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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Dec 05. 2024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232)

제231편 : 홍윤숙 시인의 '장식론 1'

@. 오늘은 홍윤숙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장식론 1
                     홍윤숙

  여자가
  장식을 하나씩
  달아가는 것은
  젊음을 하나씩
  잃어가는 때문이다

  씻은 무 같다든가
  뛰는 생선 같다든가
  (진부한 말이지만)
  그렇게 젊은 날은
  젊음 하나만도
  빛나는 장식이 아니었겠는가

  때로 거리를 걷다 보면
  쇼윈도에 비치는
  내 초라한 모습에
  사뭇 놀란다

  어디에
  그 빛나는 장식들을
  잃고 왔을까
  이 피에로 같은 생활의 의상들은
  무엇일까

  안개같은 피곤으로
  문을 연다
  피하듯 숨어 보는
  거리의 꽃집

  젊음은 거기에도
  만발하여 있고
  꽃은 그대로가
  눈부신 장식이었다

  꽃을 더듬는
  내 흰 손이
  물기 없이 마른
  한 장의 낙엽처럼 쓸쓸해져

  돌아와
  몰래
  진보라 고운
  자수정 반지 하나 끼워
  달래어 본다
  - [장식론](1968년)

  #. 홍윤숙 시인(1925~2015) : 황해도 연백 출신으로 1947년 [문예신보]를 통해 등단.
  좋은 시를 많이 써 여성 시인들의 대모로 추앙되었으며, 잔잔하면서도 깊이 있는 시를 쓴다는 평을 들음.


  <함께 나누기>

  이 시를 대학 다닐 때 만났으니 꽤 오래된 작품입니다. 20년쯤 해온 시 배달 초기의 작품이기도 합니다.
  시인이 불혹(40세)에 쓴 작품으로 알려졌는데 만약 아흔 살까지 살 거라고 생각했으면 내용이 조금 달라졌을 듯.

  그러니까 지금부터 40년 전에 쓴 글이라는 점을 먼저 밝힙니다. 왜 이런 서두를 꺼내느냐 하면 지금의 젊음과 당시의 젊음이 다르다는 점.
  즉 지금 마흔 된 여인더러 젊음을 잃어간다 하면 "무슨 그런 소릴!" 하며 버럭 화를 낼 지 모르겠습니다. 화 내진 않더라도 기분 나빠할 건 분명.

  그럼 이 시가 요즘 세대엔 의미 없는 시인가에 대한 의문을 가질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세대와 나이 관념이 변했을 뿐 젊음을 잃어간다고 느끼는 여인들에게 공감을 줄 것이므로.
  아니 남자도 마찬가지지요. 제가 시 배달을 오래 하다 보니 가끔 강의 요청을 받는데 사실 그럴 때마다 갈등합니다. 이 망가진 얼굴을 어디 내민단 말인가 하며.

  어제 이 시를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젊음은 꼭 생물학적 나이를 가리킴이 아니라 심리적 나이라고 생각하면 다르게 읽힌다고.
  그러니까 비록 나이는 많아도 젊게 사는 분이 있고, 나이는 어려도 염세적으로 산다면 젊음의 적용이 달라짐을.

  오늘 시는 해설 없이도 한 번 읽으면 쏙 들어옵니다. 그래도 꼭 두 번은 읽어라고 부탁합니다. 한 번 읽을 때와 두 번 읽을 때는 맛이 다르므로.

  "여자가 / 장식을 하나씩 / 달아가는 것은 / 젊음을 하나씩 / 잃어가는 때문이다"

  얼마 전 뉴스를 도배했던 디올백, 아니면 루이비통백이나 샤넬백. 이를 걸치면 사람보다 백에 더 눈이 가 나이 감추는 효과를 준다는 우스개가 생각납니다.
  젊어 팽팽할 때야 에코백 하나 걸쳐도 멋져 보이는데 나이 들면 그걸 덮을 장식이 필요하단 뜻이겠지요.

  "씻은 무 같다든가 / 뛰는 생선 같다든가 / 그렇게 젊은 날은 / 젊음 하나만도 / 빛나는 장식이 아니었겠는가"

  젊다는 것, 그것보다 강한 무기는 없습니다. 씻은 무처럼 매끄럽게 잘 빠졌다든지 팔딱팔딱 뛰는 생선 같다는 표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비싼 고급화장품 바르지 않은 생얼이라도 젊은 얼굴은 빛이 납니다. 반면 아무리 외모를 리모델링 해도 늙으면 젊음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때로 거리를 걷다 보면 / 쇼윈도에 비치는 / 내 초라한 모습에 / 사뭇 놀란다"

  거울을 거의 보지 않고 지내며 사진으로만 내 얼굴 확인하며 살다가 코로나 펜데믹 시절 우연히 거울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전혀 낯선 늙은이가 있었으니까요.
  그 뒤 거울을 안 보려 하는데 세상에 왜 그리 거울이 많던가요. 길을 걷다 만나는 쇼윈도나 장식장에도, 심지어 휴대폰에도, 집에만 해도 화장실, 신발장, 옷장에도.
 
  그러는 사이 우리는 나이듦에 따라 젊음의 빛나는 장식들을 잃고 살게 되었습니다. 다만 겉만 치장하는 피에로 같은 의상만 걸칠 뿐.
  안개같은 피곤한 눈으로 길을 걷다 온갖 화려한 꽃이 가득한 꽃집을 보고 들어가지 못하고 숨어서 그 화려함을 훔쳐 봅니다. 내가 잃어버린 젊음이 거기 만발해 있기에.

  "돌아와 / 몰래 / 진보라 고운 / 자수정 반지 하나 끼워 / 달래어 본다"
  
  이 시구 읽으며 공감하실 여인 많을 겁니다. 순간 먹먹함에 잠길 터. 참 뭐라 덧붙일 말 없군요, 그 애잔함에.
  하기야 조화도 생화 못지않게 아름답습니다. 허나 거기엔 꿀벌도 나비도 날아와 앉지 않습니다. 그냥 이쁘게 보일 뿐.
  
  이제 시를 다시 읽어봅니다. 늙음에 필요한 장식은 겉치레가 아니라 젊게 행동하려는 마음이라고.
  비록 생물학적 젊음이야 잃었지만 심리적 젊음을 잃지 않는다면 아직도 나를 빛나게 만들 장식은 얼마든지 있다고.


  *. 첫 사진은 에코백을 들어도 빛나는 젊음이요, 둘째는 나이 들어도 아름다운 소설가 박경리 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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