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5편 : 이화주 시인의 '가을날에는'
@. 오늘은 이화주 시인의 동시를 배달합니다.
가을날에는
이화주
단풍잎 줍던
중국집 주인아줌마
방긋 웃으며 내게 말했다.
이렇게 단풍 고운 가을날에는
유리창에
아주 커다랗게
써 붙일까?
우동 한 그릇은
단풍잎 두 장
탕수육 한 접시는
은행잎 다섯 장
아이들이 좋아하는 *애기 자장은
감나무 잎 한 장
- [해를 안고 오나 봐](2017년)
*. 애기자장 : 어린이들 입에 맞게 만든 자장면(자장면은 짜장면과 함께 복수표준어)
#. 이화주 시인(1948년생) : 경기도 가평 출신으로, 1982년 [강원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강원도 오지만 돌며 초등교사로 근무하다 전교생 19명인 횡성군 ‘유현초등학교’를 끝으로 퇴직
<함께 나누기>
중학교 1학년 국어교과서에 미국 작가 폴 빌라드의 [이해의 선물]이란 소설이 나옵니다. 잠깐 줄거리를 소개하면,
“주인공인 ‘나’는 여섯 살 즈음 위그든 씨가 운영하는 사탕가게에 들른다. 그러나 ‘나’는 아직 어려 돈이란 걸 알 나이가 아니라서 무엇이든 주기만 하면 사탕을 살 수 있는 걸로 알고 어느 날 사탕을 한 움큼 고르고는 버찌씨 몇 개를 돈 대신 내민다.
그걸 본 주인 위그든 씨는 한참 망설이다가, “돈이 좀 남는 것 같아. 거슬러줘야겠는데…” 하며 버찌씨를 받고 거스름돈을 준다. 사탕가게 주인은 꼬마에게 야단쳐 집으로 돌려보낼 수 있었지만 어린아이의 마음을 보듬어주려 한 것이다."
이 소설 얘기를 먼저 언급한 까닭을 이해하셨겠지요. 우리가 돈이라는 그 명사에 대체할 수 있는 낱말이 있음을. 어쩌면 마음이 맑은 몇 사람에게만 통용되는 말인지 몰라도. 또 어른에겐 불가능할지 모르나 아이들에게는 가능할지도...
저는 시를 쓰려고 하는 사람에게 동시를 읽어보라고 합니다. 소설을 쓰려는 사람에겐 동화를. 어린이의 마음처럼 순수함을 가질 때 좋은 시가 우러나온다고 여기기에. 물론 나이 많아도 심성이 맑은 사람 꽤 됩니다. 시 속에 나오는 중국집 주인아주머니처럼.
동시는 읽으면 바로 들어오지요. 이 작품 역시 그렇습니다.
단풍잎 줍던 중국집 주인아주머니가 방긋 웃으며 화자에게 말합니다. '이렇게 단풍 고운 가을날엔 유리창에 아래처럼 아주 커다랗게 써 붙일까?' 하고.
"우동 한 그릇은 / 단풍잎 두 장 / 탕수육 한 접시는 / 은행잎 다섯 장"
남편이 들으면 까무러칠 말입니다. 당장 "우린 뭐 먹고살라고!" 하는 호통이 터져 나올 듯. 날마다 이러진 않아도 한 달에 한 번, 일 년에 한 번이라도 이런 안내문이 붙으면 얼마나 사람 사는 맛이 날까요
"아이들이 좋아하는 애기 자장은 / 감나무 잎 한 장"
요즘은 아이들 음식 선호도 으뜸이 짜장면이 아닐지 몰라도 이십여 년 전까진 오랫동안 다른 음식의 추종을 불허했습니다. 그러기에 중국집 주인아주머니는 짜장면을 먹고 싶어 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압니다. 고소한 자장냄새에 코를 발름대지만 함부로 사 먹을 수 없는 아이들의 가벼운 주머니 사정도 압니다.
걸어가다 중국집(다른 음식점에도) 입구에 이런 말 붙으면 참 좋겠습니다
"길가 쓰레기 주워오는 어린이에겐 짜장면 공짜로 줍니다"
그러면 저는 그 고마움에 보답하려 짜장면 한 그릇 시킨 뒤 신사임당 한 장 두고 나올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