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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Dec 16. 2024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237)

제237편 : 김륭 시인의 '브래지어 도난사건'

@. 오늘은 김륭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브래지어 도난사건
                                  김륭

  우리 할머니 브래지어가 없다
  첫째 둘째 셋째 ………, 마른 아귀처럼 매달린 자식들에게
  쉴 새 없이 빨린 젖무덤, 젖이 마르면 무덤만 남는다
  밥줄마저 바삭바삭 채마밭 햇볕줄기처럼 말라
  브래지어 찾으러 가신
  할머니, 먼저 가신 할아버지 만나 낮잠 한숨 때렸는지
  젖이 돌기 시작한 무덤 속으로
  눈 작은 벌레들 기어 들어갔다 햐- 날개 한 벌씩 걸치고 나온다
  훌러덩 머리 벗겨진 앞산은 염치도 좋아라
  꽃나무들 데리고 젖동냥 다녀오고
  게으른 뒷산도 질세라 지난겨울 막혔던 물줄기 콸콸
  오줌발로 세우는
  봄날
 
  A컵일까 C컵일까 죽은 듯 잠든 아내
  젖무덤 속이다, 쥐꼬리만 한 월급봉투 들고 쳐들어가는
  나보다 한 발 앞선 놈이 있다
  쿵- 사각침대 밑으로 굴러 떨어진
  세 살배기 아들놈
  밤새도록
  운다
  - [열린시학](2007년 겨울호)

  #. 김륭 시인(1961년생, 본명 ‘김영건’) : 진주 출신으로 2007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경남매일] 기자로 근무하다 글쓰기 위해 그만두고 지리산에 들어갔다가, 현재 김해에 살며 시와 동시를 꾸준히 발표함




  <함께 나누기>

  처음 읽으면 무슨 뜻인지 몰라 고개 갸우뚱하다가 두 번 읽으면 "아하!" 하게 되는 시입니다. 이 시는 두 개의 에피소드로 짜여 있습니다. 제1연 ‘할머니의 이야기’와 제2연 '아내의 이야기'로.

  먼저 제1연을 봅니다.


  할머니의 브래지어를 훔쳐간 녀석들은 다름 아닌 첫째, 둘째, 셋째, 즉 아귀 같은 세 자식들입니다. 달리 말하면 화자의 아버지, 숙부, 백부들입니다. 쉴 새 없이 젖을 빨아들이는 바람에 푹 꺼져버린 할머니의 젖가슴. 그러니 무덤만 남았습니다.

  “할머니, 먼저 가신 할아버지 만나 낮잠 한숨 때렸는지 / 젖이 돌기 시작한 무덤 속으로”

  어찌 보면 외설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쭈그러든 할머니의 젖가슴이 꿈에서나마 할아버지 만나 젖이 돌기 시작합니다. 동침(?)의 덕분이랄까요. ‘젖이 돌다’란 표현은 아기 낳은 후 젖멍울이 풀려 젖이 나오기 시작하다란 뜻에서 만들어진 말인데 여기서 쓰이니 절묘하지요.
  
  “게으른 뒷산도 질세라 지난겨울 막혔던 물줄기 콸콸 / 오줌발로 세우는 / 봄날”

  콸콸, 오줌발, 봄날... 모두 생동감을 이끌어내는 낱말입니다. 달리 말하면 부활의 시어입니다. 겨우내 죽어 있던 만물이 봄이 되자 되살아납니다. 이러면 할머니의 젖무덤도 무덤에서 소생할 수 있겠지요. 어쩌면 잃어버린 브래지어도 되찾을지 모르구요.

  제2연으로 가봅니다.

  “A컵일까 C컵일까 죽은 듯 잠든 아내”

  화자는 오늘 괜히 아내의 젖무덤에 마음이 땡깁니다. 비록 '쥐꼬리만 한 월급쟁이'지만 아내를 차지하고 싶은 마음은 다 같겠지요. 기회를 엿보는데 아뿔싸, 먼저 차지한 녀석이 있습니다. 세 살배기 아들놈입니다. 화자에 앞서 젖을 차지한 괘씸한 놈.
  다른 때는 한없이 귀여웠건만 오늘은 아닙니다. 그 벌로 꼬맹이가 사각침대 밑으로 굴러 떨어집니다. 그 장면이 고소하게 여겨졌을까요? 너무 귀여워 평소 사랑 독차지한 꼬맹이가 오늘따라 연적(戀敵)이 되었다는 내용에 슬그머니 미소가 나옵니다.
  
  문득 울엄마의 텅 빈 가슴이 떠오릅니다. 마치 유방암 환자가 가슴 다 잘라낸 것처럼 그냥 일(1)자 가슴이든 어머니. 열 자식이 빨아 들어 쪼그라든 것보다 다섯 자식 젖 못 먹여 잃은 아픔에 더 쪼그라들었을 가슴...

  *. 사진은 [한겨레신문(2006년 9월 20일)]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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