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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imeSpace Jul 14. 2021

이름을 기억해 너를 지킨다

나의 이름들에게

나는 사람보다는 인간이라는 단어 좋한다.

사람 인, 間 사이 간.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인간의 의미 탄생한다. 따라서 홀로 존재하는 사람을 인간이라 일컫는 것은 불가능하다.


말하고 듣는 인간은 자기 자신을 '나'라고 칭한다.  '나'와 '나' 사이를 구별하기 위해, 인간은 '나'가 아닌 '나'를 '너'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너'의 '너'는 다시 '나'가 되거나 제삼자를 칭하는 '이 사람', '그 사람' 등었다.


제삼자인 인간을 부르는 단어를 '그'라통일한다면, '나'는 '그'를 마주할 수 없다. '그'에 대해 알 수도 없다. 기껏해야 '나'는 '너'의 입을 빌려 '그'에 대해 알 수 있을 뿐이지, '나'는 오직 '너'와 마주한다.



아직 만나본 적조차 없는 이들의 수와는 비교가 안 되지만, 그래도 살면서 만난 사람 한둘이 아니다. 라는 존재가 너무나도 많아서, 나는 너와 또 다른 너를 어떻게 구별할까 고민했다. 내 생각에, 너를 특정 짓는 수단은 이름이다. 그것이 너에 특별함을 준다.


너가 없었다면 너의 이름을 나는 모른다.

내가 너의 이름을 기억한다면 너는 존재한다.

인연이 짧든 길든 이름을 잊고 지내면 그 존재가 내 기억 속에서 희미해진다. 연이든 필연이든 너가 나의 그 사람이 아닌, 나의 가 된 일이 기쁘기 때문에, 나는 너의 이름을 기억하 싶다.

내가 죽을 때까지 너의 이름을 기억한다면 적어도 그때까지 너는 내 안에 존재한다. 내가 기억하는 이름들은 내 안에 살아 있다.


나는 지금껏 기억해온 이름들을 아낀다. 그만큼 너도 나의 이름을 소중히 여겨주었으면 좋겠다. 나의 이름과 생각, 그리고 내가 기억하는 소중한 이름들이 오래 살아남기를 소망한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쓰며 이름을 지킨다. 나를 지키고 이름들을 지킨다.




메모장 펼치기

세상에 '너'라는 존재가 너무나도 많아서, 나는 너를 어떻게 기억할까 고민했다. '언제 어디서 만났던 누구'라고 할까? 좋다.

'2021년 7월 11일 22시 44분, 영내 도서관에서 내 옆자리에 앉아 공부하는 사람'이 지금 내 옆에 있다. 글을 쓰는 동안 금방 시간이 흘러 46분이 되었다. 차라리 그를 '2021년 7월 어느 날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사람'이라고 할까? 됐다. 이 사람은 결코 내 기억에 남을 수 없다.


돌이켜 보면, 지금까지 살며 수많은 이름의 사람을 만났다. 스치듯 지나간 인연이 있는가 하면, 아주 어릴 적에 잠깐 만났어도 아직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다.

이름이 지니는 힘이 있다. 기억된 이름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또한 이름은 시간을 초월한다. 7살 때 어울렸던 친구의 이름이 아직도 기억난다. 하지만 이 글을 올리는 2021년 7월 14일, '2021년 7월 어느 날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사람'은 이제 내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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