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크푸르트에서 아테네로 가는 날이다. 6시 50분발 비행기라 공항에 5시까지는 가야 한다. 숙소에서 새벽 4시 20분에 나왔다. 전철역(Sud Haptbahnhof)까지 뛰다시피 걸으니 채 몇 분이 안 걸렸다.
칠흑 같은 새벽을 뚫고 프랑크푸르트 주택가를 걷는 사람은 배낭 멘 동양 이방인 여자 나 혼자 뿐이다.
'깜깜한 새벽에 사람 하나 없는 게 무서운가, 사람을 마주치는 게 무서운가' 이런 생각을 잠시 하며 걷다가 순간 흠칫했다. '과연 움직이는 생명체의 정체는?' 어둠 속에서 후다닥 주차된 차 밑으로 들어가는 생쥐 두 마리! 나보다 생쥐들이 더 놀랐다. 아, 이 새벽, 나는 생쥐 두 마리의 배웅을 받고 독일을 떠나는구나.
한국에서 늘 하던 것처럼, 역사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갔더니 U반 타는 곳이다. "어? 이게 아닌데?" 당황했다. "여기서 이러시면 아니되옵니다.(나 지금 공항가는 중!!! 지체하면 안된다구요.)"
독일은 지하철 입구 하나로 U반, S반, 지역 열차가 다 다니기 때문에 헷갈린다. 마치 우리나라 버스 정류장에 여러 노선의 버스가 서듯. 전철역 타는 곳 한 군데에 여러 노선의 전철이 다닌다. 다시 계단을 뛰어 올라 플랫폼 7번을 찾아냈다. 전광판까지 확인하고 나니 안심이 된다.
플랫폼에 사람이 한 둘 보였다. 4시 39분발 공항행 교외 열차(RE59)가 53분발로 연착된단다. 독일 열차가 시간을 잘 안 지킨다더니 진짜 그런가 보다. 교외 열차는 20유로는 족히 나올 우버 대신 '49유로 한달권'으로 추가 요금 없이 공항 가는 방법이다. 내가 타려고 하는 차는 공항 가는 첫 기차였다.
프랑크푸르트 전철역(Sud Haptbahnhof)에서 공항 가는 열차를 기다리며
4시 54분에 기차를 타니 10여 분 만에 공항에 도착했다. 온라인 체크인도 했고 짐도 따로 안 부칠 거라 공항 검색대를 순식간에 통과했다. 여권도 내밀 일이 없고 보딩 패스 하나로 패스, 패스다. 다녀본 세계 각지의 공항 중 유럽 공항이 제일 쿨하다.
탑승구를 찾아 앉았다. 갖고 간 빵과 사과로 요기를 하고 나니 커피 생각이 났다. 커피 한 잔만 몸속에 주유하면 간밤에 잠 설친 것도 공항까지 오느라 긴장한 것도 일시에 정리될 것 같았다.
게이트 부근 카페 두 군데 다 커피값이 4.2유로였다. 그러다가 루프트한자 커피 머신을 발견했다. "어? 나 루프트한자 탈 건데, 서비스인가?" 하며 다가갔더니 웬걸 유료 자판기다. 3.5유로란다. "참내, 자판기 커피가 그 가격이면 차라리 4.2유로 주고 사 먹겠다."
'비행기 타면 커피 한 잔은 주겠지.' 참기로 했다. 그런데 참아야 하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 비행기가 1시간 지연되었고 중간에 게이트를 바꿔가며 기다려야 했다.
비행기가 이륙하자 이윽고 기다리던 음료 카트가 지나간다. 커피를 요청했다. "노 슈가, 노 밀크" '역시 공항에서 안 사 마시길 잘했어.'나를 칭찬한 순간, 승무원이 뭐라고 뭐라고 한다. 아뿔싸! 돈 내라네? 커피 한 잔에 3.5유로! 그렇게 강제 결제 당했네. 눈뜨고 코를 베었다. 역시 이불 밖은 위험해!
저가 항공도 아니고 명색이 독일 국적기 루프트한자가 국내선도 아닌 3시간짜리 국제선에 식사, 아니 간식은 못 줘도 유료 커피라니. 비행의 꽃은 기내식인데 그런 즐거움마저 뺏아 가나요?(나중에 생수와 미니 초콜릿 하나는 줬다.)
루프트한자 너무해요! 정없게 달랑 초콜릿 하나가 뭐람!
사실 돈 주고 사 먹은 기내 커피는 맛없었다. 어차피 맛없기는 자판기 커피도 공항 커피도 마찬가진데 사람이 서비스하는 커피를 3.5유로로 마신 거면 나쁘지 않다. 마시고 싶을 때 마셨고 구름 위 천상 카페라고 치면 전망값은 하고도 남는다.(앞으로 여행은 이런 류의 정신승리가 계속되겠지?)
독일에서 아테네 가는 도중이었으니 알프스 위쯤 아닐까?
어쩌다 보니 그리스로 혼자 떠나오게 되었다. 독일의 딸아이에게 갔다가 이스탄불에서 친구와 만나기 전에 사이에 낀 두 주간 나 홀로 그리스를 여행하려고 한다.
여행은 총 6주로, 독일 1주, 그리스 2주, 튀르키예 3주 일정이다. 혼자 여행이 처음은 아니지만 여행에 미쳐 나다니던 과거의 나보다 몸이 좀더 노쇠했고 겁도 좀더 많아졌다.
폰에 다운로드해 둔 <곰브리치 세계사>를 좀 읽다가 한숨 자고 나니 아테네 땅에 바퀴가 닿았다. 이제부터 그리스에서 나 혼자 여정이 펼쳐진다. 혼자라서 자유롭다! 혼자라도 재밌을까?
※ 2024.5.27~6.9 14일간 혼자 다녀온 그리스 여행기를 지각 발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