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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imeSpace Oct 04. 2021

무의미해 보이는 시간의 가치

살아 숨 쉬고 생각하는 것이 행복이다

휴가를 나갔다 온 뒤로 예방적 격리를 한답시고 다중이용 시설 출입을 금지당하니 할만한 것이라곤 핸드폰 만지는 것뿐이다. 원래 같았으면 사지방에 가 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어 공부를 하거나 밖에 나가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운동을 했을 터인데.


나는 다른 아이들처럼 핸드폰을 잡고 무언가에 몰두하는 일은 못다. 그래서 오늘은 뭘 할지를 고민하다가 음향학에 관한 영상을 보다가, 미술 학원을 알아보며 뜬구름을 잡다가, 커피를 내려 마시며 잔나비 노래들었다. 래를 들으며 나의 과거를 들여다보았다. 내 글을 읽고 내가 찍었던 사진들을 보고 내가 쓴 일기를 읽었다. 과거에 남겼던 기록을 보며 당시 기분이나 생각을 회고하는 일은 즐겁다. 그 즐거움은 내게 생기를 불어넣어 줘서, 지금처럼 펜을 잡게 할 때가 있다.


벌써 오후 세시 반인데, 무의미하게 시간이 흐른 것 같다. 시간의 무의미함을 감지할 때, 나는 불안하다. 그런데 무의미함의 경계 모호해서, 불안함은 길을 잃는다.  평온해지다가 이내 다시 불안하기를 반복한다.

 내가 무의미하게 시간을 허비한다고 느끼는 일은 공포 영화 보기, 시간 때우기 위해 억지로 게임하기, 생각 없이 멍 때리기 등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휘발성이 강해 금방 사라지는 기억들이고, 소비한 육체적-정신적 에너지 대비 얻은 것이 보잘것없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차라리 지금처럼 침대 위에서 다리를 꼬아 쭉 뻗고, 앉은 건지 누운 건지 모를 애매한 자세로, 왼손은 주머니에 넣고 한 손에는 펜을 잡고 끄적이는 일이 훨씬 가치 있게 느껴진다. 그렇게 누워 앉아 머리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손에 쥔 펜으로 휘갈긴다면 뭐라도 남으니 말이다.


 나의 머리는 지금, 시간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는 중이다. 나는 왜 오늘 내내 과거와 미래를 들여다보며 즐거워하고 불안해했는가.

과거에 대한 기억은 좋다. 그리고 따뜻하다. 그래서 과거를 동경하며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러나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한편으로, 과거를 후회하기도 한다. 왜 과거의 나는 열심히 하지 않았는지 자책하며 아쉬워한다. 그때 하나 더 배웠더라면, 시간을 유의미하게 썼다면, 일분일초를 소중히 사용했더라면 좋았을 텐데(쓰고 보니 '-면' 투성이다)고 말이다.

과거 회상은 이처럼 정을 소생시키고 성찰하게 한다. 그러나 과거에 너무 얽매인다면 현실로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다행히 현실로 돌아와 성찰의 결과를 읊어 본다. 나는 지금 만족할 만큼 열심히 무언가를 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왜냐하면 조금 전까지만 해도 흘러간 시간이 아깝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 번 더 질문해본다. 왜 시간이 아깝다고 여겨졌을까? 먼저 열등감이 원인이라고 가정해본다.


나는 두뇌 회전이 빠르지도 않고 그 누구보다도 무지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무언가를 하려면 오랜 고민과 노력의 시간이 필요하다. 주위를 보면 다들 어떤 환경에서든 열심히 살아가는 것 같다. 나는 물리학을 그 누구보다 좋아한다고 자부하는데 남들에 비해 진도가 더디다고 느낀다. 그러면 곧장 위기의식이 생긴다. 동시에 불안해진다. 그런데, 나는 이것을 왜 불안하다고 느끼는 걸까?

생각해보면 굳이 불안함을 찾아 느낄 필요가 없다. 애초에 불안함이 생길 이유도 없다. 그런 생각은 내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머릿속에서 고민과 불안이 꼬리를 물며 늘어뜨리는 시간이 아깝지 않은가? 다른 사람이 열심히 한다는 사실은 내게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열등감은 쓸모가 없다. 그래서 지우기 쉽다. 시간이 아깝다고 느끼는 다른 이유가 있을까? 두 번째 가정을 해본다.


인간은 제한된 시간을 산다. 태어나서 숨을 쉬고 있기에 삶은 진행되고 있다. 매 끼니로 에너지를 공급하며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다. 호흡을 하면 결국 산화하지만, 어쨌든 우리는 지금 모두 살아있다. 그리고 이왕 사는 거, 즐겁게 살다 죽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나는 그 즐거움을 배움에서 찾기로 했고 이것은 평생을 살아도 후회하지 않을 선택이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시간이 아깝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놓쳤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즉 나의 불안함은 즐거움 결여로부터 발생한다. 불안함은 너무나도 집요해서, 즐거움이 잠시라도 자리를 비우면 그 자리를 채우려 애를 쓴다.


결국 나는 인생을 즐거움으로 채우기 위해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있었다. 열등감이 쓸모없는 이유가 다시 강조된다. 나는 오로지 자연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즐거움을 위해 공부한다. 즐거움은 배움으로부터 온다고 말했는데, 그건 단지 책이나 말로 배우는 것만이 아니라 경험하고 생각하는 일 또한 포함한다. 산책을 하며 눈에 들어오는 풍경조차 생각할 여지를 제공한다. 가만히 누워있을 때 역시, 나는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이 가만히 누워 있어도 즐겁다. 살아 숨 쉬고 생각하는 것이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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