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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죽음은 없다

살 수는 있나요?

by 띵북

"다 잘라내야 합니다."

"선생님 살 수는 있나요?"


초조하고 긴장된 마음으로 물어본다.

선생님은 그런 보호자를 안타까운 듯 바라본 뒤 과감하게 하나씩 잘라내기 시작한다.

온몸이 갈갈이 뜯겨 나가지만 그래도 살릴수만 있다면 그 어떤 희생도 감수하리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지켜본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 남은 잎새는 보호자 품으로 돌아간다.


고백하건대 난 식물테러리스트다.

지금까지 내 손에 들어온 식물은 다 죽음을 맞이하고 떠났다. 탈수, 과습, 감금, 방치, 열사로 시들고 병들어 썩어버렸다. 아예 관심을 주지 않아도 된다는 다육식물도 몇 달을 버티지 못하고 죽어버렸다. 그래도 집에 생기라도 돌려면 초록초록한 식물 몇 개쯤은 있어야 되지 않겠냐는 나름의 인테리어 철학으로 부지런히 식물을 들여놓지만 가족들의 비난은 피할 수 없다.


"아이고, 쟤네들 한 달은 버틸 수 있으려나"

"얼마 후, 또 죽어나가겠네"


식물을 들여놓은 첫날부터 그 아이는 이미 시한부선고를 받는다. 말이 씨가 된다고 그러다 이번에도 또 죽어나가면 다 가족들 탓이다 어깃장을 놓지만 불안한 마음은 어쩔 수 없다. 그런데 요즘 나에게 희망이 생겼다. 동물이 아프면 동물병원에서 치료받듯 식물이 아프면 치료받고 수술도 하는 반려식물병원이 올해 4월 개원한 것이다. 오랜 시간 식물을 연구해 온 원장님이 식물에 대한 진단과 치료 처방까지 아주 꼼꼼하게 봐주시는데, 상태가 심각한 식물은 입원치료를 통해 집중 관리를 받으며 회복 후 퇴원과정까지 진행해주고 있다. 무엇보다 진료비가 무료.


그동안 식집사들은 인터넷 식물갤러리나 구매처에 문의해 해결하려 했지만 대부분 반려식물을 끝내 보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분명 알려주는 방법으로 요리조리 해봤는데 왜 늘 죽어나가는 걸까. 그 의구심을 반려식물병원에서 상세한 설명과 함께 해결해 주는 모습을 보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역시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라더니 식물이 식물병원에서 정확한 진단과 치료과정을 거치니 생명이 살아난다.


01.PNG 이게 뭐지? (출처:스브스뉴스)
02.PNG 마지막 잎새 몬스테라 (출처:스브스뉴스)


잎의 지름이 1m나 되는 몬스테라가 거의 나뭇가지만 남긴 채 처참한 모습으로 진료실로 들어와 있다. 뿌리가 끊어진 상태에서 물 흡수가 제대로 되지 않아 몸살을 앓아온 몬스테라는 그렇게 잎을 하나둘씩 떨어트렸다. 결국 수술실로 들어간 몬스테라. 흙에서 나온 몬스테라의 뿌리는 거의 썩어버려 살아나기 힘들 거 같았다. 자르고 자르고 자르고 세균이 번식된 부분들을 다 잘라내니 겨우 작은 한 잎만 남았다. 도저히 몬스테라라고 믿어지지 않지만 이제 집에 가서 꼭 멋진 몬스테라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길 바라게 된다.





<반려식물병원 수술실 대공개 - 스브스 뉴스 영상 참고>


Q 1. 식집사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는 무엇인가요?

분갈이입니다. 굳이 잘 자라고 있는 식물은 가정에서 화분갈이 할 필요가 없어요. 영양제만 줘도 충분히 잘 자랄 수 있습니다.


예전에 잘 자라고 있던 식물을 예쁜 화분으로 옮겨줬다가 얼마 후 죽었던 아이가 생각났다. 괜히 내가 설레발쳐서 죽였었나 보다. 이젠 그냥 영양제만 잘 주는 걸로...


Q 2. 우리 아이 건강하게 키우려면 꼭 지켜야 하는 건 뭔가요?

물 주기입니다. 정해진 날짜에 물을 주는 것이 아니라 식물이 갈증을 느낄 때 물을 주면 돼요. 손가락 두 마디를 흙속에 찔려 넣었을 때 물이 안 묻어난다면 그때 물을 주면 됩니다. 물 주는 시기는 하루 중 오전이 가장 좋습니다.


Q 3. 어느 날 보니 아이가 시들시들해요. 어떻게 해야 하나요?

화장실에 가서 물 주고 5일에서 일주일 정도 화장실에 놔두면 식물이 숨 쉴 수 있는 상태가 돼요. 햇볕이 없으니 광합성을 안 해도 되고 습도가 높으니 뿌리가 물을 안 올려도 되니 충분히 휴식을 취할 수 있어요.



https://youtu.be/n_QOv-nY_zM





원장님의 말을 듣다 보니 식물은 정말 살아있는 생명체라는 걸 느끼게 된다. 식물도 휴식이 필요하고 쉼이 필요했는데 너무 열심히 또 햇볕에 놔뒀던 모양이다. 아파도 말 못 하고 그동안 나의 품에서 떠난 아이들. 이젠 나도 식물테러리스트라는 오명을 벗고 식물 상태가 이상하다 싶으면 바로 반려식물병원으로 방문해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받게 해야겠다.


KakaoTalk_20230512_091135697.jpg 한두 잎만 겨우 남아있던 수국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작년 생일 때 선물로 받은 수국이 죽기 직전까지 같다가 겨우 살아나 지금 다시 잎을 피우고 있다. 아직 예쁜 수국 꽃을 피우지 못하고 있지만 상처 입은 나뭇가지에서 새순이 올라오는 걸 보면 참 기특하다. 여전히 부족하고 모르는 게 많은 식집사지만 매일매일 잘 자라나주길 간절히 바라본다. 상태가 갑자기 안 좋아지면 바로 식물병원으로 GO GO.



KakaoTalk_20230512_091135697_01.jpg 죽은 가지에서 다시 태어나는 생명 (조금씩 가지치기하며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 반려식물병원 소개 : 진료예약

https://agro.seoul.go.kr/archives/46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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