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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희 Oct 27. 2022

나는 엄마의 미운 우리 새끼



며칠새 나는 가을을 타는 것인지, 뭔지 모를 무기력감을 느끼며 삶을 꾸역꾸역 살아가는 기분이었다. 살짝 우울증이 온 것 같았다. 사는 게 재미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리에서 벗어나 길은 잃은 오리처럼 방황했다.

그런 나와 다르게 엄마의 일상은 파닥파닥 날개를 펼치는 멋진 오리처럼 활기차고 분주했다. 가능하다면 나의 젊음을 엄마에게 주고 싶었다. 나에게 주어진 하루하루가 나에겐 너무 아깝게 느껴졌다.


최근 엄마는 쿠팡 계약직 사원이 됐다. 쿠팡 웰컴데이(쿠팡 물류센터에서 체험형식으로 근무해보는 것)에 체험 근무를 해보고 계약직으로 근무하기 시작했다. 식당 일보다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어제는 첫날 근무를 마치고 엄마가 퇴근하는 날이었다.


엄마가 퇴근하기 전, 저녁식사를 위해 장을 보러 무기력한 몸을 꾸역꾸역 이끌고, 집근처 시장에 갔다. 엄마가 맛있게 먹었던 시장 옛날통닭, 찐 옥수수, 맥주, 컵라면을 샀다. 그리고 엄마가 오기 전에 집을 재빠르게 치웠다. 빨래, 설거지, 청소기 돌리기…


사실 엄마는 내 브런치 글을 읽고 있는데, 엄마와 싸웠을 때(혼난 게 사실) 엄마를 위한다는 번드르르한 글만 쓰지 말고,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일을 하라는 말이 생각나서 요샌 엄마가 집에 오기 전에 집안일을 다 해놓으려고 노력 중이다. 엄마에게 나는 미운 오리 새끼나 다름 없다.


쿠팡 계약직으로 일하고 온 첫 날, 엄마의 두 뺨은 벌겋고, 눈도 살짝 충혈돼있었다. 많이 힘들었을 거란 걸 단 번에 알았다.


"엄마 힘들었지?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거 쉽지 않다니까."

"식당 일보다 괜찮았어."


엄마가 씻는 동안 나는 저녁을 준비했다. 옛날통닭과 옥수수 그리고 맥주.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일 힘들었지? 엄마 얼굴보니까 힘든 게 다 티나는데!"

"식당 일보다 훨씬 나았어. 물류센터 걸어다니면서 물건 찾아서 상자에 넣는 거라 운동도 되고."

"엄마 그래도 힘들면 그만 둬."

"안 그만 둘 건데~?"


대수롭지 않게 웃으며 내가 사온 치킨을 맛있게 먹는 엄마. 일이 많이 고됐는지 평소보다 더 많이 맛있게 먹었다. 분명 좋아할 거라 생각하고 산 컵라면까지 해주니 안 샀으면 큰일날 뻔 했을 것 같이 정말 맛있게 먹었다.


어제도 퇴근하고 온 엄마를 위해서 집을 치우고, 저녁을 준비하고, 식사 후 식탁을 치우고, 설거지까지 마치니

엄마가 고맙다고 했다. 여러 감정이 겹쳤다. 미안함, 부끄러움, 뿌듯함...


너무 당연히 해야할 일들을 했음에도 엄마가 고맙다고 말하게 한 것 과 번지르르하게 브런치에 엄마에 대한 글을 써왔던 것 그리고 지난 며칠동안은 사는 게 참 재미없다고 생각한 것... 미운 우리 새끼 그 자체였다.


시간이 지나서 지금은  내가 언제 사는  재미없었다고 생각했나 싶을 정도로  일상이 정상의 궤도로 다시 올라섰다. 쿠팡에 일하러 가기 위해 새벽 6시에 일어나는 엄마를 따라 나도 일찍 일어나서 아침 수영을 다니기 시작했고, 엄마가 열심히 물류 센터에서 일하는 오전에 나는 집안일, 영어 공부, 독서, 글쓰기로  일상을 채워 본다. 엄마가 퇴근할 즈음 나는 일을 하러 간다. 마치 엄마 오리를 쫄쫄쫄 따라 활기차게 헤엄치는 오리처럼말이다.


여전히 엄마에겐 미운 우리 새끼이지만 그래도 예쁜 우리 새끼가 돼보려 오늘 하루도 엄마를 따라 활기차게 하루를 시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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