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듀엣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Obricolage Feb 08. 2023

듀엣 1

단조와 이저

듀엣

duet

시골 마을의 유일한 청년들이 오묘한 우정을 쌓으며 시공간을 뛰어넘고 삶의 결핍을 채워나가는 힐링 판타지 코미디



[d]azzling stranger

[u]------------ -------

[e]------------ ------

[t]--- --- ---



dazzling stranger



https://youtu.be/IgBfh_lTneE



(1)

 한반도에 운석이 떨어졌다. 운석이 떨어진 곳은 바다에서 멀고 산중에 가까운 어느 작은 마을. 이 동네의 버스 배차 간격은 대략 120분 정도라서 외출하고 돌아오면 하루가 지나있었다. 한 번의 외출에 한 달 치 볼일을 보고 들어와야 맘이 놓일 정도였다. 겨울이면 특히 더 그랬다. 오후 6시만 돼도 한밤중 같아서 인생을 짧게 살고 싶을 때 아주 적격인 곳이었다.


 운석이 떨어지기 하루 전, 이저는 두 달 치 볼일을 보고 마을에 돌아왔다. 제주도 한 달 살기로 시작된 외출은 두 달을 넘기고서야 마침표를 찍었다. 마을을 떠나기까지 이저는 꽤 많은 갈등을 반복했다. 빠진물건은없는지배낭을살피고가스는꺼졌는지코드는뽑았는지두번씩확인한끝에식탁의자에앉아SNS를뒤적거리며 아주 느긋하게 나갈 채비를 마쳤는데도, 버스 도착까지 15분의 여유가 남아있었다.


 정류장은 이저가 사는 곳에서 뛰면 3분, 걸으면 5분 거리였다. 평소 이저는 외출을 할 때 버스를 놓치면 2시간을 갖다 버리는 셈이 되니, 절대 놓치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20분 일찍 정류장에 미리 도착해있거나, 3분 거리를 겁나 뛰어서 2분으로 단축해 버스를 이용했다. 그런데 그날 이저는 배낭을 고쳐 메며 천천히 걸었다. 걷다가 버스를 놓쳐도 분하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였다. 분명 여행을 계획할 때만 해도 설렘을 주체하지 못해 당장 떠나지 않고서는 못 버틸 정도였는데. 막상 여행이 닥치니까 왜 떠나기가 싫지? 도대체 무슨 심보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이저는 정류장에 멈춰 섰다. 뒤로 걷듯이 느린 걸음이었는데 어째선지 3분밖에 안 걸렸다.

 이럴 때면 정말이지.


"시간도 지 멋대로네."


 마음이 조급할 때는 시간도 빨리 감기가 되더니, 마음이 여유로우니까 별짓을 해도 시간이 느리게 갔다.

 이저는 햇빛을 피해 정류장 안으로 들어섰다. 일주일 전만 해도 멀쩡하던 정류장 나무 의자가 부러져있었다. 임시로 누가 가져다 놓은 건지 낡은 1인용 소파와 바랜 플라스틱 의자가 공간의 중심을 버티고 있었다.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다. 낙후된 정류장은 이전에도 문제가 많았다. 한번은 이저가 민원을 넣었다. 그런데 그게 다였다. 유동인구가 적고 대중교통 이용객도 미미한 이 동네에서 변화는 120분 간격 버스보다 느렸다. 매번 추월당하느라 바빴다. 이저는 메고 있던 짐이 무거워서 잠시 앉아있을까 생각하다가, 그냥 서 있기로 했다.

 머지않아 버스가 도착했다. 멀리서 오느라 지쳤겠지만 또다시 달려야 할 버스에 이저는 몸을 실었다. 사악한 여름 볕이 살갗을 쐈다. 그건 여행을 떠날 때나 귀가할 때나 마찬가지였다.



 운석이 떨어지기 하루 전, 단조는 벌레와의 사투를 벌였다. 낯선 곳에 적응하느라 며칠 동안 잠자리를 뒤척이던 단조가 모처럼 단꿈을 꾸던 낮이었다. 살면서 옆집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에 깬 적은 있어도 벌레 날갯짓 소리에 깬 적은 없었다. 이상한 낌새를 느낀 단조가 뻑뻑한 눈을 뜨자마자 손바닥만 한 나방이 얼굴을 때렸다.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손을 허우적대자 나방은 방구석 어딘가로 날아갔다.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나방을 눈으로 좇는데, 손가락 두 마디 정도 되는 새까만 거미가 시야에 들어왔다. 단조는 그냥 정신을 놓아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새소리가 청명한 호루라기처럼 뽀로롱 뽀로롱대는 컬러링이 얼마간 계속됐다.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려고 귀에서 핸드폰을 떼려는데 그제야 전화가 연결됐다. 여부시요~ 느긋한 이모의 인사에 단조는 참았던 공포를 토해냈다.


“이모. 도저히 안 되겠어. 아무리 생각해도 여기서는 못 살겠어요.”

- …단조야. 그럼 나오라니까. 누가 너더러 강요하니.


 무미건조한 이모의 음성이 단조에게 넘어왔다.


"방금도 무슨, 나방이 손바닥만 해…!"

- 기념품 사 오라고 전화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나?

"웬 기념품?"

- 야야, 내가 또 괜히 기념품 얘기 꺼냈네. 실수~


 혹시 벌레가 기억력도 앗아갈 수 있나? 과거 속을 뒤집던 단조가 무언가 발견한 듯 눈빛이 총명해졌다.


"까먹고 있었어. 오늘 출국이에요 이모?"

- 지금 공항 가는 길.

"와, 이탈리아에도 벌레 많죠?"

- 없으면 나랑 가서 살게?

"생각은 해 볼 수 있는 거니까… 여기는 벌레가 너무너무너무 많아요.”

- 뭘 또 너무 많아야. 끽해야 두세 마리 나온 거 가지고 호들갑 떨지?

“두세 마리 때문에 두세 시간이 괴롭다고요.”

- 걔네가 널 물기라도 해?

“다른 방법으로 물어요.”


 단조는 제 얼굴을 치고 사라지던 나방의 촉감을 떠올렸다. 아무래도 딱밤이었는데.


- 단조야. 곧 적응될 거야.


 예? 벌레한테 딱밤 맞는 일상 적응이요? 구시렁구시렁. 애꿎은 달력만 소리 나게 넘기던 단조에게서 심통 가득한 혼잣말이 새어 나왔다.


- 봐, 봐. 새벽마다 층간소음으로 잠 깨우는 이웃도 없고, 엘리베이터에 노상 방뇨하는 사람도 없고, 술 취해서 남의 집 현관 두드리는 미친놈도 없고. 전에 살던 원룸이 더하면 더했지.


 왜 고통은 시간으로 희석될까? 미처 잊고 있던 사실이 떠올라 단조는 입을 다물었다.


- 너 그런 곳에서도 금방 적응해서 잘 살았잖아.

"'그런 곳'. 하하."


 여유만 있었으면 저도 안 그랬죠. 어차피 뒷말은 삼켜야 했다.


- 남들은 틈만 나면 도시 벗어나려고 애쓴다. 근데 너는 애쓰지 않아도 누릴 수 있는데, 언제까지 벌레 타령만 할 거야?

“바퀴벌레 나오면 집 버린다는 사람도 있거든요.”

- 바퀴가 집 사면 <바퀴 달린 집> 아냐?

"짜증 나…. 웃지 마요!"

- 들렸어? 아무튼 버릴 거면 나한테 버려.

"집에도 발이 달렸으면 좋았을 텐데…."

- 뭐라고? 안 들렸어.

"그냥 혼자 하는 말이에요…."

- 말 끝은 왜 자꾸 흐려. 저번에 준 반찬은 남았고?

“벌레 얘기하다가 갑자기 먹는 얘기 하려니까 속이 조금….”


 연이어 물음표만 던지던 이모가 호탕한 웃음으로 화답했다. 이모는 단조에게 이것저것 물었다. 오픈 준비는 예정대로 되어가니, 주변 정리는 하고 있니, 꽃에 물은 줬니. 이모의 질문은 대답할 틈을 주지 않고 이어지다가 금세 칭찬으로 변했다. 그 마을이 버스 타기 힘들어서 그렇지 풍경도 좋고 공기도 맑고 얼마나 좋니, 대중교통 열악해도 운전하는 사람한테는 문제도 아니니까 좀만 가꾸면 서로 먼저 가려고 난리일 거야. 자식 사랑 못지않은 자부심이 이어졌다.


 단조의 작업실이자 보금자리인 이곳은 단조가 태어난 해에 이모가 매입한 토지였다. 수질도 깨끗해, 토양도 비옥해서 작물도 잘 자라, 정남향이라 볕 하나는 끝내줘. 단조가 돌잔치에서 뭘 잡을지 열변을 토할 무렵, 이곳에 위치한 이모네 세컨드 하우스도 완공됐다. 인간 하나가 지내기에 적당한 규모로 짓자. 세컨드 하우스 초기 콘셉트는 휴식에 있었지만 타고난 열정이 어디 가랴. 지치지 않는 체력으로 주변을 가꾸다 보니 얼추 마당의 윤곽이 잡혔다. 뭐 하러 노는 땅에 공을 들이냐고 주변 사람들이 한 마디씩 얹었다. 이모는 웃어넘겼다. 어차피 마음까지 닿지 못하는 말이었으니 흘려들어도 됐다. 주말만 되면 시골로 홀연히 사라졌다가 도시로 돌아오기를 반복하던 이모는 지금도 종종 그때를 회상하며 감탄했다.

 단조가 나이를 먹으면 세컨드 하우스도 시간을 먹었다. 현재 많은 보수가 필요하다는 점도 둘의 공통점이었다.


 계약이 만료된 원룸을 떠나 이곳에 오기까지 단조는 많은 것을 덜어냈다. 정을 붙이기 위해 두 달 전부터 마을과 도시를 오갈 정도로 시간과 정성도 쏟았다. 이삿짐을 옮기고 본격적인 생활을 시작한 건 정확히 3주 전. 단조는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 집 안팎을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피곤해서 잠도 잘 올 것 같았지만 밤만 되면 들리는 고라니 울음소리, 벌레 날개소리에 도통 휴식이라곤 없는 시간을 보냈다. 단조는 불면증에 시달릴 때마다 향초를 켰다. 원룸에 살다 보니 생긴 습관이었다. 원룸은 공간이 분리되지 않아 냄새가 쉽게 섞여 들기 때문에 환기가 필수였다.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열면 근처 음식점에서 조리하는 냄새가 흘러들어왔다. 분명 입주할 때만 해도 이 근처에 오픈하는 음식점은 없을 거라고 호언장담하던 공인중개사의 얼굴이 스쳤다. 어차피 그 이유가 아니어도 창문은 열어둘 수 없었다. 치안 때문에도 그랬고, 알고 싶지 않은 이웃의 사정까지 알게 되는 상황 때문에도 그랬다. 창문을 열지 못하니 냄새를 덮을 다른 냄새가 필요했다. 향초의 심지가 시간을 상대로 맞설 동안 공간에 좋은 향기가 퍼졌다. 피곤하지만 여유롭던 휴식 시간은 단조가 학습한 감성 중 하나였다. 사람들이 말하는, '따뜻하면서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은 도무지 마음으로 깨달을 수 없었다. 그래서 빠르게 외웠다. '나는 향초를 피우면서 느긋함을 즐기고 있노라'라고. 단조는 마을에 와서도 줄곧 습관처럼 향초를 피웠다. 가끔 날벌레가 빠지긴 했지만 걷어내면 그만이었다.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나는 이모를 배웅하며 통화를 마친 단조는 다소 충동적으로 방 정리를 시작했다. 별로 너저분하지도 않은 책장이 거슬렸던 건 마음의 문제였을까. 쓰다 만 일기장을 발견한 단조는 편한 자세로 앉아(척추가 고통받는) 기가 막힌 집중력을 발휘했다. '다음 화'가 자동으로 재생되는 것처럼 낱장이 술술 넘어갔다. 불과 반년 전의 '나'인데 왜 이렇게 낯설고 웃긴지. 단조는 해가 지는 줄도 몰랐다. 그리고 거듭 밤이 찾아왔다.


 이불속에 벌레가 있는지 점검하고 나서야 겨우 잠자리에 든 단조가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눈을 번쩍 떴다. 느닷없이 종아리가 화끈거렸다. 모기에 물렸을 때랑은 비교가 안 될 통증이었다. 단조는 허둥대다가 마침내 불을 켰다. 서둘러 다리를 살피니 무언가에 물린 자국이 보였다. 아주 얇은 펜촉으로 콕, 점을 찍은 것처럼 선명했다.


 ‘걔네가 널 물기라도 해?’ 이모와의 통화 내용을 떠올린 건 기분에 악영향을 끼쳤다. 끝장을 내겠다고 호기롭게 침대를 벗어난 단조가 물건을 들추며 온 집안을 쏘다녔다. 다시 방으로 돌아와 베개 뒤를 살피고, 괜히 이불도 한 번 더 들춰보다 침대 밑도 훑었다. 핸드폰 플래시가 정신없이 흔들렸다. 공포 영화 보면 꼭 이러다가 목숨을 잃던데? 목 뒤가 얼어붙던 찰나였다.


"……."


 사람이 너무 놀라면 비명도 못 지른다. 그 말의 의미를 영영 모르고 싶었지만 알게 됐으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단조는 상대의 압도적인 다리 개수에 놀라 머리 꼭대기까지 소름이 돋았다. 지네는 영화 제목으로만 들었지 실제로 본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머리가 심지처럼 타들어 갔다.


"다리가 몇 개냐고!"


 단조의 얼굴 위로 많은 감정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분노와 혐오가 떠난 곳엔 후회가 도착했다. 누구 좋자고 여기에 작업실을 열었지? 미친(후회돼), 미친(알아서 사라져 줬으면...), 미친(서로 안 부딪히며 살 수 있지 않을까). 침대 다리에 야무지게 붙은 지네를 보던 표정이 점점 일그러졌다. 쟤 힘 나보다 셀 듯.


"잡혀줄 거지? 어디 가지 마! 가지 마!"


 언제는 사라지랬다가, 언제는 가지 말랬다가 난리도 아니었다. 무작정 고무장갑을 끼고 살충제를 뿌리자 지네가 꿈틀댔다. 그와 동시에 튀어나간 단조의 비명을 덮은 건 바깥의 굉음이었다. 차원이 다른 소리는 사람을 휘감다 못해 위협적이었다. 분명 집이 흔들렸다. 기분 탓인지 사실인지 확인할 겨를이 없다. 단조는 반사적으로 핸드폰부터 손에 넣었다. 그리고는 현관을 향해 질주했다. 신발을 바꿔 신을 틈도 없었다. 만약 이게 지진이라면 책상 밑에 숨어야 하는 거 아냐? 뒤늦게 머리가 돌아갔지만 이미 밖으로 뛰쳐나온 후였다.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던 어둠이 단조를 반겼다. 드문드문 켜진 가로등 아래로 그의 뜀박질은 계속되었고, 옆을 지켜주는 건 그가 들고 있는 핸드폰 불빛뿐이었다. 그때였다.


 맞은편에서 가까워지는 불빛이 있었다. 단조가 엉겁결에 핸드폰 플래시를 비추자 상대가 주춤했다. 하지만 성큼 다가오는 걸음을 멈추지는 않았다. 단조는 제 주위를 살폈다. 어둠 속에서 존재감을 과시하던 두 불빛이 가까이 모였다. 손전등의 짱짱한 빛과 핸드폰의 플래시가 지면을 향해 쏟아졌다.


“발광량 장난 아니네. 써먹을 일이 없어서 이 정도인 줄은 몰랐는데.”


 낯선 남자가 두꺼운 손전등을 들어 올리며 웃어 보였다.


"그런데 저만 들은 거 아니죠?"


 이저와 단조의 첫 만남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