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의 시선은 누구에게 향하는가?
주말이면 다니는 산책길에 낯선 풍경이 보였다. 처음에는 누가 쓰레기를 방치했나 했는데 가까이 가보니 소형 투명 텐트였다. 미관상 보기 좋지 않은 데다 바로 옆이 사람들이 쉴 수 있는 벤치가 있는 곳이라 더욱 눈살을 찌푸리게 됐다. 그런데 텐트에 쓰여있는 문구를 읽으니 복잡한 마음이 든다.
고양이가 살고 있어요!
고양이 집 때문에 불편하시죠? 그래도 고양이에게는 소중하고 편한 집이고 몸을 안전히 피할 수 있는 숨숨집이에요. 막 가져가시기보다는 000-0000-0000으로 전화(혹은 문자) 하시면, 무엇이 어떻게 불편한지 돕고,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양해 부탁드려요.
혹시 모를 사태를 위해 자신의 연락처까지 남겨놓은 캣맘의 메모와 동물에 향한 따뜻한 마음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캣맘, 정말 지긋지긋하다."
"산책로에 이런 것까지 설치해 놓고 여기가 자기네들 땅이야?"
"며칠 전 비가 많이 왔었는데, 고양이가 안전하게 있을 공간이 있어 다행이다."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산책로라 지나던 몇몇 사람들이 한 마디씩 한다. 아파트 단지 내, 공원, 산책로등에 설치되어 있는 길고양이 집과 급식소가 주민들의 갈등을 불러오고 있다는 건 여러 뉴스를 통해 알고 있었기에 조만간 민원이 속출하겠구나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후 길고양이 집에 철거 공지가 붙어있었다. 그리고 한주가 지난 후 다시 이곳을 방문했을 때 경고문이 붙어있었는데......
고양이 숨숨집 훔치신 분 경고합니다.
(첫 민원결과 서울시에서 가져간 게 아님 확인했어요)
고양이 낚시 장난감, 물티슈 가져가신 분 꼬리가 길면 밟힙니다.
계속 가져가시면 경찰에 신고 들어갈 수 있어요.
아마 서울시에서 철거하기 전에 누군가가 철거한 거 같았다. 고양이집을 설치한 분은 이에 화가 나서 경고문을 붙인 거 같은데 주민 간의 갈등이 서서히 불거지는 거 같아 마음이 쓰였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쌍방으로 민원을 넣는 상황이 앞으로도 계속될 거 같아 법령을 찾아보니 누구 한쪽 편을 들 수도 없는 상황인 거 같다.
길고양이 동물보호법이 있어 임의로 고양이를 포획할 수 없고 서울시 동물보호 조례에 의해 시장 또는 구청장은 생활공원 중 소공원 및 근린공원에 급식소를 설치할 수 있다고 규정되어 있었다. (다만 어린이공원은 해당사항 없음) 하지만 자연공원법에 따르면 공원관리청은 반복·상습적으로 불법으로 점용하거나 자연공원 보전· 관리에 지장을 줄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 방치된 물건을 제거할 수 있다. 어쨌든 시나 구에서 지정한 곳이 아닌 급식소나 고양이집은 불법이라는 건데 이것 또한 개인 물건을 함부로 제거했을 시 '재물손괴'에 해당할 수 있어 서로가 법적다툼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길고양이 민원이 해마다 3만 건에 달하는 걸 보면 주민들 간의 갈등의 골이 얼마나 깊은지 짐작되는 바이다.
이런 주민 간의 갈등을 해결하고자 대구의 한 아파트에서는 '캣맘 등록제'를 실시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단지 내에서 길고양이 관리를 희망하는 세대의 신청을 받아 캣맘으로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게 해주는 대신 환경오염이나 재산손실이 있을 시 전적으로 먹이를 제공하는 사람의 책임으로 하겠다는 거였다. 이에 '캣맘' '캣대디' 들은 고양이가 하지 않은 일도 고양이 짓이라고 보상하라고 할 것 같다며 반발했다. 하지만 아파트 단지 내 고양이 급식소로 인해 주차차량피해, 소음, 환경오염등을 호소했던 주민들은 대부분 적극 찬성하는 입장이었다. 약 이주간의 등록기간이 지나고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아파트 대표자가 등록한 '캣맘' '캣대디'에게 연간 240만 원을 지원한다는 추가 공고에도 불구하고 지원자는 한 명도 나타나지 않았다. 얼마 후 단지 내 길고양이 사료 그릇은 통보 없이 철거되었다.
자연은 인간과 동물이 공존하는 곳이니 동물들이 최소한 안전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는 시선과 안전상 위협, 소음과 위생상 문제를 초래한다는 이유로 불편함을 토로하는 시선도 있다. 특히 인근 아파트 주민들은 고양이 발정기 시기 때면 고양이 울음소리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며 고통을 호소하는 분들이 많았다. 누군가의 선한 마음과 행동은 누군가에게 불편이고 악인 것이다.
얼마 전 읽었던 허지웅의 『최소한의 이웃』에 있던 글이 생각난다.
정말 고양이를 사랑한다면 그 애틋한 마음만큼이나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 또한 챙겼어야 하는 게 아닐지. 그냥 무언가를 사랑한다는 단순하고 뜨거운 마음만으로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걸 왜 모르는 건지. 그게 정말 다른 작은 생명을 향한 사랑인지, 아니면 자기 자신을 향한 사랑인지, 안타깝습니다.
길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고양이를 바라보며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이것조차 불편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난 최선의 선의와 배려를 했다고 생각하지만 누군가에겐 최소한의 배려와 상식이 없다고 느껴질 수 있다는 걸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