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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번째 행인 Oct 30. 2021

'NHK를 박살 내자'가 정당의 목표?

NHK, 한놈만 팬다-N국당

한국도 일본도 바야흐로 선거의 계절


한국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권 주자 간 신경전이 한창이라면 일본은 내일(10월 31일) 치러지는 중의원 선거로 뜨겁게(적어도 정계는) 달아올랐다.


기시다 후미오 정권 출범 후 처음 맞는 중의원 선거. 자민당과 연립 여당 공명당이 정권을 유지할지(과반 의석을 얻는 당은 선거 후 열리는 특별의회에서 새 총리를 선출하게 된다), 자민당 단독 과반 의석 확보에 성공할지 등이 주목되는 가운데 이를 저지하려는 야당들의 공세도 거세다.


그리고! 이 피 튀기는 전투 속에서 조금은 다른 결로 '나의 길'을 걷는 정당이 있다.


오랜만에 돌아온 자매 일기는 이 독특한 정당과 관련된 이야기를 풀어보려 한다. 일본 유학생, 외노자라면 누구나 경험했을 법한 이야기. 지금 시작한다.



NHK를 박살 내자(NHK をぶっ壊す)

눈과 귀를 의심했다. 그리곤 이 중독성 강한 구호가 몇 번이고 반복될 때마다 웃음이 터져 나왔다.



■정견 방송 맞아? 웃다가 눈물을 흘렸다


"TV 앞의 여러분도 함께 외쳐요. NHK를 박살 내자."
"지금 이 (방송국) 스튜디오에 계신 NHK 직원 여러분도 함께 외쳐요. NHK를 박살 내자...라고 할리가 없겠죠."


'NHK를 박살 내자'를 목표로 하는 'NHK와 재판하는 당 변호사법 72조 위반으로' 당의 다치바나 타카시 대표의 2019년 참의원 선거 정견 방송/다치바나 타카시 유튜브 캡처


유튜브에서도 볼 수 있는 이 장면은 지난 2019년 7월 일본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공영방송 NHK에서 방영된 한 정당의 정견 방송이다. 흔히 정견 방송하면 국가 현안이나 정치 이슈에 대한 공약과 의견이 언급되지만, 이 정당은 달랐다. 다 듣고 나면 '이게 누가 한 말인가' 하며 휘발되어버리는 정견 발표와 달리(엄밀히 말하면 사람들이 이걸 안 본다) 이 영상을 본 시청자들은 머리에 한 문장을 또렷하게 기억했고, 마성의 리듬을 타고 구호를 따라 하기도 했다. NHK를 박살 내자(NHK をぶっ壊す).


여기서 중요한 것! 방송이 진행된 스튜디오가 다름 아닌 NHK였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KBS에서 내보낸 정당 정견 발표 방송에서 'KBS를 때려 부수자'라고 외치는 것과 같다.


국내에서도 아는 이 많은 이 정당은 바로 일본의 'NHK와 재판하는 당 변호사법 72조 위반으로'이다. 2019년 당시엔 'NHK로부터 국민을 지키는 당(일명 N국당)'이었다. 이름이 길다 보니 신문이나 방송에서는 줄여서 'N당'이라고도 한다. 다소 깜찍한(?) 표정과 동작으로 당의 노선을 발표한 주인공은 이 당의 대표 다치바나 타카시(立花孝志)다.



<여기서 잠깐>

국내에선 이 당을 '독도 문제'로 알게 된 사람들도 을 것이다.


2019년 이 당의 마루야마 호다카(사진·丸山穗高) 중의원 의원이 트위터 글에 '(독도를) 전쟁으로 되찾을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라는 망언을 해 논란을 빚은 바 있다.


당시 다치바나 대표는 "문제 제기라는 의미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국회의원보다 좋다고 생각한다"라고 옹호했다.





■N당, 누구냐 넌


NHK 직원 출신인 다치바나 대표는 2005년 NHK의 분식회계에 관한 정보를 언론에 내부 고발한 뒤 퇴사, 2013년 이 정당을 만들었다. 현재 국회의원 2명(중의원 1, 참의원 1)이 소속된 이 당은 'NHK 수신료를 내지 않는 당'으로 출발해 'NHK로부터 국민을 지키는 당'을 거쳐 'NHK와 재판하는 당 변호사법 72조 위반으로'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NHK가 위탁 법인을 통해 하고 있는 방문 수신료 징수 행위가 변호사법 72조 위반이라는 점을 추궁한다는 의미에서다. 뭐가 됐든 단 하나뿐인 당 목표와 노선이 이보다 더 뚜렷할 순 없어 보인다.


이 시점에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의 명대사가 떠오른다. '난 한놈만 패.'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사진=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NHK가 무슨 잘못했길래


N당의 공약은 일본 내 모든 시청자가 의무로 내야 하는 NHK의 수신료를 없애고, 원하는 사람만 돈을 내고 볼 수 있게 하는 시스템을 만들자는 것이다.


사실 일본에서 짧게라도 생활해본 사람들이라면 'NHK 수납원'에 대한 공포스러운 혹은 짜증 솟구치는 경험이 있을  것이다. 자매 2 역시 일본에 가기 전 유학생 사이트나 일본 내 한국인 커뮤니티에서 '누군가 벨 누르고 NHK에서 왔다고 하면 절대 문 열어주지 말라'는 글을 다수 본 적이 있다. 시간 불문 찾아와 다짜고짜 계약하고 수신료를 내야 한다고 요구하는 달갑지 않은 손님이라는 것이다. NHK 안 본다고 해도 '볼 수 있는 환경'이라면 돈 내야 한다는 게 이 사람들이다.


2020년 10월부터 적용되고 있는 NHK 수신료. 1개월 납부료가 지상파 방송은 1,200엔 대, 위성방송 포함은 2,200엔 대다./NHK 캡처


최근 수신료는 얼마일까. NHK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2020년 10월부터 수신료가 조금 내려서 월 1만 2,000원 좀 넘는 돈(1,225엔)을 내야 한다. 아, 이건 지상파만 볼 경우다. 위성방송까지 보면 2만 2,000원(2,170엔)이다. 1만 2,000원이 얼마나 된다고...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1엔 한 푼 아쉬운 유학생, 워홀러들에게 매달 1만 2,000원 결코 소액이 아니다. 더군다나 뉴스 위주의 NHK를 사람들이 얼마나 볼까. (물론, NHK 방송 보면서도 수납원을 일부러 피하는 이들도 있다.)


돈도 돈이지만, 이 수납원들이 정말 '징'하다. 자매 2도 일본에 건너간 지 한 3, 4개월 지났을 무렵부터 이들의 접근이 시작됐다. 처음엔 편지함에 '너 계약하고 돈 내야 해. 안 그러면 법 위반이야'라는 메모를 넣어뒀다. 학교 가면 저녁 늦게 들어와서인지 나를 만날 수 없어서였나 보다. 무서운 건 주말에도 온다는 거다. 자매 2는 3층 맨션의 1층에 살았는데, 하루는 벨 소리에 인터폰을 보니 남녀 한쌍이 'NHK수납원' 명찰 같은 걸 들이대고 있었다. 무시하고 방에 들어와 있는데, 방 창문 앞에서 두 사람이 서성이며 창문 틈으로 내 방 안을 보려고 해 식겁한 기억이... 유학생 정보 공유 커뮤니티에 올라온 경험담을 보면 정말 별의별 경우가 많다. 밤늦게 찾아와 법을 운운하며 협박한다거나 '집에 TV가 없다'라고 말하면 '들어가서 확인하겠다'는 미친 자까지... TV가 없어도 스마트폰이나 PC로 NHK를 볼 수 있는 환경이 갖춰졌다면 수신료를 내야 한다는 게 이 사람들의 주장이다.



■안 보면 안 만나는 게 쵝오


유튜브에 'NHK 수신료 거절 방법'을 검색하면 엄~~~청 많은 설명 영상이 나온다. 그만큼 수납원들에게 시달린 사람들이 많다는 의미다.

얘네들(수납원들)이 이렇게 나오는 데는 믿는 구석이 있어서다. 일본 방송법 32조는 'NHK의 방송을 수신할 수 있는 수신 설비를 설치한 자는 협회와 그 방송의 수신을 계약해야 한다(協会の放送を受信することのできる受信設備を設置した者は、協会とその放送の受信についての契約をしなければならない)'고 규정하고 있다. 위에서 말한 'NHK를 볼 수 있는 환경'이란 게 바로 이거다. 일면식 없는 나한테 '위법' 운운하며 겁주는 메모를 남긴 준 근거가 바로 이것. 물론 수납원의 반 협박(?)이나 유도로 계약한 경우 해지가 불가능 한 건 아니다. 근데... 사정 이야기해 바로 해약했다는 사람도 있지만, 반년 넘게 걸렸다는 사례도 있다. 캐바캐. 그리하여... 안 보면 안 만나는 게 쵝오!


일본 체류 외국인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일본 국민 중에도 '얼마 안보는 NHK 수신료를 왜 이렇게 비싸게 매번 내야 하느냐'라고 반발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유튜브를 검색해보면 일본인들이 만든 'NHK 수신료 거절 방법'이란 이름의 영상이 매우 많이 올라와 있다. 예전에 수납원을 가장한 범죄도 있었다고 하니 이들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질 수가 없는 것 같다.


자매 2는 매우 매우 쫄보인지라 수납원들이 '너희 집 전파를 분석한 결과 NHK 주파수에 몇 시간이 할애됐어'라며 증거를 들이댈까 봐 당시 TV 테이블 옆에 '1번(NHK 종합 채널 번호) X'라고 크게 붙여놓기까지 했다.


하하하. 요즘도 수납원들이 돌아다니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항간엔 이 사람들이 하청 업체 직원이라 실적 올리기 위해 선 넘는 계약 강요가 많은 거란 이야기가 있었는데... 아무튼 'TV 안보는 젊은이들'이 늘어나는 시대에 '한 명이라도 더 계약시키려는 자' '마주치지 않으려는 자'의 머리싸움도 치열해질 것 같다.






■N당의 미래는?


다시 'NHK를 박살 내자'는 그 당 이야기다. 다치바나 대표는 최는 한 인터넷 방송에 나와 '이번 선거에서 정권을 잡을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못 잡는다"라고 말했단다. 그러면서 "NHK 문제가 해결되면 당 대표에서 물러나겠다"고도했다고. '정치가 장난이냐'라고 쓴소리 투척하기엔 한국이든 일본이든 '난장의 정치'가 판치는 현실. 지지 여부를 떠나 사람들이 이 정당에 눈길을 주고 장난으로라도 'NHK를 박살 내자'는 구호를 따라 하는 것을 마냥 평가 절하하며 흘려 넘길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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