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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진 Jan 14. 2023

등하교길에 쓰여진 글

34살, 늦깎이 파리 건축 유학생의 혼잣말

오랜만에 키보드에 손을 올렸습니다. 사실 키보드가 아니라 지하철 의자에 앉아  '스마트폰의 액정에 손을 올렸다'가 더 정확한 표현이겠습니다. 제 브런치에서는 제 블로그에서는 다루지 않았던 나름의 특정한 주제(건축적, 도시적 관점의)를 가지고 글을 쓰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그 때문에 글을 업로드하는 주기가 블로그에 비해 상당히 길어졌죠. 그런데 오늘은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사실 어딘가 터놓고 이야기를 하거나 제 지금의 심정을 기록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던 찰나에 브런치를 떠올린 것입니다.


저는 한국에서의 7년의 건축 실무의 경험 후, 현재 프랑스 파리의 건축학교의 석사과정으로 유학을 온 상황입니다. 어느덧 서른 중반에 다다른 시점에서 온 조금은 늦은 유학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러나 늦었다는 시점보다는 나를 한 단계 발전시킬 수 있는 계기를 스스로 만들었기에 그에 대한 만족과 기대가 더 컸습니다.


프랑스 건축학교를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언어, 불어를 공부해야만 했고, 그 과정에 일 년을 투자하면서도 즐거웠습니다. 물론 스트레스가 없진 않았지만 지나고 보니 언어를 배우는 것에 소질이 있음을 느끼기도 했었던 것 같아 좋은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그렇게 염원하던 건축학교로 오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제 솔직한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고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유학이라 함은 무언가를 새롭게 배우기 위해 선택하는 것이겠지만, 제 개인적으로 프랑스 유학은 무언가를 배운다기보다는 제 자신의 가치, 적나라하게 말하면 신분의 상승에 목표점을 놓여 있습니다. 건축이란 학문은 이미 한국 대학에서 5년, 실무를 통해 7년, 제 인생의 1/3을 오롯이 투자하였고 그만큼 많이 알았고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배운다는 개념은 제겐 중요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 스스로에게는 자신감, 누구에게는 자만으로 보일 수 있는 부분이겠죠. 그러나 그것에 근거가 있다고 확신합니다. 열심히 했고 최선을 다했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조금은 안량 할 수 있는 마음가짐으로 들어선 이곳의 학교에서는 제 예상과는 달리 배울 것들이 있었습니다. 하나 배움보다는 느낌에 가까운 그것들은 새로운 지식이나 기술에 대함보다는 저에 대한 성찰 내가 있었던 곳에 대한 되돌아봄이었습니다.


학교 입학 전, 속으로 외국인으로서 타지에서 하는 것인 만큼 열등생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되뇌곤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것은 아마도 제 성격상 제가 느낄 것을 미리 짐작하고 나름의 대비를 했던 행동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도 모르게 학교에서 제 자신을 증명하려 몸부림치는 저를 보게 되었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갓처럼 이미 10년이 넘는 세월을 몸담은 건축이라는 분야이기에 저도 모르는 사이에 강박이 생겨 버린 것입니다. 자유로운 소통과 상호 간의 토론이 주된 교육방식인 이곳에서는 하루하루 매번의 강의가 마치 저에겐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난 이미 이 정도를 알고 있음을 내비쳐야 하는 무대와 같이 다가왔습니다. 그 때문에 미리 꿈꾸던 낭만적인 학교 생활은 누릴 수 없었습니다. 여유롭게 강의를 듣고 교수와 친목을 다루듯 강의를 듣는 상상을 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참으로, 다시 한번 안량 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 지점에서 중요한 것은, 이들, 건축학교 입장에선 저와 같은 유학생은 이미 많았고, 특히나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인식에 그리 깊지 않다는 점입니다. 그러니, 저는 그저 아시아의 어느 나라에서 자기들이 하는 건축이란 것을 하는 이방인 중 하나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것이지요. 어쩌면 그와 같은 판단조차 없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주저리주저리 써내려 온 모든 것들이 제 머리를 복잡하게 합니다. 처음 유학을 마음먹고 프랑스 땅에 발 디딜 때에는 조금은 늦게 아니 이런저런 일을 하고 온 유학이 마냥 유익하게만 느껴졌습니다. 나름의 가치관도 있고 판단할 능력이 있는 상태로 여겼기에 앞으로 배우게 될, 맞닥드릴 것들을 적절하게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거라 믿어졌기 때문이죠. 하지만 막상 그것을 실제로 맞이한 지금은 그 전과 같이 쉽게 말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때로는 비어 있는 잔에 채우는 것이 훨씬 수월할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잴 것도 피할 것도 꺼릴 것도 없이 저지를 수 있는 태도도 가끔은 요구된다는 것을 느낍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희망찬 다짐과 함께 글을 마치려 합니다. 정말로 지금 이 순간, 희망이 넘치고 낙관으로 가득 차 있냐고 묻는다면 절대 그렇지는 않습니다. 어느 정도의 우려와 어느 정도의 걱정은 항상 남은 약간은 찜찜한 다짐일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지금까지 겪어온 바에 따르면 고민과 함께 지나간 순간들은 그 모두가 지나간 훗날 다시 돌아보면 미화돼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에둘러 미화라 하였지만, 실제로도 좋은 순간들, 도움 되는 순간들이었을 것입니다. 절대 좋지 못한 일을 마냥 좋게만 기억하는 능력은 제겐 없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른 아침 학교 가는 길에 글을 시작해, 늦은 밤 귀가 후 글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여러 번 나눠서 글을 쓰다 보니 문단마다 글이 쓰인 순간마다 톤이 다르게 느껴지네요. 어쩌면 이와 같은 글의 온도가 현시점 제가 느끼는 감정의 흐름과 닮았지 않나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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