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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Apr 19. 2024

목우씨의 산골일기(168)

제168화 : 때를 놓치면 만사휴의

     * 때를 놓치면 만사휴의 *



  일주일가량 남도 지역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집에 와 보니 큰 변화는 없어 보여 다행이다 싶었다. 허나 텃밭에 들러 눈 한번 휘두르자 모든 게 엉망이다. 푸새(잡초)도 높이 솟았는데다 남새(채소)들도 얼마나 웃자랐는지...
  그러다 문득 언덕에 심은 가죽나무 엉개나무(엄나무) 고사리에다, 옮겨 심은 제피나무에, 저 혼자 힘으로 자란 머구(머위) 잎사귀마저 보는 순간 아차 했다. 가기 전에 아직 어려 먹기엔 좀 잘다 싶어 갔다 와 적당히 크면 먹어야지 했는데 ‘적당히’가 아니었다. 커도 너무 컸다.
  가죽나무와 엉게나무 잎사귀는 어린 순이라야 먹는다. 조금만 더 자라도 먹을 수 없을 만큼 억세 지니까. 헌데 둘 다 먹지 못할 만큼 커졌다. 꼼꼼히 뒤진 뒤에야 겨우 몇 잎 건졌을까. 그마저도 억센 편이다.


(머위 잎사귀)



  고사리는 아예 먹지 못할 정도다. 고사리는 여러 요리에 들어가면 맛도 좋지만 꺾는 재미가 맛에 못지않다. 엄지와 검지로 살짝만 비틀면 ‘톡! 톡!’ 하며 부러지니까. 허나 늙으면(?) 먹지 못할 뿐만 아니라 꺾는 재미도 없다.
  제피(초피) 잎사귀도 왕창 망쳤다. 해마다 이맘때 제피 잎사귀 따서 나물로 무쳐 먹으면 겨우내 잃었던 입맛을 되찾았는데... 그래도 제피 잎사귀는 나은 편이다. 나물로 먹기엔 웃자랐지만 좀 더 크면 장아찌 담아 먹을 수 있으니까.
  그나마 머구 잎사귀는 아직 먹을 만하다. 봄이면 우리 집 식탁에 하루에 한 끼 꼭 올라오는 쌈 소재다. 머구쌈은 언제나 옳다. 쌉싸름한 맛이 딱 내게 맞는다. 군데군데 올라온 잎사귀가 우리 부부 먹기에 남아 아는 이들과 농갈라 묵는다.


(제피 잎사귀)



  지난겨울에 비와 눈이 적당히 와 작물이 자라기엔 최적의 환경이었다. 거기에 날씨마저 따뜻했으니 아무 근심 없이 자랐을 터. 아 참, 봄나물이란 이름 붙었다 하여 같은 시기의 봄에 다 똑같이 먹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쑥만 봐도 그렇다. 이른 봄에 얼굴 살짝 내민 쑥은 쑥국이라야 제맛이고, 봄이 적당히 무르익으면 쑥떡과 쑥털털이(달리 '쑥버무리')로 적당하다.


  그렇다. 다 때가 있다. 때를 놓치면 안 되는 이유다. 어디 봄나물만 그럴까. 봄꽃도 마찬가지다. 진달래 매화 벚꽃 산수유꽃 수선화도 그렇다. 길어야 보름, 어떤 꽃은 채 닷새쯤 될까. 그때를 놓치면 보지 못하거나 떨어진 꽃만 보게 된다.


(쑥털털이)



  이번 남도 여행 중 전남 고흥에 이르렀을 때 밭마다 양파를 수확하고 있었다. 다음날엔 폭우가 예고되었고. 비 맞은 양파를 수확하면 이내 썩는다. 허니 어떤 일이 있어도 빨리 거둬들여 창고에 보관해야 한다.
  나물 뜯고, 꽃이 피고, 밭작물 수확에 다 때가 있는 법이다. 그러다 놓치면? '만사휴의(萬事休矣 : 무슨 수를 쓰든 가망이 없는 절망과 체념의 상태)다. 봄나물은 먹지 못하고, 봄꽃은 보지 못하고, 봄에 수확한 밭작물은 팔지 못하고 썩은 채 밭에 둬다 갈아엎어야 한다.

  우리네 삶도 그렇지 않은가. 딱 그때 그 순간 놓치면 말짱 도루묵 아닌가. 열심히 준비해 놓고 시기 놓쳐 망한 적이 얼마나 많으랴.
  아는 이의 아들이 입시를 앞두고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에 입학 가능하단 말을 듣고 무척 기뻤단다. 그러나 수학능력시험 당일 몸살이 와 시험을 망쳤고 결국 원하는 대학에 못 들어가 재수를 했는가 보다.
  다음 해에도 성적은 그리 향상되지 못해 실패, 삼수로 이어진 해에도 실패. 결국 그 집 아들은 평범한(?) 대학으로 갔다고 한다.


(대입 수학능력시험)



  나라도 그렇지 않을까. 우리나라가 중진국에서 선진국 진입했다느니 G7 대신 G8을 만들면 우리가 그 자리 차지할 거라며 샴페인 터뜨린 적이 언제든가. 요즘 뉴스에서 국제정세를 보면 겁난다. 여기서도 "펑!" 저기서도 “펑! 펑!” 이짝저짝에서도 “퍼버버 펑!” 온통 난리벅구통이다.
  이러다 세계대전이 벌어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당장 이란과 이스라엘이 전면전을 치르면 원유 수급에 차질을 빚게 되고 경제에 막대한 타격이 온다고 경고한다. 선진국은커녕 중진국 자리에서 밀려나 개도국으로 다시 빠진다는 경제 기사도 가끔 보인다. 이런 시국에 국내 위정자들은?

  여야가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협치는 사라진 지 오래요 독선과 불통만이 존재할 뿐. 외길에 반대편에서 기차가 달려오면 한쪽에선 기다렸다가 가야 한다. 그에 맞서 이쪽도 속도를 내 달려간다면?




  봄에 때를 놓쳐 못 따먹은 나물은 다음 해에 다시 피니 그때 다시 따면 된다. 허나 한 번 기울어진 나라 경제는 ‘다음’이라는 기약이 없다. 오늘 밭과 언덕에 억세진 나물과 이제는 다 떨어진 벚꽃이 우리를 보면 얼마나 한심할까.


  *. 사진은 모두 구글 이미지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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