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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아들에게 물릴 뻔

by 새벽한시

선배 엄마들이 하는 말이 있다.

"공부를 잘하는 애는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하고, 공부를 안 하는 애는 엄마가 말해도 어차피 안 듣는다. 그러니 어느 쪽이든 공부하라는 소리는 할 필요가 없다."


맞는 말이다. 머리로는 그 말이 맞다는 게 백 번 이해가 된다.

그런데... 내 아이에 대해서는 머리로 납득이 될 뿐,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사춘기가 온 아이는 공부를 하지 않았다. 공부뿐만 아니라 숙제도 잘해가지 않았다.

공부를 잘하는 것은 바라지도 않았다. (전혀 바라지 않았다면... 그건 모든 엄마들의 거짓말)

적어도 학교는 꼬박꼬박 가고, 숙제는 어떻게든 해가야 하는 것이 나의 기본 상식이었건만, 그것마저도 아이는 내 기대에 벗어났다. 매일 하루같이 나를 시험대에 세우는 아이에게 한 마디 내뱉지 않고 속으로 삭이기란 엄청난 인내를 요했다.




학군이 의미 있냐는 말에 한 교육 전문가가 말했다.

"공부 잘하는 애는요, 어디 가나 잘해요. 공부 못하는 애들은 어디 가도 안 해요. 그런데 만약 내 아이가 주위 분위기에 잘 휩쓸린다, 그러면 주위 애들이 다 열심히 공부하는 분위기의 학군으로 가는 것이 좋죠"


주위 분위기에 휩쓸리는 아이라.... 사춘기의 아이들은 대다수 그러지 않나?


내 아이 역시 그랬다. 그리고 남들 앞에서 실수하는 것을 싫어했다.

잘하든 못하든 막 해보려고 덤비는 아이가 있는 반면, 내 아이는 어설프고 엉망인 모습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 했다. 자신이 잘하지 못하는 것이라 생각되면 위축되었고, 배드민턴이나 인라인을 처음 배울 때도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조용히 혼자 연습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나는 아이가 공부를 하지 않을 때 걱정이 되었다. 공부를 하지 않아서 성적이 떨어지고, 그 낮은 성적이 곧 자기의 능력이라고 판단할까 봐 두려웠다. '난 이것밖에 안 돼', '어차피 난 해도 안 돼'라는 패배감과 무능감에 사로잡힐까 봐 걱정스러웠다.



사춘기 아들은 종잡을 수 없었다. 가끔, 아아주 가끔, 본인이 내키면 와서 재잘재잘 이야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나 건들지 마. 혼자 내버려 둬'라는 포스를 온몸으로 풍기고 있었다.


그런 아들의 주위를 나는 맴돌았다. 내가 잘해주고 마음을 다독거려 주면 애가 다시 착해지지 않을까. 조금 더 순하게 이 시기를 견디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그런 마음으로 아이에게 지속적으로 사랑과 지지를 보여주고 싶었고, 언제든 아이가 필요할 때 엄마가 여기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dog-5357794_1280.jpg 귀여웠던 내 아들은 어디 가고... 사춘기 아들, 낯설다 너.



그런데 사춘기 아들은 본인의 몸과 마음도 어지러운 시기이다. 옆의 누군가가 하는 말 자체도 그 내용과 상관없이 일단 듣고 싶지 않고 거슬려한다. 내가 졸리고 피곤할 때는 '사랑해'라는 달콤한 속삭임도 귀찮고 거슬리는 것과 같은 기분일 것이다.


선배 엄마들의 말이 맞다.

사춘기 아들은 그냥 내버려 두어라. 다가가지 않는 것이 아이에게도, 그리고 엄마에게도 좋은 것이다.


애정과 지지가 필요하다면 아들이 먼저 엄마에게 입을 열 것이다. 그전에는 먼저 다가가서 말을 붙이거나, 괜히 옆에 가서 집적거리는 것도 하지 마라. 십중팔구, 아니 백 프로 엄마가 상처받는 걸로 끝나고, 대부분 아들과 엄마 사이가 더 안 좋아진다.




짖는 개는 피하는 게 상책이다. 예뻐해 주겠다고 손을 내밀며 다가갔다가는 물리기 십상이다.


사춘기 아들 역시 마찬가지다. 원하지 않을 때 괜히 손 내밀었다가 물릴 뻔하고, 상처 입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배고플 때 밥 주는 것, 아아주 가끔 동굴 밖에 나와 입을 열 때 들어주는 것, 그것으로 충분하다.


개조심... 아, 아니... 사춘기 아들 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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