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매2는 요즘도 가끔 꺼내보는 사진이 한 장 있다. 일본 '내 집(엄밀히 말하면 레오팔레스 월세집)'에 입성한 다음 날 아침 찍은 커피잔 사진이다. 커튼 틈으로 햇살이 들어오고, 좁은 방 안에 인스턴트커피 향이 진하게 감돌던 순간 혼자 되뇌었다. "아, 진짜 나 혼자구나. 오롯이." 지난 글에서도 말했지만, 태어나서 독립한 적 한 번 없고 가족과의 거리두기가 필요했던 나에겐 가슴 벅찬 순간이었다. 혼자 사는 게 처음이었고, 그래서 좋았다.
일본 집 입성 후 첫날밤을 보내고 맞이한 아침. '아, 진짜 나 혼자다'라는 생각에 그 행복한 순간을 사진으로 남겼다.
이렇게 기분 좋게 시작된 일본 살이. 어느 정도 일본의 문화와 사람들의 기질(?)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나의 '혼자 살기' 도시로 이곳을 선택했는데 역시 내가 알던 일본은 진짜 일본의 극히 일부분이었다. 물론 1년 살고 알게 된 일본 역시 진짜 일본의 일부분이겠지만...
알던 대로였다-지하철 매너(별 다섯 개 드립니다)
'내가 알던 일본' 그대로의 모습은 단연 지하철 매너였다. 일사불란한, 마치 공장 컨베이어 벨트를 연상케 하는 정확한 줄 서기는 '역시'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였고, 지하철 탑승 전 백팩을 멘 사람들이 하나같이 가방을 가슴 쪽으로 바꿔 매고, 비 오는 날 역사에 들어서면서부터 우산을 접어 다른 이에게 물기가 묻지 않도록 배려하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자매1은 지하철 역에서 지나가는 사람과 어깨를 부딪쳤는데 상대방이 여러 번 '죄송하다'는 인사를 하는 게 의외였다고. 지하철 역이나 사람 많은 데서의 '어깨빵'은 사실 사과고 뭐고 없는'자연스러운 게' 되어버린 지 오래였기 때문이다.
일본 지하철을 타면 백팩을 맨 사람들이 대부분 이렇게 가방을 자신의 몸 앞쪽으로 들고 있다. 사진은 서일본철도주식회사가 2016년 만든 영상 유튜브 캡쳐.
캐바캐지만... 쓰레기 분리수거의 충격
그렇다고 모든 시민의식이 '역시 일본'이었던 건 아니다. 자매1은 일본 집 입주 후 첫 주말을 잊지 못한다. 맨션 1층의 분리수거 공간에 쓰레기를 버리러 간 날이다. '분리수거를 잘못했는데, 쓰레기 안에 한글이 있었대. 그래서 누가 그 쓰레기를 들고 한국인 집에 찾아와선 니거냐고 물었다는 거야.' 이런 얘기, 사실 일본 가는 사람들이 종종 듣는다. 한국과 쓰레기 버리는 요일, 방식이 조금 다르니 주의하라는 건데... 자매1도 이런 얘기를 듣고 엄청 긴장을 했나 보다. 아무튼 정성 들여(?) 분리수거를 한 뒤 1층에 내려간 자매1은 문을 열자마자 '전쟁터'를 마주했다. 폭격 맞은 듯 사방에 던져진 쓰레기, 밖으로 튀어나온 기저귀 등 그야말로 엉망진차 분리수거 현장이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평일과 달리 관리인이 출근하지 않는 날, 쓰레기 분리수거장은 그냥 쓰레기장이 되어 있었다고. 그렇다. 모든 면에서 시민 의식이 빛나는 건 아닌 것으로.
일본에 가서 전입 신고를 하면 구청에서 해당 지역 안내 책자와 함께 쓰레기 배출 방법이 적힌 안내문을 나눠준다. 쓰레기 종류별로 배출하는 요일이 다르다.
"알고 싶다 너의 속마음" 혼네와 다테마에
일본 하면 자주 언급되는 단어로 '혼네(本音)'와 '다테마에(建前)'를 꼽을 수 있다. 혼네는 속마음, 즉 진짜 자신의 의중을 말하고, 다테마에는 사회적 규범이나 상대에 대한 배려 등을 고려해 겉으로 표현하는 의견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데, 흔히들 '일본인은 혼네와 다테마에가 다르다'라고 말한다. 좀처럼 속에 있는 이야기를 입 밖으로 내지 않기 때문에 상대(일본인)가 하는 말을 100% 진심으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는 것이다. 사실 자매들이 일본에서 산 기간이 1년 남짓이기에 이런 습성을 제대로 경험할 일이 많지는 않았다. 다만 일본인과 약속을 잡을 때 늘 '한국에서와는 다른 나'를 경험하곤 했다. 자매2는 "내일 만나서 어디 갈래?" "만나서 뭐 먹을래?"라는 질문에 "아무거나", "너 좋은 걸로"라고 답하는 사람이다. 그만큼 뭔가를 정하고, 제안하고, 추진하는 일에 서툴다. 아니 귀찮아한다는 게 더 적합할 것 같다. 아무튼 이랬던 자매2는 유독 일본인 지인과의 약속에서만큼은 먼저 장소, 메뉴, 할 일을 제안하는 사람이 돼 있었다. 왜냐고? 상대방이 한국에서의 나처럼 'As you want'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겉도는 대화를 몇 번 경험한 뒤엔 내 멘트는 '어디 갈까요?', '뭐 먹고 싶어요?'가 아닌 '###에 ***먹으러 갈래요?'로 바뀌었다. 이런 내 제안에 상대방이 '싫어요'라고 말한 적은 없었다. '아 우리 둘은 잘 맞나 봐'라고 생각했는데, 그게(상대의 호응) 그게(나와의 궁합) 아닐 수 있다는 걸 일본에서 10년 넘게 산 지인이 알려줬다. 아직도 일본인의 혼네와 다테마에를 구분하지 못하겠다는 그는 "짧게 왔다 가는 관광객이나 유학생이라면 모를까 나처럼 여기서 회사 생활하는 사람한텐 그게 은근 스트레스"라고 말했다.
사실 나는 이 혼네 다테마에를 '겉과 속이 다르다'는 개념으로 보지는 않는다. '내가 거절하면 상대가 기분이 나쁘겠지' 하는, 상대에게 폐(메이와쿠)를 끼치고 싶어 하지 않는 기질이 반영된 커뮤니케이션 방법이 아닐까. 물론 이런 기질은 비단 일본에만 있는 게 아니니까. 어느 나라가 됐든 '말한 걸 한번 더 돌려 생각해야 한다'는 건 힘들다..ㅠㅠ
정말 '매뉴얼의 나라'였다
알고 있던 대로였고, 그래서 놀라웠던 대표적인 것이 바로 매뉴얼이다. 흔히 일본 하면 '매뉴얼의 나라'라고 한다. 정교하게 설계된 시스템을 기반으로 일사불란하게 대응하는 모습은 일본의 경쟁력으로도 꼽혀왔다. 실제로 일상 곳곳에서 이 매뉴얼을 만나볼 수 있었다. 자매1은 디즈니랜드의 분실물 센터를 간 적이 있는데, 푸우 인형에서 떨어져 나온 귀 한쪽, 캐릭터 장갑 한쪽까지도 분류해 보관 중인 모습에 놀랐다고. 자매2는 이즈반도 여행 때 아타미의 한 미술관을 간 적이 있는데 그때 학생 할인(가쿠와리·学割)을 받기 위해 학생증을 건넸다가 재밌는(?) 경험을 했다. 자매2는 학생증을 보여준 뒤 할인된 가격에 티켓을 샀는데, 함께 간 지인의 신분증이 문제가 됐다. "이 신분증으로 도쿄의 국공립 미술관과 박물관 할인을 모두 받아왔다"는 지인과 "미술관에 있는 할인 대상 신분증에 이건 없다"는 창구 직원. 그 직원은 매우 두툼한 스크랩북 책장을 몇 번이고 넘겨가며 지인의 신분증과 같은 디자인을 찾느라 분주했다. 그 안엔 일본 전역 대학의 신분증 사본이 꽂혀 있었다. 물론 매뉴얼대로 일하는 게 해당 기관 직원의 본분일 것이다. 다만, '##대학 연구소 방문연구원도 학생 할인 대상인지 알아봐 달라'는 확인 전화나 문의는 안 되는 거였을까. '이 스크랩북에 없으니 안 된다'는 대응에 나는 학교 수업 중 읽은 한 텍스트의 구절이 떠올랐다.
큰 오차도 문제지만, 일본처럼 교육부터 행정까지 모든 것을 규격에 밀어 넣고 일체의 삐져나옴을 배제하는 것도 의외로 살기 어려운 일이다.
TV 보다가 찍은 사진. 생방송 중 패널이 발언하는데, 중간 광고시간이 임박하자 진행자가 '좀 이따가 하겠습니다'고 쓴 메모를 패널에게 내보이며 다급하게 멘트를 끊고 있다.
코로나로 무너진 매뉴얼, 시스템
경쟁력이었던 매뉴얼의 허와 실을 보여준 건 뭐니 뭐니 해도 코로나 19다. 매뉴얼이 없기에 속절없이 무너진 게 일본의 초기 코로나 대응이었기 때문이다. 2020년 초, 코로나 19 확산에 한국의 주요 지자체가 '불필요한 외출 자제'를 강조하고 나섰을 때, 자매2는 일본에서 이전과 다를 거 없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물론 마스크를 쓴다는 게 달랐지만... 스탠딩 콘서트도 다녀왔고, 쇼핑도 했고, 여행했다. '정신 상태가 글러먹었음'을 자랑하려는 게 아니다. 그 시기 일본의 모든 사람들이 이런 '일상'을 나고 있었다. 요코하마항에 정박한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에서 집단 감염이 발생하고, 이에 대한 뉴스가 매일 보도되긴 했지만, 일본 열도 전반에 코로나 19에 대한 경각심은 크지 않았다. 이 감염병의 위험성과 현재 상황을 알리려는 정부 차원의 '분위기 조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일본 정부는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일본 내의 코로나 19 확산 심각성을 부각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본이 자랑하는 '재난 매뉴얼'이란 것도 존재하지도 가동하지도 않았다. 정해진 공식이 없으면 국가가 돌아가지 않는, 그야말로 '매뉴얼의 국가'임을 여실히 보여준 게 코로나였다. 코로나의 급격한 확산 속에 침착하던 사람들은 작은 소문에 크게 흔들렸다. 심지어 '휴지 원재료가 중국에서 오는데 코로나로 인해 수입에 차질을 빚어 휴지 부족 사태가 초래될 것'이라는 루머가 돌며 휴지 사재기가 벌어지기도 했다. (귀국을 앞두고 있던 자매2는 얼마 안남은 휴지를 진짜 한칸한칸 아껴쓰며 살아야 했다. 키친타올이라도 사서 휴지를 대신하려했지만, 이마저도 발빠른 사람들이 다 쓸어가 구할 수 없었다. 이 시기 일기장에 이런 기록이 있다. '정신차려. 배탈나면 넌 끝이야.')
귀국 직전 '코로나로 휴지 원재료 수입이 어려워질 것'이란 소문이 돌면서 휴지 대란이 벌어졌다. 정부가 아무리 '아니다'라고 해도 전국 마트의 휴지 매대는 며칠간 텅텅 비었다.
잠시 샛길로 빠져서 책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일본 쓰쿠바대학에서 국제정치경제학 교수를 지낸, 일본 생활 40년 경력의 미국인 태가트 머피가 쓴 '일본의 굴레'라는 책이다. 저자는 일본에 대한 이런 인상을 언급한다. '무언가 불평할 만한 일이 생겨도 입을 굳게 다무는 이가 대부분이었고, 권력에 도전하는 일은 좀체 하지 않는 체념적인 모습이 일상적이었다.' 그러면서 일본인의 가장 독특한 면모로 ‘모순을 모순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을 꼽는다. 책에 따르면 일본 사람들은 매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성숙함이라 여기고, 가치 없는 목표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추구하는 데서 삶의 의미를 찾는 마음가짐을 내면화한다. 물론 이 태도가 일본을 매력적이고 성공적으로 만드는 원천이기도 하지만, 대중을 착취하기 좋은 이상적 환경을 만들어 줌으로써 일본 근대사의 비극을 야기했다.
그렇다. 틀 안에서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것. 그 틀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것. 이게 일본인들이 '스스로의 책임'이라 여기고 보람을 느끼는 삶이다. 틀 안에서의 역할에 집중하다 보니 '틀이 이상하다', '매뉴얼을 바꾸자'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아사히신문이 2019년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흥미로운 분석 기사를 내놓은 적이 있다. '청년층의 아베 내각 지지율은 왜 높을까'였는데, 그 이유가 인상적이었다. 하나, 정치에 기대할 것은 하나 없다. 둘, 그러니 그럭저럭 살만한 지금 이 상태를 현상 유지하는 게 여러모로 속 편하다. 결국, 아베 정권이 ‘잘하고 있다’는 쪽보다는 ‘뭔가 바뀌어 지금의 안정 상태가 흔들리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소극적인 이유가 지지율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정해진 틀 안에서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부모 세대의 매뉴얼은 '변화를 줘서 내 삶이 흔들리는 것보다 이 틀에서 내 안녕을 꾀하자'는 젊은 세대의 삶의 방식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자매1은 "관광객, 이방인으로서는 이런 매뉴얼이 편할지 모르지만, 내가 저 안의 한 조각으로는 도저히 못 살겠다"라고 말한다. 자매2는 사실 이 '몰랐던 얼굴'이 더 궁금해 "다시 한번 가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크다.
비슷한 것 같지만 전혀 다른,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모르겠는 상대가 일본에겐 한국, 한국에겐 일본 아닐까 싶다. 그래서 지난 1년의 별 거 아닌 일상을 되돌아보는 이 글이 자매들에겐 더욱 의미 있고 소중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