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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트립 Jul 31. 2024

폭염도 비껴간다, 7월엔 스페인어

요즘 매일 스페인어로 잠들고 스페인어로 깨어나고 있다. 스페인어 문장 외우기로 하루를 마무리하고 전날 외웠던 문장을 중얼거리며 하루를 시작한다.


듣보잡의 외계 언어인 것만 같은 스페인어 문장을 무작정 외워대는 일상이라니. 단어 뜻도 문장 구조도 낯선 외우고 또 외운다. 운전 중에, 길을 걸으면서, 누구를 기다리면서... 이 강력한 '동기 부여'는 어디에서 온 것인가.


7월부터 도서관에서 하는 초급스페인어 강좌를 주 1회 듣고 있다. 단 1초 만에 마감된다는 15명 정원의 원어민 강의에 당당히 8번째로 광클릭 수강신청에 성공했다.


멕시코 원어민인 다니엘의 강의는 편집 없이 고스란히 '온라인 강의'로 내보내도 될 만큼 흐트러짐 없다. 수업 중 어떤 애드리브도 없다. 첫 달이라 지금은 기초 중 기초다. 이번 주에는 위치와 방향 말하기를 배웠다. 내겐 좀 쉬운 편이다. 그렇다고 이 기초조차 자유자재로 말할 줄 안다는 것은 아니다. 다들 알다시피 말하기는 별개다.


강좌가 끝나면 스페인어 동호회 스터디가 1시간 더 진행된다. 2주 전부터 합류했다. 스터디는 회화책 <스페인어 회화 100일의 기적>을 매주 3 개과씩 외워서 서로 테스트하는 식으로 이뤄진다. '나에게 스페인어를 강제'하는 건 바로 이 '스파르타식 공부 모임'이다.


100일 후에 진짜 말문이 트일까?


수년간 스페인어를 하다 말다를 반복했다. '인사말과 생존 스페인어 몇 문장' 외엔 한 번도 외우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고급 스페인어(적어도 지금의 내겐)'를 그것도 본문을 통째로 외우라니. 단 4줄의 문장이지만 모르는 단어가 반은 넘고 생소한 문법 천지인 본문을, 읽기도 어려운데 어찌 외운단 말인가.


외우기에 왕도가 있으랴. 나만의 암기 루틴을 만들었다.


1) 본문 이해하기 - 본문의 단어도 찾아보고, 문장 구조도 뜯어본다.
나이 탓인지 나의 성향 탓인지 '무작정 따라 하기, 무작정 외우기'는 정말 내게 맞지 않다.

2) 저자의 본문 강의를 찾아 듣는다.
원어민의 본문 읽기 위주라 따라 말하기를 반복하면서 듣다 보면 한 문장을 열 번 이상 말하게 된다. 발음이나 표현이 입에 익으면서 '따라 읽기'가 조금 편안해진다.

3) 이제부터는 전방위적으로 외운다. 입에 붙을 때까지 외운다.
전철에서도 외우고, 식당에서 음식을 기다리며 외우고, 운동하면서 외운다.


책이 좀 요란하게 지저분하다...


역시 나란 인간, 체면이 중요한가. 뒤늦게 합류한 초보자 주제에 숙제도 안 해 오는 불성실한 학습자란 소리가 듣기 싫었다. 버벅거리면 창피할 거야. 외우고 또 외웠다. 그랬더니, 말도 안 되게, 이게 외워지는 게 아닌가! 나의 외국어 학습 역사의 또 하나의 신경험이다!


간밤에 외우다가 잠든 문장이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입에서 술술 나다. 

No todo lo que brilla es oro. 반짝인다고 다 금은 아니야.
Ojos que no ven, corazón que no siente.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진다.
Antes de mirar la paja en el ojo ajeno, debes mirar la viga en el toyo. 남의 눈의 티끌을 보기 전에 자신의 눈의 들보를 먼저 봐야 한다.


신기하고 재밌으니 자꾸 외운다. 이런 명문을 스페인어로 말하다니 한마디로 "좀 있어 보이지 않나?" 단 본문 3개 외웠을 뿐인데 성취의 즐거움이 이리도 클 줄이야!


요즘 저녁마다 파리 올림픽 경기를 보고 있다. 우리 탁구 혼성팀이 동메달을 따는 과정을 가슴 졸이며 지켜봤다. 저 선수들의 신기(神技)에 가까운 스매싱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머리와 몸이 각종 공격에 본능적으로 반응할 만큼 수많은 연습을 통해 무수한 반응 회로를 쌓은 결과일 것이다.


외국어도 훈련이다. 평소 안 쓰던, 나의 뇌의 깊숙하고 생소한 곳의 세포들을 깨우는 뇌훈련이다. 나이 들어 할 수 있는 돈 안 드는 최고의 뇌 운동이 외국어 학습이 아닐까. 스페인어 공부 때마다 막혔던 마(魔)의 벽, '동사 활용'을 이번엔 넘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에 틈만 나면 스페인어책을 펴든다.


역시 뭔가를 배우려면 연애하듯 빠져야 한다. 바깥은 살인적인 폭염이라는데 도서관 내 자리는 시원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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