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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트립 Nov 28. 2024

아테네 여행은 딱 하나만 보면 된다

나홀로 그리스(4)

유네스코 로고를 만나러 갑니다


세계는 넓고 갈 곳은 많다. '어디에 갈까?' 여행자는 늘 선택의 수렁에서 허우적거린다. 이때 수렁에 빠진 여행자에게 내미는 손이 하나 있으니 유네스코 세계유산 리스트다. 


누구나 한 번쯤 봤을법한 유네스코 로고의 원조가 그리스 아테네에 있다고 한다. 로고의 주인공은 파르테논 신전이다. 파르테논 신전을 포함하는 신전 복합 단지 아크로폴리스(Acropolis)는 유네스코 문회유산 넘버원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1호로 오해받는 곳이다. 유네스코 측에서 1호가 아니라고 Q&A까지 올려둬도 이미 세계인의 마음속에 1호로 새겨져 굳어져 버렸다. 



당신이 서 있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해줍니다


아테네에 가면 도심 어느 지점에 서든 고개를 젖히면 높은 언덕 위에 돌무더기가 보이고 그것이 아크로폴리스임은 여행자라면 본능적으로 알게 된다. 


아테네 관광의 중심 모노스트라키 광장에서 고개만 들면 보인다. 아크로폴리스 


아테네 제1묘지 가는 길에 만난 아크로폴리스


아테네 도착 첫날부터 아크로폴리스에 갈 계획은 없었다. 아크로폴리스박물관에 들러 예습부터 한 후에 실물을 방문하려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첫날 시내를 오가다가 계속 아크로폴리스를 마주치게 된다는 점이다. 


처음 만났을 때는 패스했는데 돌아다니다 보니 또 만났다. 마침 시간도 오후 6시경이다. 누군가가 이맘때 가면 사람도 적고 날씨도 적당하다고 했던 게 떠올라 표를 끊고 들어갔다. 


아크로폴리스는 입지가 모든 걸 말해주었다. 도시 한가운데 우뚝 솟은 자연 구릉 위에 자리해, 이름 자체로 '높은 곳에 있는 도시'란 뜻의 아크로폴리스는 지금도 우러러 보인다. 하물며 2,500년 전 단층집들과 들판만 있던 시절 고대인에게 절대 위엄과 권력, 그 자체였으리라. 경관을 지배함으로써 통치력을 높이는 지배층의 전략은 고대 아테네도 예외가 아니었다. 

 

옛 아크로폴리스 상상도


아크로폴리스에서도 파르테논 신전의 존재감은 독보적이다. 아테네의 수호신이자 전쟁의 신인 아테나를 모신 곳으로 다른 신전에 비해 형태가 많이 남았다. 파르테논 신전의 웅장한 스케일과 화려한 장식은 보는 이를 압도했다. 아테네에 와서 딱 하나만 보라면 단연 파르테논이다!

  

지금도 복원 중인 파르테논 신전 



아크로폴리스 감상 팁


아테네 유적의 반은 아크로폴리스에 있었다. 주인공을 페르테논 신전이라고 한다면 가장 인기 있는 조연은 에렉테이온 신전이며 아테네 니케 신전과 프로필레아도 조연급이다. 장외 조연, 디오니소스 극장과 헤로데스 아티쿠스 음악당도 꼭 봐야할 명소였다.


에렉테이온 신전과 지붕을 떠 받치는 여인상(카이라티드)


헤로데스 아티쿠스 음악당. 아크로폴리스에서 내려다볼 수 있다.


아크로폴리스는 천연의 360도 파노라마 전망대였다. 아테네가 모든 방향으로 다 내려다보여 눈 맛이 시원했다. 이른 아침이나 일몰 때가 특히 좋다고 한다. 마침 방문했을 때가 해 질 녘이라 붉은 석양빛을 받은 파르테논 신전은 아름답고도 강렬했다. 


한편 고대 그리스 때 아테네의 수호신 아테나를 모신 신전으로 건설된 페르테논 신전은 로마 치하에서는 가톨릭 교회로, 오스만 제국 시절에는 모스크로 각기 다른 신을 모시는 굴욕을 겪었다. 심지어 십자군 전쟁 때는 화약 창고로 쓰였다고 한다. 산전수전을 다 겪어낸 그리스 역사의 산증인이다. 


아크로폴리스 옆의 작은 언덕 아레오파고스 언덕은 아크로폴리스 사진 스폿이다. 지구에 발 디딘 채 지구 사진을 못 찍듯 아크로폴리스를 찍으려면 아클로폴리스 밖으로 나가야 한다.


아레오파고스 언덕에서 찍은 아크로폴리스



아크로폴리스 밖에서 만나는 신전들


아테네는 가히 신전의 도시였다. 제법 모양을 복원해 놓은 것도 있고 기둥 몇 개만 남겨두고 온전히 상상력으로만 봐야 하는 신전도 있었다. 고대 그리스 때의 것도 있고 로마 시절의 신전도 있었다.


헤파이토스 신전(왼) & 헤파이토스 신전을 모방해 지은 아테네 국립 도서관(오)


한편 아테네 도심은 신전 건축물의 전시장이었다. 그리스 독립 후 초대왕인 오토(Otto)가 아테네 건축물을 고대 그리스 양식으로 지을것을 명하면서 도리아, 이오니아, 코린트식 기둥을 올려 신전 양식을 차용한 건축물들이 들어서게 되었다고 한다. 아테네 국립 박물관, 국립 도서관, 아테네 대학교, 아테네 학당 등이 '거리에 내려 앉은 신전들'이었다.


아테네 학술원(왼) & 아테네 국립 박물관(오)


아테네 대학교(왼) & 자페이온(오)


신전에 꽂히니 신전만 보이더라 


서양 문명의 시원으로 여겨지는 그리스 문명은 근대 서양 문명에 실려 전 세계로 퍼졌다. 18세기 미술 사학자 요한 요하임 빙켈만은 '고귀한 단순과 위대한 고요'란 말로 그리스적 가치를 예찬하였고 즈음하여 그리스를 모방하는 미술과 건축이 대유행하게 된다. 


이제 그리스 신전 양식의 건물은 그리스를 넘어 미국과 영국 등 세계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다. 심지어 우리나라에도 파르테논 신전 닮은 꼴 건물이 여럿 있다. 믿기지 않는다면 당장 덕수궁을 찾아가 보라. 이오니아식과 코린트식의 신전 양식 건축물을 두 개나 만날 수 있다. 


이오니아식 기둥이 전면에 도열한 신전 양식 건축, 덕수궁 석조전(서울)


코린토식 양식 기둥의 '국립 현대 미술관, 덕수궁'(서울)


찾았다! 내가 사는 도시에서도, 신전 양식 건물을! 우리나라 대학 본관 건물은 아카데미의 권위를 나타내고 싶어서인지 유난히 고대 신전 양식 건축물이 많다. 


이오니아식 기둥이 9개나 늘어선 계명대학교 대명캠퍼스 본관(대구)


그리스 신전의 정면을 차용한 경북대학교 본관(대구)


신전에 꽂히니 신전만 눈에 들어온다. 이건 아크로폴리스를 다녀온 부작용인가. 당분간 나의 신전 찾기는 어딜 가든 계속될 것 같다.


* 유네스코 세계유산 1호 : 1978년 등재, 폴란드의 비엘리츠카 소금광산, 미국의 미국의 옐로스톤 국립공원 을 포함하는 12곳. 파르테논 신전은 1987년에 아클로폴리스에 포함되어 등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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