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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Dec 09. 2024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233)

제233편 : 곽문연 시인의 '왼손과 오른손의 거리'

@. 오늘은 곽문연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왼손과 오른손의 거리
                                         곽문연

  오른손이 한 일 왼손이 모르게 하라
  새해 새아침 다짐을 했다

  전철에서
  껌 한 통을 내미는 노인의 손을 외면했다

  해 저무는 거리에서
  구세군의 종소리와 자선냄비를 비껴갔다

  우편함에 배달된
  적십자회비, 유니세프 편지는
  뜯지 않고 휴지통에 던졌다

  식당에서는 구두끈을 고쳐 매고
  계산대를 비켜서 화장실에 들어갔다

  엘리베이터나 전철에서
  휠체어보다 앞서 엉덩이를 들이밀었다

  교회에서
  천 원짜리 몇 장 꼬깃꼬깃 손에 쥐고
  옆 사람 눈치를 살폈다

  오른손이 하는 일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경구절을 달달 외우며
  주일예배도 빠지지 않았다

  오늘도 하루를 오독(誤讀)하며 보냈다
  왼손과 오른손의 거리가 너무 멀다
  - [단단한 침묵](2013년)

  #. 곽문연 시인 : 충청북도 영동군 출신으로 2003년 [문학마을]을 통해 등단.
  예순이 넘어 등단했고,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2019년 <시인들이 뽑는 시인상>을 받을 만큼 왕성하게 시를 씀
  (곽문영이란 비슷한 이름의 젊은 시인도 있으니 혼동 마시길)


  <함께 나누기>

  이 시를 읽으면서 올 새해 첫날 뭘 다짐했는가 한 번 떠올려보았습니다. 그런데, 아 그런데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분명히 뭔가 다짐했는데 떠오르지 않는단 말은 그 다짐을 잊어버렸다는 말이겠지요.
  다짐을 아예 잊어버린 사람과 다짐을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한 사람 가운데 누가 더 못난이일까요?  
 
  별도의 해석이 필요 없을 정도로 쉽게 읽혀지는 시입니다만 이 시를 읽으면서 가슴이 뜨끔 하시는 분들이 꽤 되실 겁니다.
  저도 그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도움 베풀어야 할 곳을 보면 외면하고 그냥 지나친 적이 많았기 때문에. 그러면서 쇼펜하우어 핑계를 댔습니다.

  쇼펜하우어가 이런 말을 했다지요.
  “거지에게 적선을 하는 것은 그 거지 상태를 연장해 줄 뿐이다.”
  그러니까 누군가 계속 적선하는 한 거지는 절대로 그 노릇을 그만두지 않는다고. 도움 베풀지 않는 핑계치고 참 치사하단 말을 들을 게 뻔합니다.

  또 변변찮은 도움 한 번 베풀고선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가 아닌 오른손만 조금 도왔건만 왼손까지 다 한 양 자랑합니다.
  ‘쓰고 남은 걸로 도와주기보다 너의 모자라는 재화를 쪼개가면서 도움 베푸는 게 진정한 도움이다.’는 말은 그냥 귓가로 스쳐갈 뿐.
 
  뉴스를 보니 11월 26일 시작된 구세군 자선냄비가 그저께(12월 7일)까지 전국 곳곳에 시종식을 울리고 길거리에 등장했습니다.
  그렇지만 "구세군의 종소리와 자선냄비를 비껴갔다"는 시구 그대로 저는 행동할 것 같습니다.

  텔레비전을 켜면 '국경없는의사회' '유니세프' '월드비전' '굿네이버스' 등 도움을 바라는 영상이 떠도,
  '적십자회비, 유니세프 편지는 뜯지 않고 휴지통에 던지듯이' 아마도 못 본 체 채널을 돌리고 말 듯...

  너무 자주 보아서 그런지 이젠 아주 덤덤합니다. 제 아니라도 누군가 도와주겠지 하며 다른 이들에게 미룹니다.
  허면서 뻔뻔하게 이리 생각합니다. 내가 세금 꼬박꼬박 내니 그 돈으로 나라에서 다 알아서 잘 하겠지 하며.
 
  “오늘도 하루를 오독(誤讀)하며 보냈다”

  오독(誤讀)은 '잘못 읽었다', 또는 '뜻을 잘못 헤아렸다'는 낱말입니다. 그럼 화자는 뭘 오독했을까요?
  성경에는 분명히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 모르게 하라'고 돼 있건만, 그리 하지 않았거나 아예 하지 않았으니 오독한 셈이지요.

  '성경구절을 달달 외우며 주일예배 빠지지 않았다' 해도 실제 필요한 행동을 하지 않았으니,
  즉 ‘왼손과 오른손의 거리’가 그대로 드러나 버렸으니 오독(誤讀) 중의 오독인 셈이지요.

  이제 시를 대한 지 꽤 되었으니 글 속 내용과 시인을 연결시켜 해석하는 분은 안 계시겠지요. 시인은 스스로 흠집 많은 삶을 살았다고 고백합니다.
  그걸 읽으면서 ‘아, 이 시인은 자선에 굉장히 인색하구나!’라고 생각하는 분 있을까요?
  진실한 고백처럼 보이게 함으로써 우리 모두의 양심에 사그라져 가는 ‘배려의 불’을 지피려 함을.

  시인의 의도는 적중한 것 같습니다. 시를 읽고 조금이라도 가슴이 뜨끔하다면 시인의 의도는 성공했을 테니까요.

  *. 다음은 <국경없는의사회> 홍보 영상입니다.

https://youtu.be/QFYkebOd5y4?si=iQArrCd3EO8aqD9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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