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이상한 꿈을 꾸었습니다. 깨어난 뒤에도 한참 '이게 뭐지?' 할 정도로 이상한. 그러니까 꿈속 이야기가 아니라 한 편의 「전원일기」형 드라마라 할까. 아내에게 꿈 얘길 했더니 믿지 않더군요, 다른 분들은 믿으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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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마을에 한 여자가 찾아옵니다. 그녀는 마흔 갓 지난 돌싱녀로 돈은 좀 있는데 도시인의 이기적인 생활에 환멸을 느껴 그곳에 살려고. 그녀는 마을 들어가는 입구 땅을 구입한 뒤 카페를 차리려 했습니다. 그곳은 길에선 보이지 않고 대나무 숲을 지나 들어와야 보이는 그런 땅입니다.
사내는 그녀가 원하는 카페를 짓는 목수입니다. 쉰 넘은 노총각이지만 젊었을 때 주위 사람들의 부러움을 살 정도로 진한 사랑도 했습니다. 허나 배신감으로 사람들 속을 떠나 산골을 택해 숲에 살며 작은 주택을 지어주거나 리모델링하는 소소한 일을 하며 그냥저냥 살았습니다.
사내의 도움으로 그녀의 카페는 확 틔진 않아도 정감있게 자리해 손님도 하나둘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한 번 들른 사람은 꼭 다시 찾을 정도로. 그녀는 마을 사람들에게도 친절하게 대했으며, 경로당엔 카페에서 남는 빵과 커피를 배달했습니다. 물론 무료로.
마을 사람들의 칭송이 잦아질수록 카페는 잘 되어갔고, 사내도 다른 곳에 일 나갔다 돌아올 땐 꼭 들르는 게 습관. 일 나가지 않을 때도 하루 종일 죽치고 앉아 커피 마시며 노트북을 두드리며 시간 보냈습니다. 마치 공부하는 대학생처럼.
마을 이장도 여인의 카페가 잘되기 바란다면서 면에서 열리는 ‘이장 협의회’ 등에 나가면 카페 광고도 수시로 해 주었습니다. 사람들 소문을 타고 카페는 점점 잘 되어갔습니다. 비록 궁벽한 곳에 자리 잡았지만 숲 지나 들어서기만 하면 넓게 펼쳐진 정원의 연못과 물레방아, 그리고 늘 화려히 변신하는 꽃밭.
밖에서는 보이지 않으나 들어서면 별천지. 계절 바뀔 때마다 나무에 피는 꽃과 주변의 들꽃이 어우러져 손님을 반겨주었고, 심지어 겨울에도 피라칸사스와 꽃배추가 곱게 피도록 조성하였으니 겨울에 찾아가도 삭막하거나 황량한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이 카페를 이루는 조경 역시 사내가 해주었습니다. 아 사내 얘기를 빠뜨렸군요. 사내는 원래 화가가 되려 미대에 들어갔습니다. 그림 그리기가 자신의 꿈인 동시에 즐거움이었으니까 그렇게 살고자 했습니다. 첼로를 전공하던 연인도 그런 그를 잘 이해해 주었고.
둘의 사랑은 불붙었습니다. 잠시도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헌데 시간이 가면 사랑도 식어가는가, 그녀에게 소개가 들어왔습니다. 상대는 대도시에 잘나가는 병원장의 아들, 마침 그도 외과 전문의 과정을 밟고 있는지라 그 병원 물려받기는 따 놓은 당상.
그래 사랑도 돈 앞에 흐려지던가요, 이리저리 저울질 하던 여친은 결국 버스를 바꿔 탔고. 사내는 충격을 받았고. 그리하여 산골로 들어왔고... 산골에서 먹고살 방도를 찾으려 대학 다닐 때부터 짬짬이 익힌 목공일 덕에 목수로 생계유지하였고. 미술 감각을 살려 조경 일도 하였으니...
사내에게 여인은 모두 돈을 따라 움직이는 동물이라 그가 카페에 들름도 딴 목적이 있지 않았습니다. 물론 주인 여자에게도. 건물을 지어줬고, 조경을 담당했고, 돈벌이가 되었고, 거기만이 인터넷이 터져 묵혀둔 노트북을 쓸 수 있어 찾았을 뿐.
여자 역시 멋지게 지어준 보답으로 무료로 커피와 간단한 빵은 언제나 먹을 수 있게 해주었을 뿐 사내에게 특별한 관심은 없었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면서 카페는 점점 사람과 사람 입으로 전해졌고, 거기에 SNS 소개도 더해져 나날이 손님은 늘어갔습니다.
그러던 어느날입니다. 도시에 나가 살던 이장의 아들이 고향을 찾았다가 그 카페에 들렀습니다. 너도나도 주절대는 사람들의 입방아로 하여. 아들은 특별한 직업도 없이 부모 등골만 빼먹는 전형적인 부랑아. 하지만 이장 부부에게는 유일한 자식이었으니.
그날도 아버지에게 논 열 마지기 팔아 돈 해 달라는 부탁을 하러 왔던 참. 시골 소문이 뭐 대수일까 하며 무심코 들른 카페. 여인에게 첫눈에 뿅 간 이장 아들은 다시 도시로 돌아가려는 마음 대신 거기를 뻔질나게 드나들었고. 들를 때마다 슬쩍슬쩍 희롱을 던졌습니다.
그녀는 놈이 무척 싫었지만 내색은 할 수 없었고. 특히 마을 여론을 주도하는 이장의 아들인지라 마냥 참아야만 했습니다. 사내는 날마다 카페 들렀기에 이장 아들이 하는 수작을 보았습니다. 참 볼썽사나웠지만 자기가 끼어들 계제 아니라 못 본 체할 뿐.
며칠이 지난 어느날 밤에 비가 내렸습니다. 비 내리면 산골 도로는 어둠 때문에 차 몰기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 손님도 일찍 떨어지지요. 저녁 시간이 되자 여느 날처럼 사내도 노트북을 들고 일어섰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문이 열리며 한 사람이 들어섰습니다. 이장 아들입니다.
한눈에 술 많이 되었다고 광고하는 듯 불콰한 얼굴입니다. 사내는 일어서려다 도로 주저앉았습니다. 아무래도 지금 가서는 안 되겠다는 직감에서. 그런 사내가 몹시도 못마땅한지 잠시 째려보던 아들 녀석이 고개를 그녀에게로 돌리더니 말을 건넵니다.
“어이 김사장, 여기 와 좀 앉아보소.”
주인 여자는 뭔 소린가 하여 그쪽을 보다가 못 들은 척,
“이제 문 닫을 겁니다, 나가주세요.”
“어허이, 머라카노? 오라면 오지...”
“영업 끝났습니다. 곧 문 닫습니다.”
“그래 문 닫아야지. 문 꼭꼭 닫아야 김마담이랑 단둘이 얘기 나누지.”
'김사장'에서 '김마담'으로 호칭이 바뀐 걸 알고 그녀 인상이 찌푸려지는 걸 보며 사내가 일어섰습니다.
“저랑 같이 나가시죠?” 하며 이장 아들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이건 또 뭐야? 니 누꼬?”
“그쪽에서 반말할 만큼 나이 어리지 않습니다.”
“머라꼬? 니는 눈치도 없나? 분위기 보면 얼른 사라져 줘야 할 낀데...”
“약주가 좀 과하신 것 같은데 자 일어나시죠.”
다시 손을 내밀자 녀석이,
"머라꼬? 니가 내 술 묵는데 보태준 기 있나?"
"그런 말하는 자체가 술 취했다는 뜻이지요."
“머라카노, 이 새끼가!”
하며 사내에게 주먹을 날렸습니다.
아무리 운동신경 없어도 술 취한 작자의 주먹쯤 못 피할쏜가. 살짝 피하며 팔을 도로 잡아당기자 놈이 자세를 잃고 앞으로 확 기울어지더니 그만 넘어지면서 머리가 탁자 한쪽 모서리에 받혔습니다. 순간 내지르는 그녀의 비명에 깜짝 놀라 잠을 깼습니다.
*. 눈을 떠보니 새벽 3시쯤, 취침등 가는 불빛 사이로 뭔가 떨어져 있어 가만 보니, 어젯밤 굴 까먹고 침대 협탁에 올려놓은 놔둔 접시입니다.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내용에 취해 잠시 있다가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 상황에서도 아직 잔영처럼 남은 스토리를 기록하려고.
희한한 꿈입니다. 눈치 채셨겠지만 글 속의 '사내'는 꿈 속의 '나'입니다. 꿈은 평소 상상하던 일이 잠재의식 되어 드러난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내가 그런 욕망을... 이내 컴퓨터를 켰습니다. 그때 꿈속 일화를 정리한 게 앞에 쓴 글입니다. 좀 더 길게 갔더라면 단편소설 쓸 분량을 확보했을 텐데...
아니 어쩌면 다행일지도. 좀 더 길게 이어졌더라면 앞선 내용도 기억하지 못하고 사라졌을지 모르니까. 중간에 끊어진 아쉬움과 그나마 남은 에피소드 건짐을 다행히 여겨야 할지. 두 감정이 교차하는 묘한 시간 가졌습니다.
*. 모든 사진은 [trip.com] ‘여름꽃과 싱그러운 초록정원이 예쁜카페’에서 퍼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