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성진 Dec 10. 2024

파리 사는 한국 건축가의 첫 구직에 대한 소회

다섯 번의 다섯가지 면접기에 대한 프롤로그

하소연하듯 징징대듯 써 내려갔던 지난 구직기에 대한 직접적, 간접적인 반응들로 생각지도 못했던 응원과 격려를 받았습니다. 공개적인 공간에 글을 남기는 것에 큰 부담은 없는 편이지만, 제 글로 인해 누군가에게 공감을 일으키거나 영향을 줄 수 있음을 느낄 수 있었던 계기라 감사하면서도 조심스러워지는 경험이었습니다. 조금은 더해진 부담에도 불구하고, 지난 글들에 비해 짧은 간격을 두고 오늘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제가 받은 응원에 대한 답을 드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향해 징징댐을 드러내고 있던 와중에도 드물지만 종종 구직 면접을 보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올해의 마지막이지 않을까 싶었던 제 다섯 번째 면접에서 결국 저는 좋은 답변을 받았고, 내년 초부터 근무하는 내용의 계약서에 얼마 전 서명을 마쳤습니다. 2024년이 가기 전에 좋은 결과를 얻었음에 참 감사한 일이었고, 2024년을 깔끔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음에 더더욱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두 달이라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첫 프랑스에서의 구직 기간이었지만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다시 한번 제가 건축 이외의 다른 것을 하기엔 이미 늦기도 하고 또 제가 그럴 수 없는 사람임을 깨닫기도 하였습니다. 


이번 구직 기간 동안 앞서 말했듯이 저는 알차게 다섯 번의 면접을 보았습니다. 요즘 시기가 그리 성황은 아닌지라 채용 공고 자체가 적었기에 저는 공고가 있는 곳뿐만 아니라 평소에 관심이 있거나 보기에 흥미롭고 제 기준에 충족되는 곳에는 자발적으로 지원을 해야 했습니다. 흥미롭게도 면접까지 이른 곳은 공고에 의한 곳에만 국한되지 않고 자발적인 지원에 의한 곳도 두 곳으로 상당했고, 채용에 이른 곳은 심지어 그 두 곳 중 하나였습니다. 각각 면접이 흐르는 분위기나 조건, 그에 따른 결과나 제가 느낀 감상이 모두 달랐기에 아마도 이에 대한 다섯 가지의 각기 다른 면접 기는 따로 소개하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반면, 일련의 과정을 겪고 나서 얻은 결론은 심플하기에 오늘 이 글에 기록하려 합니다. 결국 중요한 건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어쩌면 이것은 제가 건축을 해오면서 느끼는 것 중 가장 큰 부분일 수도 있습니다. 건축을 함에 있어서 수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게 됩니다. 이는 상대가 될 수도 있고, 동반자이자 조력자 일 수도 있고, 또한 본인의 위 혹은 아래일 수도 있는 다양한 방향으로 형성이 됩니다. 이 요소를 무시한다면 건축은 이뤄질 수 없습니다. 이것이 건축이 한 개인에 의해 이뤄지는 예술 작업과 명확히 구분되는 지점일 것입니다. 저는 이를 한국에서 실무를 경험하면서 직접 느꼈고 그 이후로 매우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번 프랑스에서의 구직에서는 제가 생각해 오던 사람과의 관계에 '외국인으로서'라는 새로운 조건이 추가되었습니다. 외국인인 나를 어떻게 받아들이는 사람이냐에 따라 그 결과가 많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저를 채용하기로 결정한 이는 저를 바라봄에 있어서 외국인이지만 같은 건축을 하는 사람으로 바라보았고, 외국인이 가질 수 있는 제약에 대해 굉장히 관대한 태도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상대적으로 그렇지 않은, 그렇지 못한 태도를 지닌 사람은 제 경우에는 결코 좋은 결과에 다다를 수 없었습니다. 무언가 불가항력인, 운에 의해 운명이 결정되는 것과 같은 상황이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외지인으로 살기로 마음먹은 이상 감수해야 하는 부분일 것입니다. 제 생각엔 이것은 차별과는 다른 문제입니다. 만약 제가 사무소의 소장으로서 외국인 직원을 뽑는 상황에 놓인다고 해도 똑같은 제약 둘 수밖에 없을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와 같은 인연을 만날 확률이 높지는 않지만, 절대 적지 않음을 이번 기회로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좋은 기회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나아가면 되겠다는 확신을 갖기로 했습니다. 다만, 항상 주어진  조건에서 성과를 본인의 것을 만드는 것은 오롯이 본인의 몫임 또한 잘 알기에, 이제 주어진 기회를 늘 그랬듯이 제 것으로 만들 생각입니다. 그 답, 역시 늘 그래왔듯이 열심히 하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그 열심히라는 것은 묵묵히 혹은 무턱대고와는 다른 조금은 더 전략적이고 자기 주도적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목표한 것을 향해 나아가면서 보이지 않는 암초, 잘못하면 불어올지 모르는 역풍을 고려하며 영리하게 나아가는 항해와 같지 않을까 싶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