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프롤로그]혼자라서 자유롭다! 혼자라도 재밌을까?

나홀로 그리스(1)

by 위트립

프랑크푸르트에서 아테네로 가는 날이다. 6시 50분발 비행기라 공항에 5시까지는 가야 한다. 숙소에서 새벽 4시 20분에 나왔다. 전철역(Sud Haptbahnhof)까지 뛰다시피 걸으니 채 몇 분이 안 걸렸다.


칠흑 같은 새벽을 뚫고 프랑크푸르트 주택가를 걷는 사람은 배낭 멘 동양 이방인 여자 나 혼자 뿐이다.


'깜깜한 새벽에 사람 하나 없는 게 무서운가, 사람을 마주치는 게 무서운가' 이런 생각을 잠시 하며 걷다가 순간 흠칫했다. '과연 움직이는 생명체의 정체는?' 어둠 속에서 후다닥 주차된 차 밑으로 들어가는 생쥐 두 마리! 나보다 생쥐들이 더 놀랐다. 아, 이 새벽, 나는 생쥐 두 마리의 배웅을 받고 독일을 떠나는구나.


한국에서 늘 하던 것처럼, 역사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갔더니 U반 타는 곳이다. "어? 이게 아닌데?" 당황했다. "여기서 이러시면 아니되옵니다.(나 지금 공항가는 중!!! 지체하면 안된다구요.)"


독일은 지하철 입구 하나로 U반, S반, 지역 열차가 다 다니기 때문에 헷갈린다. 마치 우리나라 버스 정류장에 여러 노선의 버스가 서듯. 전철역 타는 곳 한 군데에 여러 노선의 전철이 다닌다. 다시 계단을 뛰어 올라 플랫폼 7번을 찾아냈다. 전광판까지 확인하고 나니 안심이 된다.


플랫폼에 사람이 한 둘 보였다. 4시 39분발 공항행 교외 열차(RE59)가 53분발로 연착된단다. 독일 열차가 시간을 잘 안 지킨다더니 진짜 그런가 보다. 교외 열차는 20유로는 족히 나올 우버 대신 '49유로 한달권'으로 추가 요금 없이 공항 가는 방법이다. 내가 타려고 하는 차는 공항 가는 첫 기차였다.


프랑크푸르트_공항가는길.jpg 프랑크푸르트 전철역(Sud Haptbahnhof)에서 공항 가는 열차를 기다리며


4시 54분에 기차를 타니 10여 분 만에 공항에 도착했다. 온라인 체크인도 했고 짐도 따로 안 부칠 거라 공항 검색대를 순식간에 통과했다. 여권도 내밀 일이 없고 보딩 패스 하나로 패스, 패스다. 다녀본 세계 각지의 공항 중 유럽 공항이 제일 쿨하다.


탑승구를 찾아 앉았다. 갖고 간 빵과 사과로 요기를 하고 나니 커피 생각이 났다. 커피 한 잔만 몸속에 주유하면 간밤에 잠 설친 것도 공항까지 오느라 긴장한 것도 일시에 정리될 것 같았다.


게이트 부근 카페 두 군데 다 커피값이 4.2유로였다. 그러다가 루프트한자 커피 머신을 발견했다. "어? 나 루프트한자 탈 건데, 서비스인가?" 하며 다가갔더니 웬걸 유료 자판기다. 3.5유로란다. "참내, 자판기 커피가 그 가격이면 차라리 4.2유로 주고 사 먹겠다."


'비행기 타면 커피 한 잔은 주겠지.' 참기로 했다. 그런데 참아야 하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 비행기가 1시간 지연되었고 중간에 게이트를 바꿔가며 기다려야 했다.


비행기가 이륙하자 이윽고 기다리던 음료 카트가 지나간다. 커피를 요청했다. "노 슈가, 노 밀크" '역시 공항에서 안 사 마시길 잘했어.'나를 칭찬한 순간, 승무원이 뭐라고 뭐라고 한다. 아뿔싸! 돈 내라네? 커피 한 잔에 3.5유로! 그렇게 강제 결제 당했네. 눈뜨고 코를 베었다. 역시 이불 밖은 위험해!


저가 항공도 아니고 명색이 독일 국적기 루프트한자가 국내선도 아닌 3시간짜리 국제선에 식사, 아니 간식은 못 줘도 유료 커피라니. 비행의 꽃은 기내식인데 그런 즐거움마저 뺏아 가나요?(나중에 생수와 미니 초콜릿 하나는 줬다.)


20240527_085816.jpg 루프트한자 너무해요! 정없게 달랑 초콜릿 하나가 뭐람!


사실 돈 주고 사 먹은 기내 커피는 맛없었다. 어차피 맛없기는 자판기 커피도 공항 커피도 마찬가진데 사람이 서비스하는 커피를 3.5유로로 마신 거면 나쁘지 않다. 마시고 싶을 때 마셨고 구름 위 천상 카페라고 치면 전망값은 하고도 남는다.(앞으로 여행은 이런 류의 정신승리가 계속되겠지?)


0527_기내_설산과구름.jpg 독일에서 아테네 가는 도중이었으니 알프스 위쯤 아닐까?


어쩌다 보니 그리스로 혼자 떠나오게 되었다. 독일의 딸아이에게 갔다가 이스탄불에서 친구와 만나기 전에 사이에 낀 두 주간 나 홀로 그리스를 여행하려고 한다.


여행은 총 6주로, 독일 1주, 그리스 2주, 튀르키예 3주 일정이다. 혼자 여행이 처음은 아니지만 여행에 미쳐 나다니던 과거의 나보다 몸이 좀더 노쇠했고 겁도 좀더 많아졌다.


폰에 다운로드해 둔 <곰브리치 세계사>를 좀 읽다가 한숨 자고 나니 아테네 땅에 바퀴가 닿았다. 이제부터 그리스에서 나 혼자 여정이 펼쳐진다. 혼자라서 자유롭다! 혼자라도 재밌을까?




※ 2024.5.27~6.9 14일간 혼자 다녀온 그리스 여행기를 지각 발행합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스무 번째 나라, 한국에 와서 놀란 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