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교장의 자격2

텍스트보다는 콘텍스트를

     

 “교장 선생님, 쉬는 시간 15분 더 늘여주시고, 급식에 포켓몬 빵 나오게 해주세요.”

 “우리 수련회 못 가게 됐어요. 부모님들의 1박2일 찬성 비율이 낮아 하루 만에 돌아 와야된다고 했어요. 우리 1박 2일로 가게 해주세요.”

 첫 번째는 1학년 친구들이 교장실로 와서 요구한 민원(?)이고, 두 번째는 5학년 친구들이 요구한 민원(?)이다. 


 요구 혹은 민원으로만 바라보면 아이들에게 미안하지만, 쉬는 시간 15분을 늘이고, 급식에 포켓몬 빵이 나오게 할 수는 없다. 쉬는 시간을 늘이는 문제는 하교 시간과 맞물리며 방과후에 짜여진 각각의 시간에 지장을 주고, 1,000명 이상이 먹는 급식 시간 등의 조정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학기 중에 바꾸는 것은 아주 중대한 상황 아니면 어렵다. 또 수련회 가는 과정에 학부모의 동의 비율 넘지 못했다고 그것을 억지로 또 가게 할 수도 없다. 만약 억지로 가게 한다면 득보다 실이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는 있다. 쉬는 시간 15분을 왜 더 요구하는지, 포켓몬 빵을 왜 요구하는지는 알 필요가 있다. 왜 하필이면 15분일가? 보통 10분 아니면 30분 단위로 얘기하는 게 일반적이다. 예를 들어 1학년 때는 정각과 30분 단위 시간 보는 방법을 배운다. 


 해밀초는 하루 중 종을 두 번 울리는데, 한번은 중간놀이 30분에서 끝나기 5분 전, 1,2학년 점심시간 끝나기 5분 전에 울린다. 특히 1학년은 쉬는 시간이 끝난 지 모르고 놀고 있는 경우가 아주 많다. 담임 선생님이 학교 구석구석에서 노는 아이를 찾아다니는 경우가 종종 있어 생각해 낸 방법이다. 


 1학년 친구 몇 명이 교장실로 와서 쉬는 15분을 늘려 달라는 것은 학급 내에서 그러한 사정이 분명히 있다. 시간을 배우며 학교 일일 시간표를 맞춰보는 과정에서 알게 되었을 것이다. 포켓몬 빵도 사연을 담고 있을 것이다.


 5학년 친구들은 설문 조사 결과가 발표되었고, 속상한 나머지 교장실을 찾아온 것이다. 5학년 아이들과 한참 이야기를 나눴다. 이야기를 듣고 어느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는지 알고 돌아갔다. 자세한 내용은 밝힐 수 없지만, 다음에는 분명 성공할 것이다.


 당연히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면 안 되는 이유는 명확하다. 안되는 이유를 설명해주는 것보다 일단 상황을 상세하게 들어보는 것이 우선일 때도 있다. 가끔 뜻밖의 이유가 있는 경우도 있다. 대부분 사건은 홀로 생기지 않는다. 그 전의 이야기가 있다. 그 전에 이야기를 궁금해하고, 숨겨진 이야기를 서로 나누며 찾아가면 의외로 쉽게 답을 찾아갈 수 있다. 


‘아무리 새롭고 획기적인 교육의 방법이나 패러다임도, 교사와 학생들의 인격적인 만남을 통하지 않고는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에, 내가 먼저 나 자신을 돌아보려고 노력합니다. 학생과 눈을 맞추며 이야기하기 위해서 때로는 무릎을 꿇어야 하고,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함을 깨닫습니다. -거창고등학교 홈페이지 학교장 인사말 중 일부’


 혁신학교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선생님들이 말씀하시는 공통적인 말이 있다. 바로 ‘인격적인 만남’이다. 난 이것을 ‘신뢰’라는 말을 사용한다. 신뢰를 쌓는 시간은 걸릴지 모르지만 단단하게 구축된 신뢰 바탕 위에서 펼치는 교육활동은 훨씬 더 의미있게 다가올 것이다.     


‘지금부터 우리 해밀아이들이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이 이야기는 재밌고 웃기기도 학 때로는 심각하고 진지하기도 할 것입니다. 때로는 슬픈 이야기도 있을 거예요. 그래도 책을 덮지 마세요. 우리 얘기잖아요. - 해밀초등학교 홈페이지 학교 소개 중 일부’    

 

 여름방학 직전에 3학년 아이들이 왔다.

 “교장 선생님, 3학년 화장실에 귀신이 있어요.”

 “그래? 직접 봤니?”

 “아니요. 저는 못 봤는데, 친구가 봤다고 했어요.”

 “음. 우리 학교는 지은 지 2년밖에 안 되서 귀신이 있을 가능성이 적긴 해. 왜냐하면 귀신은 억울한 죽음을 당한 사람이 귀신이 되는 경우가 많잖아.”

 “네. 그런데 우리 학교가 예전에 가축들이 죽으면 묻는 공동묘지였다고 했어요.”

 “쉿! 너 그거 어디서 들었니?”

 “OO 친구가 말해줬어요.”

 “음. 그렇구나. 일단 상황을 파악하고 정체를 밝혀보자.”

 해밀귀신정체탐구단을 꾸렸다. 역시 더울 때는 무서운 이야기가 돌아다니나보다. 그리고 아이들의 귀신 이야기를 수집했다. 점심때가 되면 3학년 아이들이 귀신 이야기를 들고 왔다. 


 ‘화장실 안에 들어가면 문이 여러 개인데, 가장 안쪽에 있는 문이 닫힐 때 착 달라붙는다.’ , ‘아무도 없는데 철컥하는 소리가 나기도 한다.’ 주로 이런 내용들이었다. 탐구단을 꾸렸지만 결론이 어디로 갈지 몰랐다.

 “그런데 우리 귀신 발견하면 어떡하지?”

 “물어봐야죠? 왜 귀신이 되었는지.”

 “물어보고?”

 “억울한 사연을 들어주고, 잘 보내줘야죠.”

 생각보다 싱겁게 끝났다. 귀신 이야기가 돈다고 상담 선생님이 걱정했다. 괜히 무서운 이야기가 돌고, 그것 때문에 불안해하는 아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했다. 다행히 여름방학이 오기 전에 마무리되었다.     


 교장으로 경험한 학교는 매우 섬세한 조직이었다. 학교는 아이들이 교실에서 수업하는 것! 외에도 그 주변을 둘러싼 교사, 직원, 학부모, 지역사회는 매우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다. 촘촘함이 잘 보이지 않아 맥락을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혹은 촘촘하게 연결되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도 있다. 학교가 나아감은 학교를 둘러싼 사람들이 그물처럼 엮인 촘촘함 속에서 그 맥락을 파악하며 한 발자국 가는 길이다.


 마치 높은 산에 올라가 보면 수많은 산봉우리가 첩첩으로 쌓여 있는 모습처럼 보인다. 어느 한 사건이나 갈등에 표면에 과도하게 집중하게 되면 당장 해결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숨겨진 어떤 불만은 첩첩 둘러쳐진 어느 산을 맞고 튕겨와 새로운 상황을 만들어버린다. 모든 변수를 고려할 수는 없지만 나름 맥락을 파악하며 나아가는 모습은 매력적이다.


  교장은 특정한 프로그램이나 내용을 안내하는 것보다 서로 인격적인 만남을 할 수 있도록 학교를 둘러싼 사람들이 나름대로 이야기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고, 그 통로가 다른 통로로 연결되는 촘촘한 망을 만들어야 한다. 촘촘한 망은 ‘학력’을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생활’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오해나 왜곡, 결핍의 부족한 부분을 채울 것이다.


 학교는 매우 섬세하지만 단단한 조직이다. 자연은 진공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학교도 자연과 마찬가지로 촘촘히 연결되어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는다.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고, 밀면 밀렸다가 다시 당기고, 어떨 때는 한 겹처럼 보였다가 좀 더 자세히 보면 여려 겹이 보이기도 한다. 학교도 자연처럼 진공을 허락하지 않는 조직이다. 어쩌면 자연의 일부로서 존재하려는 것 또는 자연을 닮으려고 하는 것이 가장 이 가장 이상적인 학교의 모습일지 모른다   

작가의 이전글 교장의 자격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