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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진 Nov 17. 2024

파리건축학교를 갓 졸업한 한국 건축가의 근황

생애 첫 구직 활동을, 그것도 프랑스 파리에서 하고 있는 한국건축가의 글

호기롭게 파리 유학생활과 함께 시작했던 브런치, 꾸준히 글을 써오던 블로그와는 달리 내 이야기, 내 생각에 집중한 글을 담겠다는 다짐이 그 시작이었습니다. 건축사보와 건축사를 거쳐 나름의 긴 시간의 실무를 마친 후, 넘어온 프랑스에서 살기 시작한 이래로 느낀 그 새로운 감성과 내가 있던 곳과의 다름으로부터 오는 생경함 덕분에 제 브런치의 초반부는 꽤나 금방 채워졌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목표했던 건축학교의 입학과 그 생활을 하면서도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느끼고 배워지는 것들이 많았기에 그에 관련한 글을 남기기도 했었습니다. 아마도 그 당시의 세운 또 하나의 다짐은 학교 생활마다 느끼게 될 그것들을 글로 옮겨보자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와 달리 생각보다 너무나도 빠르게 2년, 네 학기의 건축학교 생활이 지나가 버렸고, 지금은 또 다른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 제가 있습니다. 다행히 제 블로그에는 다소 가볍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꾸준하게 제가 한 것, 느낀 것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그 때문에 오늘 제가 적어내려가는 것은 미처 남기지 못한 건축학교에 대한 소외나 감상평이 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 대신, 제가 처음 세웠던 기준처럼 보다 저 자신에 집중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쉽게 말해, 제 일기가 되겠죠...


건축학교 석사과정을 마친 저는 바라던 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아직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은 하고 있지 않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프랑스 생활을 하면서 점차 '돌아간다'라는 개념을 지우고, 이 곳에 새로운 거점을 만들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즉, 한국을 가게 된다면 돌아가는 것이 아닌 무언가를 더 하기 위함이 되는 것 아니고선 없기를 바란다는 말입니다. 아마 제가 생각보다 프랑스의 건축 뿐만 아니라 프랑스의 삶 자체를 만족스러워하고 있는 듯합니다. 한국에서 알게 모르게 느꼈던 보이지 않는 잣대에 나를 맞추지 않고 나 자체가 잣대가 되어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물론, 그것은 어쩌면 이 곳 사람들의 주관심사의 밖인 외국인이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어떤 이유로든 그 덕분에 얻게 된 자유로움은 제 자신에 집중할 수 있고, 제가 바라는 바를 이루는 데에 더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데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냥 낭만적이고 어쩌면 순수하기만 한 이 생각에 요즘 조금의 변화가 생기고 있습니다. 이는 그 주관 자체 보다는 그것을 향하는 데에 필요한 과정들이 제가 부딪히는 현실들과 함께 조금씩 더 구체화되고 있음에 더 가깝습니다.


지난 7월, 졸업작품 심사통과를 마지막으로 사실상의 제 학생으로서의 명분은 끝이 났습니다. 프랑스 삶의 연속을 위한 다음 과정은 이제 구직과 그 결과로 얻을 취직입니다. 졸업 후, 가족의 방문과 약간의 휴식기를 거쳐 지난 달부터 본격적으로 구직을 해오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경기가 좋지 않고 프랑스 건축계 또한 그 영햐으로 현재 구인 자체가 없다시피 합니다. 하지만 저는 한국에서의 지난 경력과 파리에 올라와 알게 되고 학기 중 파트타임식으로 조금씩 일을 돕고 상호 관계를 맺어온 프레데릭 보헬이라는 건축가의 추천서와 그와의 약간의 포트폴리오 덕분에 자신이 꽤나 많았습니다. 물론 제 경력 그대로를 인정받고자 하는 생각은 없이, 즉시 투입이 가능한 인력으로 보여지길 원했고, 프레데릭과의 내용을 통해 프랑스 건축의 이해도도 어느정도 있음이 보여지길 바랐습니다. 그리그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하는 오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만이라고 말한 것은 제 구직의 과정이 제 바람과 같지 않았음을 의미하겠죠.


자발적 지원을 통해 공고가 없는 수십 군데의 아틀리에에 그리고 공고가 뜨는 곳 중 적합하다 싶은 곳은 모두 지원한 결과 몇 군데에서 고맙게도 대면 면접의 기회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저는 제가 말한 프랑스에서의 장점을 최대의 단점으로 여기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앞서 이야기한 '외국인이기에 주 관심사 밖에 있어 자유롭다'는 말이 '저는 이들의 구인시장에서도 주관심사 밖'이라는 의미로 돌아옴을 깨달았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제 한국에서의 경력 혹은 경험에 대한 질문 없이 프레데릭과의 관계와 작업의 깊이만을 물었고, 정식 직원이 아니었던 저였기에 그들의 질문에 만족스러운 답을 주진 못했습니다. 제 의도와는 달리 제 자신에 대한 관심을 유발하기 위한 보조 요소가 주 요소로 부각되고 정작 주된 주제인 나라는 한국의 건축가에게까지는 관심이 닿지 못함을 느꼈습니다. 물론, 머리로는 예상했고,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마음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진즉 겪었어야 할 구직의 어려움을 너무나도 늦게 겪고 있는 중입니다. 사실 대학을 졸업하고, 실무를 경험하는 과정에서 저는 은사님과의 관계와 도움으로 그 분의 사무실에 비교적 큰 어려움 없이 안착했고, 그 곳에서 건축사 취득까지 모든 과정을 다 마쳤습니다. 그렇기에 사실 제가 맞이한지금의 과정이 모두 처음이기에 낯설고 어렵고 게다가 해외라는 특이점까지 더해지니 그 어려움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항상 늘 하는 말이고 생각하는 것이지만 절대 불평과 어려움 토로에 그치고 싶진 않습니다. 굳이 선택하지 않았다면 만나지 않았을 것들이기에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하라는 옛말을 믿기에, 아직 사회적으로는 젊다고 여겨지기에 굴하지 않고 나아가려 합니다. 한없이 작아지는 느낌이 들고 별 것 아닌 취급을 받는 듯한 기분에 사실 없는 자존심도 상하고 있지만, 이 과정이 지난 후에는 분명 또 다른 성장이 있고, 전에는 가져보지 못한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느끼고 있기에 버티고 기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많지는 않지만 지난 몇 번의 이 곳 건축가의 면접 혹은 짧은 면담을 통해서 희망과 기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와는 전혀 다른 문화권이고 다른 언어를 쓰는 이들이지만, 같은 건축이라는 분야를 어떤 한 아시아인이 하고 있음과 어떻게 해왔는 지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없진 않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소수일 수밖에 없습니다. 유럽의 중심이라 자부하는 곳에서 멀디 먼 아시아의 건축까지 관심을 갖고 생각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케이팝이나 케이푸드와 같이 쉽게 접근 가능하고 매체를 통한 공유가 가능한 문화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제가 느낀 일말의 관심 덕분에 저는 일말의 가능성을 느끼고, 희망을 얻었습니다. 당장 이 곳에서 시작하게 될 미래의 어떤 일이 곧바로 제 뜻을 펼칠 만큼 어마한 일이 아닐 것임을 머리로는 또 알고 있지만, 그것이 단초가 돼 나름 괄목할 성과가 되기를 오늘도 꿈꾸며 글을 마칩니다.


또 한 번에 하소연에 가까운 글이 되어버렸지만, 훗날 돌아보며 이 글을 썼던 마음을 되뇌이며 그 날의 성과를 기록할 날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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