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찬일 시인(1956년생) : 춘천 출신으로 1993년 [현대시사상]을 통해 등단 화려한 비유보다는 진실과 해학이 담긴 자신만의 시 세계를 펼쳐나가고 있다는 평을 받으며, 추계예술대 교수로 근무하다 퇴직.
(동명이인으로 ‘글 쓰는 요리사’란 별명이 붙은 유명 요리사가 있으니 헷갈리지 않으시기를)
<함께 나누기>
손주 주려고 변신 로봇 하나를 샀습니다. 트랜스포머라든가, 그와 비슷한 이름의 변신 로봇이었습니다. 손주에게 주기 전에 제가 먼저 알아야 변신 과정을 설명할 수 있겠다 싶어 이리 주물럭 저리 주물럭 하며 시간 보냈습니다.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그냥 놔두고 올 날만 기다렸습니다. 내일 온다는 얘길 듣고 마지막 점검 겸해 다시 변신을 시도했습니다. 산 그날 그렇게 잘 돌아가던 로봇의 목이 뻣뻣해지며 돌아가지 않자 힘을 주었습니다. 그래도 안 돌아가자 힘을 더 주었더니 그만 목이 부러졌습니다.
‘목’은 사람의 신체 가운데 목숨과 가장 관계 깊은 부위입니다. 목숨의 어원이 ‘목 + 숨’에서 왔다고 보는데, 목으로 숨을 내쉰다는 뜻이랍니다. 그러니까 다른 부위는 두고서라도 목만은 나의 의지로 움직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목숨을 이어나갈 수 없으니까요.
시로 들어갑니다.
“누가 내 목을 돌렸습니다 /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 멈추지 않았습니다”
나의 목숨을 좌지우지할 목을 누군가 마음대로 돌리고 있습니다. 마치 변신 로봇의 목을 돌리듯이. 나의 목은 의지를 잃고 목을 마음껏 돌리는 이의 손에 맡긴 상태입니다. 어떻게 할 도리가 없습니다.
“왼쪽으로 돌릴 때 오른쪽 힘을 주다가 / 오른쪽으로 돌릴 때 왼쪽으로 힘을 주다가 / 그만 목이 헐렁해져 버렸습니다”
다시 변신 로봇으로 돌아갑니다. 부러뜨린 로봇을 고칠 재간이 없고 새로 하나 사주지 하는 생각에 이왕 이리된 바에야 완전히 분해했습니다. 아 부속품이 이리도 얽혀 있을 줄이야. 그런 가운데서도 목 부속이 가장 중요한 듯 거기를 감싸고 있는 부품이 여럿이었습니다.
힘을 줘 돌리다 보니 목과 팔을 연결하는 부속이 휘어져 헐렁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목은 쓸모를 잃었습니다. 원래는 나의 목이었으나 이제 내 목이 아닙니다. 부러진 목은 더 이상 구제할 길이 없습니다. 고칠 방법이 없습니다.
“머리와 몸이 따로 논다고 하였습니다”
내 목이 남의 손에 놀면 머리로선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마치 마음 따로 몸 따로이듯이. 내 의지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휘둘리는 나, 그런 나를 마음껏 조종하는 너, 그렇게 세상은 돌아가고 있습니다.
“다음 세상에서는 힘을 쓰지 않겠습니다 / 왼쪽으로 돌리면 왼쪽으로 돌려주고 / 오른쪽으로 돌리면 오른쪽으로 돌리다가 / 목을 떨구겠습니다”
여기까지 오면 시인의 시작(詩作) 의도가 드러납니다. 여태 살아오면서 현실에 저항해 봤지만 목만 부러지는 상황만 초래했습니다. 다음 세상에 태어나면 그냥 로봇의 부품처럼 아무 소리 않고 아무 행동 않고 그저 시키는 대로 살겠습니다.
뜨끔합니다. 세상에는 그냥 물 흐르는 대로 살아가려는 사람이 있고, 또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왜 화자는 처음부터 순순히 목을 내밀지 않고 힘을 반대편으로 주며 저항했을까요? 만족한 돼지가 되기보다는 불만족한 소크라테스가 되고 싶어서서?
“뭐 세상 그리 어렵게 살아? 대충 좋은 게 좋은 거야 하며 살지.” 하는 사람들 저편에는 “안 돼! 좋은 건 좋은 것이고 나쁜 건 나쁜 것이라고 말해야 해!” 하고 외치는 사람들이 적지만 존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