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보여준 첫 번째 변화의 순간
새로 옮긴 어린이집에서 1년여 정도의 생활한 시점에 원장님의 훈육으로 인한 문제가 발생했다. 아이의 팔뚝에 손으로 꽉 잡은 모양의 피멍이 들어 있던 것이다. 원장 선생님은 예설이가 어떤 아이를 집요하게 괴롭혀서 두 아이를 모두 상담실로 데리고 들어갔고 그러면 안 된다고 설명을 하는데 자꾸 도망가려고 해서 꽉 잡다보니 멍이 든것 같다며 사과를 했다. 하지만, 국공립이기도 하고, CCTV도 없는 곳에서 벌어진 일이었으며, 바로 사과를 한 것도 아니었다. 우리는 구청에 신고를 하기로 결정했다. 다행히 신고를 하기 이전에 원장 선생님은 퇴진을 결정하고 사과를 해왔기에 일단락 마무리를 짓게 되었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예설이와 엄마의 심리 상태에 영향이 있을 수 있으니, 심리상담센터를 예약을 해 놓을터이니 몇회 상담을 받아 보라고 어린이집에서
권유를 해주었다. 와이프는 몇 번 심리 상담을 받고 오더니, 진이 빠진다면서 가기 싫다고 하기에, 기회는 이 때다. 마침 그 때 심리와 감정에 대한 책들을 읽고 있었던 터라. 심리상담은 어떻게 진행되는 것인지 궁금해 하던 차였다. 와이프에게 안가고 싶다면 토요일에 내가 아이와 함께 가도 괜찮겠는지 확인해 달라고 요청을 했고,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나는 매주 토요일 신나는 마음으로 상담을 다녀왔었다.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항상 들었던 말이지만, 주양육자가 누구냐고 하면, 항상 아빠였다. 어떤 검사를 하더라도 주양육자를 가르키는 것은 아빠였다. 그랬기에 아이에 대하여 이야기 하기는 내가 한결 더 편했고, 아이들을 어떻게 양육해야 하는지에 대한 관심도는 와이프보다도 내가 큰 편이었다.
그렇게 상담을 받던 도중에 상담사에게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상담사 말로는 발달 장애 아이들을 많이 겪어 봤는데, 아마도 예설이는 한글을 떼지 못할것이고 현재 그림 수준이상으로는 발달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조금씩이나마 발달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최소한 한글만이라도 떼고 책을 읽을 수만 있다면, 그 다음은 어떻게든 가르쳐 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의 희망과 기대에 찬물을 끼얹는 이야기 였다.
어쩜 이렇게도 평온할 수가 없는 것인지, 조금의 마음의 여유라도 가질라 치면 무언가가 훅~하고 들어온다.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정말로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냥 운명이라고 받아들이고 말아야 하는 것일까? 너무 혼란스러웠다.
아무것도 모르고 해맑은 이 아이를 보고 있자면, 내 눈에서 눈물이 맺히고 있었다. 너무나도 밝게 웃고 있는 이 아이를 바라보고 있자면, 하늘이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한글도 못 떼고, 그림도 안 된다니 그러면 무엇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또 한 번 나의 멘탈을 흔드는 사건이 되어 버렸다. 그 때 마침 읽고 있던 책이 나폴레온 힐 저자의 <생각하라 그리고 부자가 되어라> 였다. 나폴레온 힐의 둘째 아들 이야기가 나온다. 어려서부터 듣지 못하는 아이였다. 뇌에서 듣는 기능에 대한 능력을 상실한 아이였다고 한다. 하지만 나폴레온 힐은 아이에게 할 수 있다는 마인드를 심어주게 되고, 아이는 성인이되어서 과학적으로는 증명될 수 없는 들을 수 없는 귀를 가지고 있었지만, 듣게 되는 기적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보청기 회사에 취직을 하고 높은 자리에까지 오르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
순간 나는 ‘이거다, 긍정확언’. 한번 해보자. 그 날부터 나는 아이에게 따라 말하게 했다.
“나는 잘해왔고 잘하고 있고, 잘할 수 있다.”
“나는 감정 조절을 잘할 수 있다.”
“나는 무슨 일이든 잘할 수 있다.”
“내가 하는 모든 일은 잘 될 것이다.”
매일 긍정확언을 외치게 하였고, 아이에게 매일 책을 읽어 주었다. 주말이면 첫째 아이와 예설이를 데리고 서점투어를 했다. 놀때 놀더라도 서점에서 놀리라 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주말은 무조건 서점을 다녀왔었다. 도서관은 예설이가 아직 얌전히 있지를 못 해서 데려갈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는 ㄱ, ㄴ, ㄷ, ㄹ 을 읽기 시작했다. 숫자도 1~50까지 읽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못할 것이라는 좌절적인 상태였는데, 조금의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역시 포기하지 않고 방법을 찾으면 보인다더니,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인가? 독서를 통해서 그 순간 나폴레온 힐의 이야기를 듣지 못 했다면, 과연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예설이의 삶은 어떻게 되었을까? 독서는 이렇게 나의 삶에 하나하나의 답을 찾아갈 수 있는 길잡이가 되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