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10개월 여행의 막바지다. 독일에서 시작된 유럽 여행 1달반과 미국 서부 1달반, 중남미 6개월 여행의 종착국은 브라질이다. 이제 슬슬 귀국길 시동을 걸어야 한다
집으로 가는 길에 로마
귀국 항공권을 알아보니 리우데자네이로에서는 태평양보다 대서양을 건너는 항공편이 시간으로나 돈으로나 이득이었다. 그마저도 두바이 경유 20여시간에 편도 180만 원에 달했다. 두바이에서 스탑오버로 놀다가는 방법을 찾아보다가 '이참에 아예 자가 경유를 해버릴까?'라는 생각에 이르자 일이 커져 버렸다.
리우데자네이로에서 출발해 집으로 가는 길에 두 도시, 로마와 이스탄불을 찍고 가기로 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니 우리 집까지도 통하지 않을까. 로마 열흘, 이스탄불 일주일을 거쳐, 해(年) 넘기기 전 한국 땅을 밟을 예정이다.귀국길이 또 하나의 여행길이 되었다.
로마 하면 콜로세움
콜로세움에 갔을 때였다. 관광지 입장료도 항공권만큼이나 자본주의적이다. 돈을 조금 더 내면 넓은 좌석, 또 아주조금 더 쓰면 원하는 좌석에 앉게 해주는 항공권처럼 콜로세움에서 경기장만 보는 건 18유로, 지하까지 볼 수 있는 건 25유로. 단돈 만 원을 더 쓰면 지하를 보여 준단다. 잠시 갈등하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법칙에 지고 말았다.
콜로세움은 10시 예약이었고 사람들이 가는 대로 따라갔더니 포로 로마노 입구였다. 통합입장권이라 콜로세움으로 통하는 길이 있겠거니 생각했다. 포로 로마노는 꽤 넓었고 팔란티노 언덕까지 올라갔다가 콜로세움으로 가려고 하니 연결통로가 없었다.
팔란티노 언덕에서 내려다본 포로 로마노
콜로세움 입구에 가니 11시가 훨씬 지났고 시간이 늦어 입장을 거절당했다. 그렇게 25달러짜리 입장권을 날렸다. 방심은 돈을 부른다. 긴 여행 말미라 긴장이 풀렸고 주의를 덜 기울인 탓이다.
그렇게 해서 콜로세움을 이틀 연거푸 찾게 되었다. 덕분에 콜로세움을 아침 빛과 석양 빛의 서로 다른 빛 속에서 봤다. 사실 콜로세움은 시내를 오가는 버스 안에서, 걸어 다니면서 매일 봤다. 1,500년 전에 만든 건축물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웅장했고 아우라가 특별했다. 로마는 상상력으로 보는 거라고 한다. 나의 부족한 상상력을 보충하기 위해 오래전에 봤던 영화 글래디에이터를 다시 보고 또 실물 콜로세움을 보았다.
로마는 콜로세움!
살아있는 박물관, 로마와의 짧은 인사
로마에서는 버스 차창 밖 풍경도 클래스가 달랐다. 콜로세움도 이웃집 굴뚝처럼 무심히 서 있고 2천 년 유물인 수도교 아래로 내가 탄 버스가 다닌다. 심지어 수도교의 일부를 가정집 담벼락으로 쓰는 로마의 시크함이라니!
수도교를 걸으며
유적과 한 몸으로 살아가는 로마인. 수도교가 누군가의 집 담벼락으로...
로마 교외 피그네토(Pigneto)의 숙소는 '현지인처럼 살아본다'는 에어비앤비 숙소에 대한 환상이 딱 맞아떨어지는 곳이었다. 매일 아침 로마 시민과 섞여 버스를 타고 관광지로 출근하는 일상이라니!
숙소가 있었던 로마 교외 피그네토(Pigneto)
12월의 로마는 맑았고 플라타너스잎과 은행잎이 거리를 뒹굴었다. 올 3월 집을 떠나 유럽의 봄, 미국의 여름, 남미의 봄과 여름을 지내며 놓친 '가을'의 끝자락이 로마에 남아있었다. 매일 30도가 넘는 브라질에서 넘어왔더니 서늘한 공기 속에 가만히 있기만 해도 몸이 행복했고, 눈을 들면 온통 유적이라 정신까지 절로 풍요로웠다.
이번 로마는 로마와의 상견례일 뿐이다. 귀국하면 난 호시탐탐 노릴 것이 분명하다. '언제 다시 로마로 갈까?' 이틀에 한 번 꼴로 들렀던 우리 동네 피자집주인이 날 궁금해할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