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있었네, 아주 작은 배가 있었네, 라고 노래하던 가수가, 작은 배로는 떠날 수 없네, 아주 멀리 떠날 수 없네, 라고 노래하던 가수가, 어젯밤 아주 멀리 떠나버렸네. 혼자 남아 울고 있는 작은 배만 남기고, 작은 배만 남기고, 아주 먼 곳으로 떠나버렸네. 이 시대의 애끓는 한숨 소리처럼 깊디깊은 여름밤, 홀연히 춤추는 먼지, 허무의 장엄 속으로 떠나버렸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매혹의 뮤지션이 되어 곧 그리운 멜로디로 환생할 작별의 오선지 속으로, 캄캄한 밤이 내뿜는 혼, 미지의 쓰라린 감미(甘味) 속으로 떠나버렸네. 아주 작은 일에도 눈물이 나 한밤중에도 혼자 깨어 있을, 더없이 애틋하고 애잔한 제비꽃, 작은 배만 남기고, 작은 배만 남기고…. - [갈수록 자연이 되어가는 여자](2022년)
*. 2017년 8월 28일 새벽에 이 세상을 떠난 가수 조동진을 추모하며.
#. 김상미 시인(1957년생) : 부산 출신으로 1990년 [작가세계]를 통해 등단. 현재 부산에 살면서 시 쓰며 연극도 하며, 시인 축구 모임 ‘글발’ 회원으로 안방마님을 자처하며 열심히 응원하러 다닌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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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모르고 지나쳤던 사람에 대한 진실을 다른 곳에서 들었을 때 뒤에 감추진 악마성에 놀라곤 하지요. 한 예로 재작년 배달한 문정희 시인의 「哭詩(곡시) - 탄실 김명순을 위한 진혼가」를 공부하지 않았더라면 ‘김명순’을 모르고 지나쳤을 겁니다. 그녀를 모르고 지나쳤다면 한 여성 천재 작가를 당대 유명 남자 문인들이 얼마나 심하게 짓밟았는가를 몰랐을 테고. 그녀를 짓밟는 일에 앞장선 근대소설의 개척자란 찬사를 듣던 김동인과 어린이날을 제정하여 존경받는 방정환의 악마성을 몰랐을 테고.
김명순을 몰랐더라면 아직도 그 두 사람은 좋은 사람으로 남았을 터. (사실 김동인은 친일 문인의 대표적 인물이라 좋아하지 않았으나 방정환은 아주 좋은 사람으로 여겼으니...)
발명왕 에디슨, 맥아더 장군의 나쁜 면도 알게 되었지요. 그렇다고 하여 잘 몰랐다가 알게 된 사람이 모두 나쁜 사람이란 건 아닙니다. 김광석의 노래를 모르고 지내다가 어느 날 그의 노래를 듣고 ‘아니 내가 왜 이 가수를 여태 몰랐지.’ 하며 한탄한 적도 있으니까요. 오늘 시도 조동진이란 가수를 몰랐는데 이 시인의 「작은 배」란 시를 통하여 가수도 알고 노래도 알게 되었습니다. 아직 몇 번 듣지 않아 팬이 되기엔 부족하지만 몇 번 더 들으면 푹 빠져들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그러니까 오늘 작품은 가수가 부른 노래와 그의 죽음을 연결하여 쓴 추모시입니다. 먼저 ‘작은 배’란 노랫말을 한 번 볼까요.
“배가 있었네 / 작은 배가 있었네 / 아주 작은 배가 있었네 배가 있었네 / 작은 배가 있었네 / 아주 작은 배가 있었네 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 / 라라라라라라라라라 작은 배로는 / 떠날 수 없네 / 멀리 떠날 수 없네 / 아주 멀리 떠날 수 없네”
시인도 그렇게 노래합니다. “배가 있었네, 아주 작은 배가 있었네, 라고 노래하던 가수가 / 작은 배로는 떠날 수 없네, 아주 멀리 떠날 수 없네, 라고 노래하던 가수가 / 어젯밤 아주 멀리 떠나버렸네” 하고.
밥 딜런이란 미국 팝가수가 2016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뒤 시와 노랫말을 달리 보지 않게 되었습니다. 좋은 노랫말(가사)은 시나 마찬가지란 말이지요.
힘들이지 않고 편하게 쓴 시 같지만 추모의 시로서 아주 마음에 쏙 듭니다. 조동진이란 가수도 알게 되고 그의 죽음도 알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이 시대의 애끓는 한숨 소리처럼 깊디깊은 여름밤, 홀연히 춤추는 먼지, 허무의 장엄 속으로 떠나버렸네”한 시행에선 절로 가수를 떠올리게 되고.
그렇게 모르고 지나쳤던 가수 조동진은 제게 다가왔습니다.
한 편 더 배달합니다.
- 미스터리 -
모든 꽃은 피어날 땐 신을 닮고 지려할 땐 인간을 닮는다.
그 때문에 꽃이 필 땐 황홀하고 꽃이 질 땐 눈물이 난다 - [시와 사람](2009년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