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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bricolage Feb 09. 2023

듀엣 2

단조와 이저

듀엣

duet



[d]azzling stranger

[u]------------ -------

[e]------------ ------

[t]--- --- ---



dazzling stranger



https://youtu.be/IgBfh_lTneE



(2)

"재난문자는요?"

"안 왔어요. 내 핸드폰이 먹통인 건가?"


 제 옆에서 갸웃거리던 단조를 바라보던 이저가 본인의 핸드폰을 꺼내 통신 상태를 확인했다.


"신호는 잡혀요."

"그렇죠? 인터넷에도 아무 말 없어요. 너무 작은 동네라 기사도 안 쓰는 걸까요?"

"하, 이상하네."


 두 사람은 이상하리만큼 조용한 마을을 가로지르는 중이었다. 분명 굉음이 들렸고 지진처럼 집이 흔들렸는데 아무도 나와보지 않는 것이 불길했다. 앞장서 걷던 이저가 우뚝 멈춰 섰다. 목적 없이 헤매는 건 이쯤 하고 마을 이웃에게 찾아가 볼 요량이었다.


"주무시고 계시는 건 아니겠죠?"

"깨어있는 건 저희뿐인 것 같아요."


 응답이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걸 이저는 예감했다. 하지만 여기 두 사람이 잘못 듣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확인이 필요했다. 벽돌 담장 앞에 서서 초인종을 누르고 기다리던 이저가 하늘로 시선을 던졌다. 두 사람이 침묵하자 멋쩍은 고요함이 이어졌다.


 이저는 잠결에 굉음을 듣고 제 집에 번개가 내리꽂힌 줄 알았다. 그 정도로 소리의 파급력은 컸다. 그런데 상황이 참 이상하게 돌아갔다. 원래도 많은 사람이 사는 마을은 아니었지만 개미 한 마리조차 숨은 것 같은 적막한 동네는 더더욱 아니었다. 원인 모를 소리를 혼자만 들었다면 단순 해프닝이겠거니 하고 잊어버리겠는데, 혼자가 아니라 둘이라 이건 우연으로 치부하기 어려웠다. 그래서인지 머리가 이 이상으로 돌아가지를 않았다.


"뼐 봤죠? 아니, 별 많죠?"


 정적을 이기지 못한 단조가 말을 붙였으나 어딘가 엉성했다. 긴장된 분위기를 풀어보려고 괜히 해 본 말이었는데 재미는 없었다. 말이 꼬인 단조를 보고 웃음이 터진 이저가 애써 침착하게 대답했다.


"네. 뼐 많네요. 저쪽 봐요, 오리온자리. 선명하죠?"

"아아아, 우와, 네."


 단조는 머쓱함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대강 고개를 끄덕였다. 오리온자리가 어디에 있는지 전혀 모르겠는데 일단 별은 아름다웠으니 말이다.


 골목길 안쪽에 있는 주택을 시작으로 벌써 마을의 여러 곳을 돌아본 시간이 흘렀을 때였다. 두 사람은 마을 진입로 가장자리에 앉아 생각을 정리했다. 걷고 있을 때는 몰랐는데 잠깐 쉬고 있으니 다리가 무거운 게 느껴졌다. 그리고 심각하게 목이 말랐다.


"이사 떡, 그쪽 맞죠?"


 물 마시고 싶다고 생각하던 단조에게 이저가 대뜸 물었다. 옆을 보니 그가 확신을 가진 얼굴로 시선을 맞췄다.


"네. 작업실을 열었거든요. 아직 오픈은 안 했지만."


 어떤 작업실? 마주한 이저의 표정이 그렇게 물었다.


"제가 타투이스트거든요."


 자신을 설명할 단어를 내뱉는 순간은 여전히 어색했다. 하하하. 단조는 예의상 내는 웃음소리로 정적을 메웠다. 본인의 직업에 확신은 있었지만 상대에게서 어떤 반응이 돌아올지 몰라 살짝 긴장됐다. 이전부터 다양한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말들을 숱하게 들어왔던 터라 이제는 어느 정도 면역이 생긴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운이 따라주는 한 이곳에 정착하고 살아야 했으니 이웃 주민이 될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 하나 정도는 남기고 싶었다.


"그럼 제가 첫손님 해도 돼요?"

"어… 손님 말고 친구로 오세요!"


 알겠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는 이저에게서 호쾌한 성격이 묻어났다.


"저는 이저예요."

"잊어? 뭘 잊어요?"


 단조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이저는 맥아리 없이 웃었다가 태연하게 장난을 걸었다.


“제 첫인상이 별로여도 잊어주세요. 평소엔 이거보다 낫거든요.”

“오늘이 평소가 아니면 뭐가 평손데요.”

“오늘은 평소가 아니죠. 저는 이런 평일을 보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어요.”


 이저의 눈길이 단조에게 향했다. 시선을 느낀 단조가 고개를 돌렸을 땐 이저는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긴 보통의 경우는 아니긴 하네요. 이상한 소리에, 조용한 마을에,"


 이상한 점을 하나하나 나열하던 단조가 뭔가 생각난 듯 제 다리를 확인했다. 통증이 사라졌다. 분명 지네한테 물린 것 같았는데 환부는 부어오르지 않았고, 물린 자국으로 추정되는 점도 원래부터 타고난 점인 것처럼 조용했다.


"우선 시간이 너무 늦었으니까 내일 낮에 다시 만나는 거 어때요?"

"그래야 될 거 같아요. 저, 근데…."


 단조가 말꼬리를 늘렸다. 단조네 집 방향으로 걷던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봤다.


"저, 그… 혹시…."

"왜요, 뭔데요. 뭐라도 생각났어요?"

"혹시 지네약 있어요?"


 아. 심각한 표정이던 이저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벌써 만난 거예요? 지네랑?"

"예, 뭐… 초대하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됐어요."

"좀 예의 없죠?"

"한 성깔하던데요."

"안 물리셨어요?"


 …물렸는데요. 단조는 속으로 대답했다.


"물리면 꽤 아프실 텐데. 전 세 번 물렸거든요."


 검지, 중지, 약지. 이저가 세 손가락을 펼치며 웃어 보였다. 저 미소는 동지를 만나 반가운 미소인가?

 괜찮으세요? 단조가 다시 걸음을 떼며 묻자, 이저가 그 뒤를 졸졸졸 따라오며 대답했다. 어우, 아뇨.


"약 빌려드릴게요. 에프킬라로는 안 돼요, 걔."

"아아, 기선 제압이 중요한 거구나."


 둘은 편안한 보폭으로 고요한 마을을 누볐다. 이따금 소름이 끼칠 만큼 차가운 정적이 둘을 스쳤고, 그럴 때면 지금 이 상황에 농담이나 던지는 게 과연 옳을지 의심이 들었다.


"저는 오히려 긴장하면 말이 많아지는 편이라 혼자 너무 떠들었네요. 솔직히 시끄러웠죠?”

“괜찮아요. 귀 아플 정도는 아니었어요.”


 단조는 이저의 말장난에 맞받아칠 힘도 나지 않았다. 집에 가까워지자 덜컥 걱정이 앞섰다. 일단 지네를 잡아야 되는데. 잡기 전까지는 잠도 못 잘 텐데. 이미 많은 에너지를 소모해버려 방전 직전이었다. 침대 다리에 붙어있던 지네는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이럴 때 보면 집은 숨을 곳이 너무 많아 문제였다.


 정말 잊을 수 없는 하루가 되겠다고 생각하며 단조가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아니, 그러려던 순간이었다.


"어? 식물 키우세요?"


 키우는 건 맞긴 한데 갑자기 무슨 소리지 싶어 단조가 이저를 바라봤다.


"저거 식물 조명 아닌가? 보라색 저거."


 이저의 곧게 뻗은 검지가 단조네 집을 가리켰다. 시선이 향한 곳엔 단조가 전혀 가져본 적 없는 조명 빛이 창문에 가득차 있었다. 뭔가 제대로 꼬이기 시작했다는 징조에 단조는 마을 밖으로 도망치고 싶어졌다. 어쩌면 지구 밖으로 나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쨍그랑! 우당탕탕. 와다다다.


 집 바깥으로 심상치 않은 소음이 빠져나왔다. 단조는 숨을 쉬는 법도 잊은 채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도둑이다. 도둑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 무슨 일이 일어났음을 직감한 이저가 경찰에 신고하려는 듯 다급하게 핸드폰을 찾았다.


 정체 모를 보랏빛의 기세가 커졌다. 마치 집이 팽창해서 곧 터져버릴 것 같은 기운으로 주변을 에워쌌다.


"신호가 안 가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한 이저가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주변을 탐색했다. 그러더니 단조가 시선을 돌린 틈을 타 어디선가 주워온 돌멩이를 쥐고 집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자, 잠깐만요! 어쩌시게요!"


 섣불리 행동하지 말자고 그를 붙잡으려는 시도가 무색했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자동으로 현관문이 열렸다. 그쪽으로 가던 이저가 놀란 나머지 뒤로 넘어졌다.


 현관문 사이로 보이는 풍경은 쑥대밭이었다. 두 사람은 완두콩처럼 쪼그려 앉았다.


"제 뒤만 따라오세요. 무슨 일 생기면 먼저 도망가세요, 아셨죠."


 단호하게 올라간 눈썹과는 달리 잔뜩 힘을 뺀 간질간질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갑자기 시작된 ASMR 타임에 단조는 정신을 다잡았다. 시키는 대로 안 할 거지만 대충 알았다고 대답하려는데 두 사람 앞으로 무언가가 지나갔다.


 쉬이이익.


 움직임이 빨라서 도무지 행적을 좇을 수 없었다. 무언가가 지나갔구나,라는 기척만 남았을 뿐이었다.

 눈치 싸움인가? 고개만 내밀어 상황을 살피던 단조 근처로 스미는 기묘한 소리.


 쉬이이익.


 이저는 답답한 나머지 손전등을 켜고 거실 구석구석을 훑기 시작했다. 하지만 집안을 감싼 보랏빛이 너무 센 나머지 큰 수확은 없었다.


"들키면 어떡해요!"


 작게 말하려고 했는데 데시벨 조절이 안 됐다. 단조가 육성으로 내뱉은 문장에 이저가 다급히 소리쳤다.


"저거! 저, 저거!"


 거실을 빠르게 질주하는 생명체. 그러니까 살아 있는 동물인지 덩어리인지 뭔지. 어떻게 보면 둥근 보름달 같기도, 다시 보면 대왕 감자떡 같기도 한 무언가가 기류를 헤집고 있었다.


"어떻게 잡죠?"


 손 닿으면 도망갈 것 같은데. 돌처럼 굳은 단조의 머릿속이 명쾌한 해답을 원하는지 아우성쳤다.


"유인?"

"어떻게?"

"몰라요. 아마도, 음식?"

"음식? 과자?"


 단조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이저는 근처에 있던 좌탁 테이블 근처로 슬그머니 움직였다. 난장판인 물건들 사이를 조심스럽게 비껴가더니 잠시 고민하는 뒷모습을 보여줬다. 머뭇거리던 그가 뒤돌았을 때는 플라스틱 통 하나가 품에 안겨 있었다. 엊그제 밤인가, 단조가 야식으로 꺼내 먹고 올려둔 쿠키 통이었다. 귀찮아서 치우는 걸 미뤘더니 이런 행운이 다 생기네.


"럭키~"


 이저는 허리를 굽히고 자세를 잡았다. '저것'과 가까워지는 타이밍에 저쪽으로 미끼를 던질 심산이었다. 그와 반대쪽으로 멀어진 단조가 서서히 몰이를 시작했다. 그가 있는 코너로 '저것'을 몰아세우면 조금이나마 포획이 쉬워지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럭키 이리 와~ 럭키!"


 그새 이름까지 생긴 '럭키'였다. 우연이겠지만 럭키는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 방향을 틀었다. 기회를 놓칠 새라, 이저는 쿠키 통을 던졌다.


"잡았다!!!"


 입구가 뒤집어진 채로 떨어진 쿠키 통이 바닥을 걸어 다녔다.


 드르르륵. 드르르륵. 덜커덕. 드르르륵.


 둘은 그 움직임이 멎기만을 기다렸다. 아니나 다를까, 거센 요동도 얼마 못 가 끊겼다.

 적막함이 감도는 공간에서도 긴장을 놓을 수는 없는 법. 둘은 오랜 습관처럼 한곳을 주시했다.


"저대로 둘까요?"


 잔뜩 헝클어진 머리를 하고서 이저가 물었다. 제발 저대로 두자는 간곡함마저 느껴졌다. 가련한 표정을 하면 단조가 '그래요, 그럽시다!'라고 할 줄 알았던 모양이다.


"뚜껑을 덮어야겠어요. 애써서 잡았는데 놓치면 안 되잖아요."


 스텝 원. 바닥과 쿠키 통 사이에 종이를 끼워 넣는다.

 스텝 투. 통을 들어올리는 찰나에 재빨리 뚜껑을 덮는다.

 스텝 쓰리. 그다음은…….        

                                            ?????   


"모르겠다."


 빠르게 생각을 공유한 두 사람은 쿠키 통 근처로 다가섰다. 단조의 손에는 이면지가 쥐여져 있었다. 도안을 연습하면서 모아둔 파지였다. 긴장으로 촉촉해진 손바닥이 플라스틱 통의 윗면을 잡았다. 일사불란 힘을 합친 두 사람은 재빠르게 뚜껑을 덮는 것까지 성공했다. 상상을 그대로 구현하는 데까지는 무리가 없었다. 그런데 이저의 얼굴을 확인한 단조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머리! 머리!"

"왜! 왜!"


 위협적으로 팔뚝을 들어올린 단조가 이저에게 힘을 휘둘렀다. 럭키가 나한테 붙었구나, 자각한 이저가 반사적으로 몸을 피했다. 그리고 물기를 말리는 강아지처럼 온몸을 털었다. 애초에 체면을 챙길 수 없는 괴상한 비명이 두 사람에게서 터져 나왔다.


 둘을 놀리듯 지나친 럭키는 유유히 사라졌다. 바로 단조의 방으로. 방문 아래쪽에 아주 작은 틈새가 있었는데 재주 좋게 들어간 모양이었다.


"하하. 뻔뻔하네?"


 저 낯짝 두꺼운 괴물은 뭐지?(럭키라고 부르기도 싫었다) 도대체 뭐 하는 애지?

 단조에게는 두려움의 다음 단계가 분노였다. 그런데 이저는 아니었다. 그에게 두려움의 다음 단계는 출구 없는 두려움이었다. 이 사실을 단조는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찔끔 울음이 터진 이저를 뒤로 하고 단조는 거침없이 문을 열었다.


 자, 본인의 방이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를 고르시오.


 1번, 인테리어가 바뀌었기 때문에.

 2번, 누군가 다녀간 흔적 때문에.

 3번, 드디어 미쳤기 때문에. (유력 답안)


 아무래도 3번인 것 같다고 생각하며 단조는 바싹 마른 입술을 감췄다. 단조의 커진 눈매가 방안을 훑었다. 이상했다. 처음 보는 인테리어였다. '여기는 내 방이 아니야.' 그 사실을 깨닫자 다리가 바닥에 붙은 듯 옴짝달싹도 하지 못 했다. 긴장과 공포가 엄습한 탓인지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았다.


 가까스로 출력된 첫마디는,


"누구세요?"


 였는데 그건 상대방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잔뜩 겁먹은 얼굴이 낯설면서도 묘하게 아는 얼굴과 닮아있었다. 분명 아는 얼굴인데. 아, 누구지?


 ……!


"설마…."


 아니겠지.


"에이, 설마…."


 외운 단어가 '에이'와 '설마'인 사람처럼 단조는 같은 말만 반복했다. 침대에 걸터앉은 젊은 여자, 그리고 그 옆에 얌전히 몸을 맡긴 럭키. 근데 쟤는 또 언제 저기 간 건데?


"혹시,"

"…."

"……이모?"


 단조의 경직된 어깨 뒤로 뒤늦게 이저가 등장했다. 눈물은 좀 닦고 오지. 혼자 운 티가 역력했다.

 두 사람을 물끄러미 경계하던 여자의 입이 열렸다.


"친구를 주렁주렁 달고 왔네?"


 럭키에게 하는 말이었지만 누가 봐도 너 들으라는 목소리였다. 여자의 시선이 단조에게 향했다.


"너 나중에 크면 그렇게 생겼구나?"

"…."

"단조야."


 2023년의 새벽과 1998년의 새벽이 맞물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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