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과 식사를 하던 중 새로 알게 된 사실 하나가 있습니다. 한국엔 해마다 6만5천 종이나 책이 풀리는데요. 이는 일본과 비슷한 양이라고 해요. 우리나라의 인구가 일본의 1/2이라는 걸 감안했을 때 우리의 출판량은 사실 독서 인구를 훨씬 넘어설 만큼 어마어마한 거라는 거죠. 그만큼 출판하고자 하는 사람, 책을 내고 쓰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겁니다.
중국에서 몇 년 살다온, 현재 반포에 사는 친구가 했던 말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거주지 근방에 서점이 전혀 없다고. 그러면서 한국 대형서점은 주로 지하에 책만 빽빽하게 있다며 책과 친해질 환경이 갖춰지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또한 중국과 비교하는데, 중국엔 작고 큰 서점들이 즐비해있고, 커다란 통창에 내리 햇빛과 친구하며, 커피 한잔에 아이와 포장이 되어 있지 않은 책들을 마음껏 들춰볼 수 있었다고. 그런 면에서는 중국이 진정한 선진국 아니겠느냐고요.
실로 지난해 국내 서점이 2484개로 전년보다 44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해요. 임대료 부담 등으로 실제 폐점을 고려하는 서점들도 많아졌고요. 화성시 소재한 아는 서점도 얼마 전에 문을 닫게 돼, 서가 한 조각을 담은 추억상자를 선물 받게 되었는데요. 예쁜 포장지에 겹겹이 싸인 책들과 문구류를 보고 마음 한 켠이 따뜻해지면서도 아쉬움을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우리 주위를 둘러싼 환경적인 요소와 더불어 거시적으로 보면, 책의 인기가 없는 건 아마도 급격하게 바뀌는 미디어 환경이 한몫을 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즉 즐길 거리, 볼거리가 많은 거죠. 그리고 ‘빨리 빨리’ 전력질주 인생사에서 여유롭게 즐겨야 할 책 문화가 밀리는 게 사실이고요. 그나마 다행인 건 20, 30대 젊은 층들이 E북 등을 본다는 점인데요.
그래서 결국 읽고 ‘쓰는 일’이라는 게 과연 생산성이 있는 건지, 유망한 건지 우려스럽고 알쏭달쏭하다면 일단 마음 먹었으면 해보자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더이상 환경적인 탓 그만하고요. <나는 읽고 쓰고 버린다>의 저자 손웅정은 유년에 시작한 공부는 솟아오른 아침의 태양처럼 창창하고, 중년에 시작한 공부는 정오에 내리쬐는 태양처럼 반나절 밖에 그 빛을 낼 수 없으나 무척 강렬하며 노년에 시작한 공부는 촛불과도 같아 태양과 견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앞을 못보고 헤매는 것보다 천배 낫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여기서 앞을 못보고 헤매는 것보다 훨 낫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오직 우리 자신만 생각한다면, 읽고 쓰는 게 결국 맞죠. 이 책을 보고 계신 독자분들이 얼마만큼 나이와 연륜을 잡수셨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읽기와 쓰기를 결심한 그 마음가짐과 실행이 중요합니다. 책을 읽고 글을 쓴다면 적어도 우린 인생이란 미로에서 허부적거리진 않을 거라 자신합니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방향을 끝내 찾을 겁니다.
왜냐고요? 아버지는 20년도 전에 내가 언론사 입사를 위해 준비할 때 이런 말씀을 하셨답니다. “기자는 무엇보다 글을 잘 써야 해. 책도 많이 읽고. 네가 그런 역량이 될지는 나도 모르겠다.” 대문자 T 아부지의 김새는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지금 기자는 아니지만 나는 결국 읽고 글과 연결된 삶을 살고 있으니까요. 책도 내고 퇴근 후 끼적이는 걸 보면 세상은 내 흐름대로 살아봄직 한 거 아닌가요. 정말 한 치 앞을 도통 알 수 없는 게 인생이니까요. 나처럼 여러분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