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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Apr 24. 2024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104)

제104화 : 이향아 시인의 '자족하기'

@. 오늘은 이향아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자족하기
                            이향아

  이만하면 되었습니다
  아름다운 날씨에 하늘빛을 즐기고
  바삐 뛰어다닐 두 다리도 성합니다
  저녁이면 돌아갈 집이 있고
  돌아가서 먹을 저녁밥도 있습니다
  기다릴 가족이 있고
  머리 숙여 간구할 소원도 있으며
  소원을 풀어 달란 속 깊은 눈물
  없는 것 없습니다, 나는 다 있습니다
  더러는 원망과 미움이다가
  뜨거운 용서와 아픈 후회와
  겨운 정에 흐느끼는 강물 같은 가슴,
  때때로 궁핍으로 날 단련하시고
  거기서 강건한 힘도 주시니
  아무 불평 없습니다, 다 압니다
  쓰러지는 움막에선 흙냄새를 사랑하고
  샨데리아 천정 아래 *현금을 켜게 하는
  아, 크신 은총이여
  나는 이만하면 되었습니다
  - [안부만 묻습니다](2013년)

  *. 현금(玄琴) : 검은빛 도는 거문고

  #. 이향아 시인(1938년생, 본명 ‘이영희’) : 충남 서천 출신으로 1963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 호남대 교수로 근무하다 퇴직한 뒤 82세인 2020년 [캔버스에 세우는 나라]란 시집을 펴냈고, 85세인 작년 3월에도 [오늘이 꿈꾸던 그날인가]란 수필집을 펴내는 등 아직도 왕성한 창작활동을 함.




  <함께 나누기>

  이 시는 읽으면 아시겠지만 신에게 간증하는 형태로 돼 있습니다. 종교 가진 이들뿐 아니라 무신론자라 해도 가끔 고백하고 싶을 때가 찾아옵니다. 오늘 시는 자족(自足)의 자세를 글감으로 합니다. 자족이란 '자기 분수에 만족함'인데, 언뜻 생각하면 쉬운 것 같은데 실천은 어렵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을 베고 누웠으니 대장부 살림살이 이만하면 족하지 아니한가!" 하며,  자족의 삶을 노래했습니다만 지금으로선 어림없는 소리가 됩니다. 바로 시도 때도 없이 쳐드는 욕심 때문에.

  오늘 시는 특별히 해설 붙이지 않더라도 쉬 읽힐 내용입니다.

  "아름다운 날씨에 하늘빛을 즐기고 / 바삐 뛰어다닐 두 다리도 성합니다"
  시인은 이걸 두고 '이만하면 되었다' 하고 선언합니다. 누가 봐도 아주 평범한 일인데, 우리들 대부분 누리는 일인데 이를 두고 '이만하면 되었다' 하다니. 이어지는 시행도 마찬가집니다. '저녁이면 돌아갈 집이 있고 돌아가서 먹을 저녁밥도 있습니다'라 하니...
  참 당황스럽습니다. 대부분 사람이 누리는 이런 사소함에 '이만하면 됐다' 하며 만족하다니. 적어도 그냥 흔히 보는 집이 아니라 으리으리한 집이거나, 그냥 '집밥'이 아니라 5성급 호텔 최고급 식사도 아닌데...

   '머리 숙여 간구할 소원도 있으며, 소원을 풀어 달라는 속 깊은 눈물 같은 것도 있으니 더 필요 없습니다.' 그렇지요, 요즘 유행하는 소확행에 딱 맞는 삶 아닙니까. 소소한 행복이 주는 즐거움을 아는데 굳이 더 필요 있을까요?

  "더러는 원망과 미움이다가 / 뜨거운 용서와 아픈 후회와 / 겨운 정에 흐느끼는 강물 같은 가슴"
  원망과 미움이 있어도, 아픈 후회가 있어도, 너무 슬퍼 흐느낄 때 있어도 나는 만족합니다. 왜냐면 나를 단련시킬 기회가 왔다 여기고, 오히려 강건한 마음을 기를 수 있다 믿으니까요. 그래서 나는 아무 불평 없습니다.
  문득 어디선가 읽은 '자족이란 모든 것을 소유하는 게 아니라, 소유한 모든 것에 감사하는 것이다'라고 한 글귀가 떠오릅니다. 우리들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그 욕심 때문에 자족을 못하고 부족함을 늘 느끼니까요.

  아홉을 가지고 있건만 겨우 하나 가진 이의 재물을 넘보고 빼앗으려고 덤빕니다. 그런 우리 어깨에 떨어지는 죽비가 오늘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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