발아에 성공한 아이들은 식물등의 도움을 받아 지금도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매일매일 아침저녁으로 물을 뿌려주며 싹은 나왔는지 본 잎은 나왔는지, 또 오늘은 얼마나 컸는지 하루하루 이 아이들과 함께 하다 보니, 1월 중순부터 2월 중순까지의 한 달이 금방 지나가 버렸다.
많은 가드닝 선배님들이 겨울 실내 파종을 하는 것은 봄 정원을 준비하기 위한 작업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겨울 동안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함이 더 큰 이유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아마도 올해와 마찬가지로 내년 1월에도 열심히 실내 봄꽃 파종을 하며 겨울을 보내고 봄을 준비하게 될 것 같다.
집 안에서는 이렇게 파종과 함께 가드닝을 시작했다면, 입춘 맞이 겨울 정원을 정리하며 마당에서의 가드닝이 시작되었다. 지난겨울 눈과 함께 마당을 운치 있게 만들어 주었던 숙근초와 그라스들을 깔끔하게 정리했는데, 숙근초는 시들어 버린 줄기를 지면 위에서 싹둑 자르고 그라스는 밑동 십 센티 정도를 남기고 잘라주었다.
겨울 정원을 정리하다 보니 어떤 숙근초들이 추위게 강한지 알 수 있었다. 아스타, 쑥부쟁이 등의 국화류와 꼬리풀과 톱풀 등이 지난겨울 영하 15도 내외의 추위에는 끄떡없이 푸르름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렇게 겨울을 씩씩하게 견디고 다시 자라나는 노지월동 숙근초들은 몸집을 더욱 키워 풍성한 꽃을 피우게 될 것이다.
한편 이렇게 잘린 시든 꽃과 그라스는 따로 버리지 않고 잘게 잘라 마당 곳곳에 멀칭 재료로 뿌려 주었다. 이 마당에서 나고 자라난 녀석들이 다시 이 마당의 흙으로 돌아가니, 우리 집 마당 안에서 돌고 도는 작은 생태계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 같아 조금은 마음에 위안도 되고, 생태계의 건강힘이 자라나는 기분이다.
입춘이 지나고 마당에 봄기운이 본격적으로 피어나고 있다. 지난겨울을 녹색의 잎 그대로 버텼던 홍지네 고사리, 휴케라, 국화 친구들 등 많은 아이들이 초록초록함을 점점 더 내뿜고 있다.
그리고 이제 땅속에서 하나 둘 수줍게 올라오는 새싹들. 겨울의 끝, 이른 봄의 시간에 이 새싹을 마주하는 순간 언제나 경이롭고 설렘이 가득하다. 이 아이들은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 자기만의 계절을 기다리며 천천히 자라날 것이다. 그러다 꽃이 한가득 피는 순간이 찾아올 때면, 비록 손바닥 만한 정원일지라도 꽃을 키우고 가꾸는 소소한 행복과 함께 할 수 있는 일상에 진심으로 감사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자, 가드닝 2년 차다. 마당의 꽃과 나무는 조금 더 많아졌고, 설렘도 그만큼 더 커졌다. 2024년 올해는 또 나의 가드닝 여정에 어떤 일들이 생겨날까? 두근두근 개봉박두.
그럼 만화의 가드닝 일기, 오늘은 이만.
(2024년 2월 1일~2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