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의 힘과 세월의 지혜
틀니, 꼰대 등 나이 든 사람들을 향한 혐오적 표현이 가득한 이 시대에 살고 있지만, 저는 여전히 경험의 힘과 세월의 지혜를 믿는 사람입니다. 젊다고 다 도전적이고, 어리다고 다 명랑하지 않듯, 미운 어른들도 있지만 좋은 어른들도 정말 많잖아요.
요즘 회사에서 일을 하는데, 정말 얄미워서 꿀밤을 때려주고 싶은 직장 선배가 있어요. 미어캣처럼 두 눈을 끔뻑거리며 사무실 책상에 앉아 하루종일 카카오톡만 들여다보고 있는 그를 보고 있노라면, 정말 허파가 디비집니다(?) 그의 주간 리포트에는 매번 '협의 중', '논의 중', '검토 중'이 가득하지만, 지난 1년간 단 하나의 프로젝트도 착수시키지 못한 그를, 서너 개의 프로젝트에 매일 끌려다는 제가 좋은 마음으로 볼 턱이 있나요. '걔한테 맡기면 일이 진행이 안되니까 너한테 맡기는 거야, 좀만 참아.'라는 말도 안 되는 말로 매번 저를 설득하는 팀장님도, 오늘도 여전히 알아들은 건지 못 알아들은 건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고개만 끄덕거리는 그도, 선배라는 이유로 그에게 매번 저보다 월급을 더 얹어주는 회사도, 다 미운 것들 투성이인 요즘, 저는 인사이드아웃의 버럭이처럼 매일 시한폭탄 같은 일상을 살고 있습니다.
또 모르죠. 세상에 다 옳은 사람이 어디 있겠고, 다 틀린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어쩌면 그도 저를 최선을 다해 견디고 있을 지도요. (아닐 수도 있지만?) 그리고 그를 저의 기준과 저의 잣대로 평가하는 것도 얼마나 폭력적인 일이겠어요. 그리고 그를 격렬히 미워하는 이 마음이 저 자신에게조차 결코 건강하지 못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저는 요즘 순재할아버지의 말씀을 마음에 좀 새기며 지내는 중입니다. 세상 모든 것을 다 참으며 살아갈 순 없겠지만, '조금도 손해 볼 수 없다.'는 마음보다는 '조금 손해 봐도 괜찮아!'라는 마음으로요. 저는 그런 마음에서 여유가 나온다고 생각하고, 여유 있는 마음에서 자존감이 나온다고 믿고 있거든요. 사실 오늘도 그가 너무 얄미운 건 사실이지만, 뺀질거리는 그를 보며 고통스러워하는 것보다는 '내가 좀 잘하나 보다!' 생각하며 지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조금 더 쌓은 실력이 또 저를 조금 더 좋은 곳으로 데려다줄 거라고 상상하면서요. 그리고 이런 예민한 저를, 그도 이해하려 애쓰고 있지 않을까, 조금은 공감해보려고도 하고 있고요.
그래서 저는 요새 이런 제가 좀 좋기도 합니다. 이게 제가 정말로 경험의 힘과 세월의 지혜를 믿는 이유가 아닐까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