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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한시 May 23. 2024

우리 엄마의 걸음마

생애 첫걸음만큼 감동이다.

치매 초기에는 배회가 너무 심해서 우리를 걱정시켰던 엄마. 어느 순간부터 움직이려고 하지 않고, 우리가 같이 걷자고 해도 싫다고만 한다. 부축해서 몇 걸음 같이 걷는 것조차 엄마는 싫다며 몸을 뒤로 빼면서 버틴다. 어디가 불편한 것인지, 혹은 어디가 아픈 것인지... 엄마에게 물어도 알 수 없으니 답답하기만 하다.

엄마는 이제 하루종일 휠체어로 움직인다. 엄마를 모시고 바람 쐬러 가려도 해도, 휠체어에서 차로 옮기는 과정이 너무 힘들어 진이 빠진다. 엄마를 안아서 차에 태우려 하면 엄마는 싫다며 나를 밀쳐내고, 휠체어에 고집스레 엉덩이를 뭉개고 앉는다.




지난 주말에는 엄마를 모시고 가족모임을 했다. 아이를 좋아하는 엄마는 오랜만에 본 손주들을 연신 쓰다듬으며 "이쁘게 생겼다'고 감탄했다. 그날따라 엄마의 상태가 좋은 것인지, 엄마의 기분이 좋은 것인지 엄마는 이전에 비해 또랑또랑하게 말도 많이 하고, 우리와 눈 맞추며 이야기도 많이 했다.

말이 두서없고, 상황에 맞지 않아 알아듣기 힘든 경우도 있었지만 엄마가 나와 눈을 마주 보고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 자체가 마냥 좋았다.


엄마와 산책을 하다 토끼풀이 무더기로 피어있는 곳이 보였다. 어릴 때 했던 것처럼 토끼풀로 꽃반지를 만들어서 엄마에게 내밀었다. 너무 오랜만이라 어떻게 만드는지 잘 기억나지도 않았지만, 나름 열심히 만들어서 엄마 손가락에 끼워줬는데 엄마의 반응은 영 시원찮다.


"엄마, 보석이 없어서 그래? 꽃반지 말고 금반지 해줘?"

나의 실없는 농담에 빙그레 웃는 엄마가 있어서 좋다.


휠체어에 앉아있던 엄마를 차에 태우기 위해 엄마를 안으려고 하는데, 엄마가 "내가... 내가 할께"라면서 나를 살짝 밀어냈다. 그리고 양손으로 휠체어를 누르며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아이의 첫걸음마가 떠올랐다. 평소처럼 거실의 테이블을 붙잡고 흔들흔들 서있던 아이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는 서서 조금 흔들거리며 균형을 잡다가 이내 주저앉고는 했으니, 그날도 그러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아이가 기둥에서 손을 떼더니 발걸음을 내디뎠다. 뒤뚱뒤뚱 체중을 두 다리에 번갈아 싣고 흔들거리며 세 발자국을 내딛고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너무 순식간이라 "어어~~"하다가, 뒤늦게서야 아이를 올려 안고 환호성을 질렀다.

엄마의 걸음마는 숨을 죽이고 지켜봤다. 혹시나 넘어지면 다칠까 봐 긴장상태로 엄마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엄마는 천천히 체중을 앞으로 싣고는 발을 뗐다. 한 발짝, 그리고 다시 한 발짝. 휠체어에서 차까지 딱 세 발자국.

평소에는 걷기는커녕 일어서는 것조차 거부하던 엄마가, 혼자 일어나려고 애쓰고 소박하게나마 발걸음을 내딛는 것은 내 아이의 첫걸음마를 봤던 때만큼 뭉클했다. 나와 언니들은 손뼉을 치며 기뻐했고, 엄마에게 "정말 잘했어. 엄마 너무 잘했어"라며 칭찬을 쏟아냈다.




아이의 걸음마는 언젠가 다가올 일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엄마의 걸음마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점점 안 좋아지는 일만 남았을 거라고 생각했던 엄마가 혼자 발걸음을 옮기려고 하는 것은 없던 희망이 다시 생기는 것 같은 기쁨이었다.  

엄마가 예전으로 완전히 되돌아오기를 바라는 큰 욕심을 부리지 않으련다. 그냥 이 정도의 작은 행복과 기쁨이 앞으로 남은 엄마와의 시간에 더 많이 피어나기를 바랄 뿐이다.



독자님들 덕분에 드디어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늘 감사한 마음입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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