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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트립 Feb 15. 2024

스무 번째 나라, 한국에 와서 놀란 점

10개월 해외여행 끝에 한국에 왔더니

오늘 수영장에서 배영을 하다가 다른 사람과 부딪혔다. 순간 나도 모르게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쏘리!" 내 입으로 뱉고도 내 귀가 의심되었다.


10개월의 여행을 끝내고 귀국한 지 보름이 지났다. 원래의 일상에 다 적응했다고 생각한 이 순간에도 나의 잠재의식은 아직도 내가 세계 어딘가를 떠돌고 있다고 여기는 것일까? 뭐, 그렇다고 치자. 난 지금 스무 번째 나라, 나의 조국, 한국을 떠돌고 있으니까.


여행의 전리품, 여러 도시의 교통카드. 공항까지 오는 데 사용해야 하는 관계로 마지막까지 내 손에 남을 수밖에 없다.


여행 마지막 나라인 튀르키예에서 귀국 항공편을 타려고 하니 다음 나라로 다음 스텝을 옮기는 데도 아무런 준비가 필요 없었다. 그동안 나라를 옮길 때마다 온 신경이 곤두섰다. 입국 공항에서 숙소 찾아가는 법, 환전, 대중교통편, 유심 구입 등을 알아보고 실행하는데 모든 에너지를 집중해서 썼는데 한국으로 가는 길은 그냥 비행기를 타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내 집으로 간다는 것, 내 나라로 돌아간다라는 건 이런 거였구나.

 


한국에 와서 놀란 점 네 가지


300일 동안 19개 나라 67개 도시를 돌아다녔다.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튀르키예, 미국, 멕시코, 콜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 브라질... 귀국해서 몸은 한국 땅을 밟았어도 아직 여행자의 관성에서 못 벗어났는지 한국이 마냥 신기하기만 하다. 한국에 오니, 놀라운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전엔 왜 몰랐을까.


첫째, 방바닥이 따뜻해요

집에 와서 내 방 문을 열고 들어서자, 발바닥이 따뜻했다. 방바닥의 온기가 온몸으로 타고 흐르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행복감이 느껴졌다. 그래 이런 따뜻한 바닥은 우리나라뿐이었네. 그동안 다닌 19개의 나라에서 볼 수 없었던 가정용 보일러 난방이다. 세계에서 전무후무한 '온돌 난방'이라는 똑똑한 난방시스템을 '보통 사람들'의 집마다 깔아놓은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다.


둘째, 버스든 전철이든 폰 하나로 척척

가히, 대중교통강국이다. 교통카드 하나로 전철과 버스를 다 탈 수 있는 곳은 외국에도 더러 있지만 대개 한 도시에 한정되어 있다. 스마트폰 하나로 온 나라의 버스와 전철을 자유자재로 환승해 타는 시스템은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전철이나 버스를 내릴 때 하차 정보를 찍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요금마저 저렴하다.


셋째, K-화장실도 수출하자

한국에서 화장실은 공공재다. 전철이든 공원이든 가는 곳마다 무료 공공화장실이 있고 우리 집 화장실보다 더 깨끗하게 관리된다. 범죄 위험과 슬럼화 등의 염려로 화장실이 유료인 유럽과 중남미, 무료라고 해도 인색하기 짝이 없는 미국을 여행하다가 우리나라에 오니 한국은 그야말로 화장실 천국! K-화장실도 수출하자!


안전하고 깨끗한 화장실은 늘 가까이 있다(서울역 지하철에서)


넷째, 지하철 입구에서 서서 폰도 들여다봐요

여행 중 지하 타기는 거의 작전 수준이었다. 미리 노선과 방향과 내릴 곳을 다 외워야 했고 '전철 출입문 입구에 서 있지 말 것, 폰을 들여다보지 말 것... ' 이런저런 치안 수칙을 명심하고 다녔다. 실제로 파리 전철에서 소매치기당할 뻔한 적도 있었고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대로변에서 휴대폰을 강탈당한 적도 있었다. 한국 지하철을 타니 내가 서 있는 곳이 지하철 객차 입구인지 안쪽인지 구분 개념조차 없고 무심히 폰도 들여다본다. '안전한' 한국에선 늘 그래왔으니까.



한국에 가면...


어릴 적에 하던 '시장에 가면'이라는 놀이가 있었다. 시장에 가면 뭐도 있고, 뭐도 있고... 누구나 한 번 쯤해봤을 법한 이 놀이는 '자기 차례가 돌아오면 앞사람 것을 차례로 반복한 다음 자기 것을 덧붙이는 언어 놀이'이다.


'시장에 가면' 대신 '한국에 가면'으로 바꿔 보겠다. "한국에 가면 배달음식이 있고, 라면이 있고, 택배가 있고, *도어록이 있고, **다이소가 있고, 빠른 인터넷이 있고, 스크린도어가 있고, 진동벨이 있고, 쓰레기 분리수거가 있고..." 헉, 숨 넘어간다. 한국에 가면 '한국말이 있고, 한식이 있고'는 뺐는데도 말이다.(*외국은 열쇠가 보편적, **미니소나 타이거처럼 다이소와 비슷한 것도 있지만 팬시용품 위주이고 상품이 제한적)


10개월은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한국에 오자마자 건강보험공단에 자격 복귀 처리를 했고 자동차 보험도 새로 가입하고 자동차등록소에 보관시켰던 자동차번호판도 찾아왔다. ***신용카드도 재발급받았다.(***신용카드 복제로 영국에서 월단위로 통신요금을 빼가고 있었음.) 이로써 한국살이 세팅은 완료되었다.


어차피 여행자의 정체성에서 완전히 헤어 나오지 못한 김에 여행자의 텐션을 유지하며 한국살이를 해 보려고 한다. 여행은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보는 훈련다. 그동안 누릴 때는 공기처럼 당연히 여기던 것이  공백만에 다시 누리니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새삼 신기하고 감사한 것, 한국적인 것들을 찾아서, 지금부터 스무 번째 나라, 한국 여행 시작!

   



2023년 3월부터 12월까지, 약 10개월의 장기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유럽(프랑스, 독일, 체코, 아일랜드, 영국, 이탈리아), 튀르키예, 미국, 중남미(멕시코, 과테말라, 콜롬비아, 에콰도르, 페루, 볼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 브라질)를, 짧게는 한 나라에 두 주, 길게는 2개월씩 머물며 적잖은 도시들을 돌아다녔습니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부족한 글 읽어주시고 응원해주신 독자님들께 저의 무사귀환 소식과 함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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