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의 플랫폼
교직에 들어와 초기에 경험했던 회의를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당시 발령받은 학교는 30학급 정도의 규모가 제법 있는 학교였다. 교무실은 교실 2칸 정도 되었고, 하나의 테이블에 5,6명의 동학년 선생님들이 둘러앉았다. 그니까 모둠 수업 모양이었다. 수업하듯 교감 선생님이 가장 앞에 있었고, 교장 선생님은 나무 의자를 가져와 그 곳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지금부터 교직원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교무 선생님이 진행 사회를 봤다. 그 말에 우리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목례로 서로 인사 나누었다.
“각 계에서 전달하실 말씀 있으시면 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과학계에서는 과학의 행사를 맞이하여 이런 행사를 준비하였고, 담임 선생님들은 언제 이런 교실 대회를 실시하여 우수 작품을 보내주시고, 맡은 업무 분장은 교감, 교장 선생님에게 결재를 맡아 안내하니 협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대충 이런 식이었다. 부장 선생님이 한마디씩 한다. 그리고 교감 선생님과 교장 선생님이 마무리 말씀을 한다. 주로 아이들이 복도에서 뛰어다니니 뛰어다니지 않게 지도해달라 등의 주로 생활지도 관련한 내용이었다.
이런 전체 회의가 일주일에 한 번씩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두어 달이 지났을 때 문제가 생겼다. 당시 신규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학생 수가 많아지고, 학급수도 덩달아 늘어나며 일반교실 부족 문제가 생긴 것이다.
해결 방안으로 2개 있는 컴퓨터 실을 하나 줄여서 일반교실로 만들자는 방안과 교무실을 반으로 나눠 한쪽은 교무실로, 다른 한쪽은 교실로 쓰자는 안이었다. 당시로서는 2가지 안이 서로 쟁점이 되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다. 교감, 교장 선생님이 결정하면 그것이 결론이었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당시 한 선생님이 문제 제기를 하였고, 그것이 교직원 회의 안건으로 온 것이다.
당시 교장, 교감 선생님은 컴퓨터실을 줄이자라는 의견이었다. 줄이는 것은 안타깝지만 하나는 줄여야 하는 불가피한 부분이 있었고, 교무실 줄이는 것보다는 컴퓨터실을 줄이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경력이 지긋한 선생님이 일어나서 ‘교무실은 학교의 얼굴이다.’라며 교무실은 줄이는 것은 안 된다는 의견을 냈다. 또 한 분의 경력 선생님도 비슷한 의견을 냈다. 그리고 교감 선생님이 한마디 거들면서 컴퓨터실 하나를 줄이는 것으로 처리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문제제기를 하였던 선생님이 토론이 필요하다 하였고, 교장 선생님도 그럼 이야기해보자고 하여 토론이 진행되었다. 문제 제기를 한 선생님은 컴퓨터 관련 교육활동이 필요한 시기이고, 실제 홈페이지 학급 게시판을 활용하는 등의 활용도가 높다는 의견을 냈다. 즉 컴퓨터실이 두 개인 지금도 전 학년이 사용하기 모자란데 1실을 줄이는 것은 안 된다는 의견이었습니다.
다른 의견을 기다렸다. 기억으로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저도 컴퓨터실을 줄이는 것보다는 교무실을 줄이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중략> … ”
발령받은 지 얼마 되지 않는 내가 일어나 발언을 했고, 그다음 무슨 말을 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안 나지만 그 이후 1~2명의 선생님의 지지 발언이 있었다.
반대 의견이 두셋명이 나오기 시작하자, 당시 교장 선생님은 회의를 급하게 마무리 짓고 끝냈다. 얼마 후 교무실이 절반으로 줄었다. 대의적으로 교육활동 공간을 줄이는 것이 맞다는 의견이 명분을 얻은 것이라 생각했다. 당시 문제 제기한 선생님은 나를 만날 때 가끔 그 얘기를 한다.
신규교사가 그때 그랬다고. 그러한 교사를 ‘벌떡 교사’라고 한다는 것도 알려주었다. 지금 당시를 돌아보면 신규교사였고, 지금은 교장이 되었다. 신규교사가 대의에 동의했고, 용기 있게 한 마디 던진 것이라 볼 수 있겠다.
그러나 또 한편 이 이후에 일어난 일들을 살펴보면 조금은 아쉬움도 남는다. 교무실을 줄이면서 생긴 반을 ‘문제 제기한 선생님’이 사용하셨고, 다음 해는 ‘다른 선생님’이 사용하시며 불편함을 여러 차례 호소했습니다. 교무실에서는 옆 반 수업을 실시간으로 들어야 했습니다. 또 그 옆에는 행정실이 있었으니 이런저런 불편함이 있었던 것이다.
떠들지 않는 것이 곧 생활지도였던 당시를 생각해 보면 그 반 아이들도 참 힘들어겠다라는 생각도 해본다. 만약 이러한 사실까지 알고 있었다면 나는 또 어떤 선택을 했을까 생각해본다. 또 다른 시각으로 내가 만약 그 당시에 그 교장이었다면? 그리고 그 문제가 지금 일어난다면?
아이러니하게 실제 해밀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물론 똑같지는 않지만 해밀초에 일반교실이 부족하여 대안을 찾아야 하는 일이 작년에도 있었고, 내년에도 또 고민을 해야 한다.
먼저 문제 상황을 공유했다. 물론 사안에 따라 공유의 범위가 다른데 가능한 관련이 있는 사람들에게 공유를 한다. 학교 선생님에게 공유를 하고, 학부모님에게 한 달에 한번 쓰는 편지에 이런 문제 상황 공유를 먼저 했다.
공유를 하는 이유는 문제 상황에 대해 관련된 사람들이 알고 있어야 공동의 문제가되고, 공동의 문제는 공동으로 풀어야 하기 때문이다. 학교의 많은 일 중 ‘나의 일’이 되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어느 날, 갑자기’ 떠넘겨지기 때문이다. 상황이 발생하는 첫 출발부터 함께 하는 것이 좋다. 현안 문제가 아닌 다른 일도 마찬가지다. 즉 공유를 시작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만약 새로운 일이라면 ‘기획’부터 같이 하는 것이 함께 가는 길의 첫걸음이다.
공동 문제로 풀어가면 정말 새로운, 생각지도 못한 방안을 찾을 수도 있다. 각자가 가진 경험과 정보가 다르고 해결 방안이라는 것이 다른 방안과 직접적으로 연결되기도 하지만 연쇄적으로 문제 해결 방안을 찾을 수도 있다. 이것은 서로 공유되었을 때 가능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방안을 찾고, 그렇지 못할 때 서로 양보하거나 양보를 구해야 한다. 내가 힘이 없거나 잘 몰라서, 혹은 신규라서 양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과 맥락을 살폈을 때 내가 양보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하는 것이나 혹은 양보를 구하는 것이 좋겠다는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
신규 발령 받은 학교, 그 당시 만난 교장 선생님을 다시 생각한다. 본인의 가진 경험으로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그리고 당시 교직원 회의로 인하여 본인의 생각과 다른 방향으로 가게 된 것에 대한 마음에 상처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그 상처를 ‘문제 제기한 선생님’ 탓으로 여기며 정리했을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좋은 모델이 되었던, 반면교사가 되었던 그 모습이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경험으로 축적되었고, 그 경험이 또 다른 일의 바탕이 된다. 나 역시도 그럴 것이다. 당시의 기억이 현재의 저를 만들었고, 지금 교장으로서 하는 역할이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도 있지만 반면교사로서 역할을 할지도 모른다. 세월이 조금 지나면 고리타분한 ‘꼰대’의 모습이 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지금, 여기, 사람들에게 집중해야 한다. 우리의 문제는 우리가 해결해야 하는데, 플랫폼이 교장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기쁘기도 하고 슬픈 일도 있다. 어떤 일은 하고 싶은 일도 있고, 하기 싫은 일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이 감정이고, 학교를 둘러싼 누군가에게는 중요한 사안일 수 있다. 어떤 문제가 멈추지 않고 흐르기 위해서는 플랫폼이 필요하다. 그 플랫폼을 사용하는 사람은 지금, 여기에 있는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