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4/18
재작년엔 일주일에 한 번씩 상담센터를 다녔다. 화요일 저녁마다 긴장된 마음을 안고 들어가 그간 겪은 일들과 느낌을 이야기했다. 상담 선생님은 늘 이렇게 물었다. 그때 어떤 감정이었나요, 유하씨는 왜 그렇게 느꼈나요. 매번 새롭고 곤혹스러웠다.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도, ‘왜’라는 질문에 담긴 거리감도.
왜 나는 이렇게 느낄까, 왜 나는 이런 부분에 더 예민할까, 왜 이런 데는 소홀하고 무신경할까. 그건 명쾌하게 답을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몇 계절에 걸쳐 상담을 진행하면서, 어떤 일을 판단하고 반응하는 방식들이 보통 아주 어릴 때 형성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의 영유아기, 불완전한 기억을 파헤치며 몇몇 얼굴들을 떠올렸다.
소설을 읽을 때면 나도 모르게 작품 속 사건을 내 상황으로 치환하곤 한다. 그래서 가족 사이의 일들을 주요 소재로 다루는 작품은 읽을 때마다 열이 오른다. 애정과 미움, 죄책감, 복잡미묘하게 얽힌 감정들을 계속 맞닥뜨리는 독서. 50쪽 남짓한 짧은 소설을 이번에도 사흘이나 붙잡고 있었다.
<사랑과 결함>의 줄기는 화자 ‘성혜’와 그녀에게 ‘사랑을 흠뻑 주는’ 고모 ‘순정’의 관계에 있다. 화자 역시 고모를 ‘흠뻑 사랑’했지만, ‘순정’이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엄마를 끔찍이 증오하는 모습을 보며, 언젠가부터 참을 수 없이 그녀를 미워하게 된다. 소설은 ‘순정’의 죽음을 계기로, 고모와 엄마, 화자 사이에 형성된 애정과 집착, 증오 들이 축축하게 엉킨 모양을 살핀다.
읽으면서 에세이나 회고담 같다는 인상을 자주 받았다. 소설의 세계가 의심할 수 없을 만큼 믿음직스럽다기보다는 애초에 있던 일들을 잘 복원한 기록처럼 보였고, 공연히 소설과 논픽션의 경계를 고민하기도 했다. 그러다 이 구절, ‘평생 시달릴 고통과 우울, 그리움’에서 깨달았다. 화자에게서 쭉 내 모습을 보고 있었다는 걸.
소설에서 나를 발견하는 일이 드문 사건은 아니지만, 이 작품에서는 더 자주 그러했다. 심한 우울을 겪는다든가 가족들에게 복잡한 감정을 느끼는 모습은 단지 시간 차이일 뿐이었고, 화자가 사랑하는 이에게 바라는 마음도 내 경우와 너무나 닮아 있었다. 그리고 그건 내가 줄곧 외면하고 감추려 했던 내 모습이기도 했다.
작품에서 가장 소설적인 소재는 ‘로봇 청소기’다. 화를 내듯 빈 벽에 돌진하는 로봇 청소기는 고모 ‘순정’을 연상케 한다. 로봇 청소기가 방안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고모의 고통과 우울까지 스캔해버린 것이 아닐까. 그건 정말 소설 같은 일이겠지만, 마음이 일렁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마지막 문단을 읽으며 또 한 번 가족을 생각했다. 서로가 서로를 아파하면서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는 과정이 전부 화자에게 상속된다. 화자는, 그리고 나는 그들의 사랑과 결함을 이어받아 구성된 존재라는 것. 그 자명한 연속성 앞에서 어쩐지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