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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Park Sep 19. 2023

[culture] 문화는 회사가 성장할 때 망가집니다.

*2022년 리멤버 인플루언서 활동 당시 작성했던 글입니다.


“문화는 회사가 성장할 때 망가져요. 그러다 성장이 주춤하는 순간, 문화의 역습이 시작됩니다.”


사실 문화담당이 가장 불안하고 긴장하는 순간은 회사가 빠르게 성장할 때입니다. 이른바 숫자(정량적 목표)가 모든 걸 잡아먹는 상황에서는 창업 초기부터 지켜오던 문화적 기준들이 유연성이라는 명목 하에 무너지기 시작하거든요. 대표적인 예가 영입 기준입니다. 많은 회사들이 영입 단계에서 컬처핏이라는 걸 봐요. 컬처핏은 사실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어요. 그냥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인지를 검증하는 것이고, 이는 면접관의 주관이 아니라 회사 안에 합의되어 있는 일하는 방식(핵심 가치)을 기준으로 판단하게 됩니다. 창업 초기, 소규모 조직에서는 팀워크의 중요성이 절대적이기 때문에 컬처핏 자체가 매우 엄격하게 작동해요. 아무리 역량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회사(혹은 창업자)의 미션이나 일하는 방식(핵심가치)에 어긋나면 뽑지 않죠.


그런데 회사가 급성장하고 조직 기능이 세분화되면서 단기간에 많은 인력이 필요해져요. 유니콘 기업 중에는 1년 안에 전체 인원이 2-3배로 커지는 경우도 종종 있으니까요. 그만큼 사람을 확보하고 채우는 일에 (HR의) 사활이 걸려있죠. 문제는 영입을 하다 보면 JD 적합도나 역량은 우수한데, 컬처핏이 맞지 않는 지원자들이 종종 있거든요. 경력직을 중심으로 채용할 때 이 부분이 더 명확하게 느껴져요. 일정 기간 직장 생활을 했던 사람들은 의도하지 않더라도 본인만의 업무 방식에 익숙해져 있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데 지금 당장 회사는 성장해야 하고 조직마다 사람이 없다고 아우성인데…. 추상적으로 느껴지는 컬처핏 때문에 지원자들을 떨어뜨리는 게 맞냐는 이야기들이 반복적으로 나오게 되죠. 때문에 안타깝게도 성과와 성장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상황에선 그 어느 때보다 컬처핏의 기준이 관대해져요.  


영입의 기준만 관대해지는 건 아니에요. 단기간에 많은 사람들이 들어오다 보니 온보딩 과정이 축약되거나 생략되는 경우가 생기고, 조직의 평가/보상/리더 선임 기준도 유연해지기 시작해요. 인력 구성이 달라졌으니 기준이 달라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예요. 심지어 우리가 합의한 방식으로 일하지 않더라도 성과만 내면, 높은 평가와 보상을 받는 스타플레이어들이 탄생하기도 하죠. 이쯤 되면 “아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은 뭐야…?”, “아 우리 회사의 기업문화는 뭐지?”라는 찜찜한 VOE들이 스멀스멀 들리기 시작합니다. 늦었지만 이 상황에서라도 문화를 다시 점검하고, 회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과 제도를 다시 합의하는 과정을 거치면 참 좋을 텐데…. 이미 정량적 목표가 조직을 지배하는 상황에서는 이런 말 자체가 통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요. 일부 문화담당들이 우려 섞인 조언을 하더라도 “참 한가한 소리 한다.” 심하게는 “쓸데없는 일 한다. 그럴 시간에 성과를 낼 수 있게 실천 워크숍이나 준비해라” 등등의 피드백이나 듣지 않으면 다행이랍니다.


그런데 이렇게 문화적 기준(일하는 방식)이 무너지면 어떻게 될까요? 필연적으로 조직 안에는 갈등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일하는 방식이라는 게 평소에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조직 갈등을 줄이는데 큰 역할을 하거든요. 일하는 방식의 의미는 “당신이 어떤 가치관을 가진 사람인지는 차치하고(존중하는데), 회사/조직에서 일할 때 최소한 이것만큼은 함께 지키며 일해야 해요. 그래야 우리 회사의 비전과 전략이 달성될 수 있어요.”라는 것인데요. 때문에 일하는 방식이 잘 공유되고 실천되는 회사에서는 상호 예측가능성이 높고 협업이 잘 돼요. 예컨대 “우리 회사의 일하는 방식은 건강한 충돌이니까. 내가 회의 석상에서 강하게 의견을 말하더라도 동료들이 기분 나빠하지 않겠지”라는 예측이 가능하다는 거죠. 그러니 발언에도 망설임이 없고, 쓸데없는 에너지 낭비 없이(이래도 될까.. 저래도 될까…) 일할 수 있는 거죠. 반대로 일하는 방식 자체가 무너지기 시작하면 상호 예측가능성이 현저하게 떨어지게 되겠죠. 분명 회사 홈페이지 일하는 방식에는 건강한 충돌이 적혀있음에도 정작 회의에서는 침묵이 이어지거나 서로 좋은 소리만 하다 끝나는 경우가 대표적이에요. (다들 경험 있으시죠?^^;)


그럼에도 문화는 성과에 선행하기 때문에 문화가 망가진다고 회사의 실적이 바로 나빠지는 건 아니에요. 회사가 성장한다는 건 대외변수의 영향도 크기 때문에, 시장 수요와 트렌드에 잘 대응하면 문화가 망가지던지 간에 회사는 당분간 성장을 이어갈 가능성이 높아요. 그런데 정말 무서운 건 이런 성장이 오래될수록 문화는 더 깊이 망가지게 된다는 거예요. 어떤 기업이든 끝없이 성장만 하기는 힘들잖아요. 대외 환경이 변화하고 수요가 줄어드는 등 언젠가는 성장이 주춤한 순간에 직면하게 되는데요. 바로 이 순간부터 문화의 역습이 시작됩니다. (슬프게도 경영진이 부랴부랴 문화담당을 찾는 시점이기도 하죠.) 회사가 위기일수록 구성원 간에 협업이 정말 중요해지는데 조직 간, 담당 간에 서로 일하는 방식이 다르고 축적된 사회적 자본(신뢰 등)이 없다 보니 위기를 극복할 모멘텀을 확보하기 힘들어집니다. 설사 누군가 혜안을 제시한다고 하더라도 합의와 실행(협업) 이 어렵죠. 서로 총대를 메기 싫어서 한발 물러나 상황을 지켜보려고 할 거예요. 그렇다 보니 아무리 유명한 전략 컨설팅을 동원해서 턴어라운드 전략을 짜고 실행하려고 해도 맘처럼 실행되지 않는 거죠.


문화는 결과이고 증상이기 때문에 제도(영입 컬처핏, 평가 기준 등)와 리더십이 문화와 따로 놀기 시작한 순간부터 이미 기업문화 자체는 유명무실해진 셈이거든요. 그럼 다시 원점에서 문화를 들여다보고 ‘현재 시점의’ 구성원들과 허심탄회하게 논의, 합의하는 과정을 거쳐 리더십과 제도의 양 축을 다시 세우고 이를 통해 문화를 재정립(동시대화)하는 작업을 해야 해요. 그런데 이 과정이 정말 쉽지 않아요. 성장하는 기간이 길었고, 망가진 문화를 오래 방치한 회사일수록 더 어렵죠. 그렇다 보니 조금 쉽고 즉각적인 개선을 만들기 위해 문화를 문화로 바꾸려는 시도들이 시작되죠. 대표적인 시도가 문화 캠페인, 무슨무슨 선언식 이런 거죠. 그런데 이미 문화가 뭔지도 모르는 지경이고 조직 신뢰는 다 깨졌는데, 이런 게 통할리 없잖아요. 안타까운 일이죠. 결국 방법은 하나예요. 지름길을 찾지 말고 큰 결단을 통해 다시 문화를 정립하는 일을 시작해야만 합니다.


오늘은 문화가 언제 망가지는지에 대한 저의 생각을 간단히 나눠보았어요. 원래 문화 재정립 과정에 대해서 적어보려고 시작했는데… 이건 다음 기회에 적어볼게요. 오늘 글을 적으면서 생각해 보니 개인의 삶과 회사의 삶에 비슷한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사람들도 성공의 순간을 만끽하다가 자칫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를 망치는 경우가 있잖아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잠깐 잊어버리고 (정신줄을 놓고) 사람들을 대했기 때문은 아닐까요? 물론 회사든 개인이든 변화 자체를 막을 순 없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회사도 규모에 맞게 성장하는 게 건강한 거죠. 다만, 한 번쯤은 시간을 내어 지금 상황을 돌아보고 이게 맞나? 회사는 성장하는데 우리 문화도 그에 맞춰 성장하고 있나?라는 점검을 해보는 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혹시 지금,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회사가 있다면 잠시만 숨을 고르고 기업문화에 대해 구성원들과 솔직한 이야기를 나눠보시길 추천합니다. 대부분의 답은 구성원들이 이미 가지고 있거든요.


오늘도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Note: 제가 남기는 글들은 기업문화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정리한 것으로 특정 회사나 조직의 상황을 가정하고 쓴 글이 아님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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